한 나라가 어떻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는가 — 9권 후반은 그 과정을 200년의 시야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북이스라엘의 끝, 그리고 같은 위협 앞에서 정반대 길을 택한 남유다의 대조가 이 편의 핵심입니다.
요세푸스는 여기서 자신의 역사철학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에게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우연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필연적 결산이었고, 히스기야의 생존은 회개의 결과였습니다. 이방 독자를 향해 "유대 민족의 역사는 우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변증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왕은 바뀌어도 송아지는 그대로
예후의 쿠데타와 아달랴의 처형 이후 한 세기가 흘렀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까지 아홉 왕이 차례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명도 여로보암 1세가 세운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를 치우지 않았습니다. 왕조가 여섯 번 바뀌어도 이 우상만은 그대로였습니다(AJ 9.§157-235). 요세푸스는 100년의 역사를 한 줄로 요약합니다 —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시기 북이스라엘은 여호아하스 때 아람 왕 하사엘에게 시달렸지만, 요아스(BC 798-782)와 여로보암 2세(BC 786-746) 시절엔 짧은 영토 확장과 번영을 누렸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는 "다마스쿠스에서 요단 동편의 옛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고 합니다(AJ 9.§205-208). 요나의 "영토를 회복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번영은 사회 양극화와 도덕적 부패를 가렸을 뿐이었습니다. 호세아와 아모스 두 예언자가 같은 시대에 임박한 심판을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무정부 상태와 외교 도박
여로보암 2세가 죽자 북왕국은 무정부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다섯 왕 중 넷이 암살당했습니다. 살룸은 즉위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브가히야는 베가에게, 베가는 호세아에게 살해됐습니다(AJ 9.§228-235). 그 와중에 동방의 거인 앗시리아가 그림자처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왕 호세아(BC 732-722)는 위험한 도박을 합니다. 앗시리아에 대한 조공을 끊고 이집트 왕 소(So)에게 사절을 보내 비밀 동맹을 맺으려 한 것입니다(AJ 9.§277).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가 즉각 응징에 나섰습니다. 호세아를 잡아 가두고 BC 724년에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3년의 처절한 포위 끝에, 후계자 사르곤 2세가 BC 722년 마침내 성을 함락시켰습니다(AJ 9.§277-282).
잃어버린 열 지파
이스라엘 10지파가 메디아와 유프라테스 상류로 추방되어 흩어졌습니다. 요세푸스는 비통함을 담아 적습니다 —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로잡혀 갔고, 그 이후 오늘까지 그 땅에 있다. 그래서 유프라테스 너머에 사는 그들의 수는 셀 수 없다"(AJ 9.§278-282). 후대에 "잃어버린 열 지파" 전승의 기원이 되는 구절입니다.
반대로 앗시리아는 정복지 정책에 따라 다른 민족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습니다 — 쿠타, 아바, 하맛, 스발와임에서 이방인을 데려온 것입니다(AJ 9.§288-291). 새 이주민들은 처음에 여호와를 몰랐다가, 사자 떼의 습격을 당하자 앗시리아 왕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칠 사제를 보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추방됐던 한 이스라엘 사제가 벧엘로 돌아가 예배 방식을 가르쳤지만, 이주민들은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고향 신들도 섬겼습니다. 요세푸스는 이들이 후대의 사마리아인이며, "유대인이 번영하면 자기를 유대인이라 부르고, 유대인이 곤경에 처하면 메디아인이나 페르시아인이라 부른다"고 그 정체성의 모호함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AJ 9.§291).
이로써 여로보암 1세가 BC 931년에 세운 두 금송아지에 대한 최종 결산이 끝났습니다. 20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요세푸스에게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우연이 아닌 신학적 필연이었습니다 — 우상숭배의 결과는 신성한 약속의 철회였습니다.
정반대의 길, 히스기야
남유다의 히스기야(BC 715-686)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위하자마자 종교 개혁을 단행해 산당을 철거하고, 우상 기둥과 아세라 목상을 부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청동 놋뱀까지 깨뜨린 일이었습니다. 800년 동안 보존돼 오던 이 놋뱀에 사람들이 분향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놋조각"(느후스단)이라 부르며 깨뜨렸습니다(AJ 10.§3-4, §16-23).
이 개혁의 직접적 결과는 앗시리아 침공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였습니다. 사마리아 함락 20년 뒤인 BC 701년,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18만 5천 대군으로 유다를 침공해 46개 도시를 함락시키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기도하자 예언자 이사야가 답을 가져왔습니다 — "이 도시에 화살 하나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 밤에 천사가 앗시리아 진영을 쳐 18만 5천 명이 하룻밤에 죽었고, 산헤립은 굴욕 속에 니느웨로 돌아갔다가 자기 아들들에게 살해됐습니다(AJ 10.§16-23, 본격 서술은 10권에서).
두 왕국, 두 운명
이 두 왕국의 운명 — 한쪽은 우상숭배로 멸망하고, 다른 쪽은 회개로 유예된 — 은 요세푸스가 가장 분명하게 신학적 교훈을 끌어내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방 독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유대 민족의 역사는 우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의로움과 불의에 대한 명확한 보응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민족의 역사와 구별짓는 점이다"(AJ 9.§282).
다만 히스기야의 개혁은 한 세대만 지속됐습니다. 그의 아들 므낫세가 모든 것을 되돌리고, 결국 유다도 같은 길을 가게 됩니다. 9권은 북왕국의 종말과 남왕국의 유예라는 대조 위에서, 다음 권의 유다 멸망을 향한 긴장을 남겨두고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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