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였던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됩니다. 그것도 한 부족의 왕이 아니라 통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입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도로 삼고, 언약궤를 옮기고, 사방의 적을 격파해 영토를 최대로 넓힙니다. 누가 봐도 황금기입니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7권은 이 영광의 정점에서 가장 뼈아픈 추락을 함께 그립니다 — 궁전 지붕에서 시작된 한 번의 실수가 어떻게 한 가문 전체의 비극으로 번지는지. 이번 편은 그 7권 전반부, 다윗의 즉위부터 밧세바 사건과 나단의 책망까지를 따라갑니다.
7년의 분열 끝에 통일 왕이 되다
사울이 죽었다고 다윗의 길이 곧장 열린 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장군 아브넬이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웠고, 7년 반 동안 남북 분열이 이어졌습니다(AJ 7.§9-11). 헤브론에서는 유다 지파만 다윗을 섬겼습니다. 결국 아브넬이 이스보셋과 갈라서 다윗에게 합류하려 했지만, 요압이 동생 아사헬의 복수로 성문에서 아브넬을 살해합니다(AJ 7.§34-38). 이어 이스보셋의 두 부하가 그를 침대에서 죽이고 목을 다윗에게 가져왔으나, 다윗은 오히려 그들을 배신자로 처형했습니다(AJ 7.§46-52). 그제야 12지파 장로들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여부스 요새를 함락하고 수도를 세우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도로 삼았습니다(AJ 7.§61-67). 요세푸스는 이 함락 과정을 상세히 적습니다. 여부스인들이 성벽 위에 장님과 절름발이를 세워 "이들만으로도 너희를 막겠다"고 조롱하자, 다윗이 "먼저 성벽에 오르는 자를 장군으로 삼겠다"고 선언했고, 요압이 수로(실로암 수로)를 통해 침투해 도시를 열었습니다(AJ 7.§61-64). 다윗은 시온 성채를 수리해 "다윗의 성"이라 이름 붙이고, 밀로부터 성벽을 바깥쪽으로 넓혔습니다. 두로의 히람 왕이 백향목과 목수, 석공을 보내 왕궁을 지었습니다(AJ 7.§66).
이어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첫 시도에서 웃사가 궤를 만지자 죽는 사건이 일어나 다윗이 두려워 3개월을 미뤘습니다(AJ 7.§79-82). 두 번째 운반 때는 제사장들이 직접 어깨에 메고 여섯 걸음마다 제사를 드리며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왕복을 벗고 에봇만 걸친 채 궤 앞에서 춤을 췄습니다. 아내 미갈(사울의 딸)이 창문으로 보고 "왕의 위엄을 잃었다"고 비웃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더 낮아질 것"이라 답했고, 요세푸스에 따르면 미갈은 그 후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AJ 7.§85-89).
사방을 평정한 정복 군주
군사적으로 다윗은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아람(시리아)을 차례로 격파해 영토를 최대로 넓혔습니다. 모압 전쟁에서는 포로를 땅에 눕혀 밧줄 두 줄 길이만큼 죽이고 한 줄 길이만큼 살려뒀는데, 요세푸스는 이를 "전례 없이 엄중한 조치"라 평합니다(AJ 7.§100-104, §127). 아람 전쟁에서는 소바 왕 하다드에셀을 격파하고 청동 방패 수백 개를 노획해 다마스쿠스까지 영향력을 뻗쳤습니다(AJ 7.§96-106). 암몬 전쟁은 다윗이 보낸 조문 사절이 수염을 반쯤 잘리고 옷이 찢기는 모욕을 당하면서 시작됐습니다(AJ 7.§117-120).
지붕 위의 시선, 무너진 왕
그러나 왕의 눈이 궁전 지붕에서 한 여인에게 머뭅니다.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AJ 7.§130-131). 남편이 암몬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왕이 그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임신 사실을 감추려 다윗은 우리야를 전선에서 불러 집으로 보냈지만, 우리야는 "법궤와 동료들이 들판에 있는데 내가 아내와 편히 쉴 수 없다"며 왕궁 문 앞에서 잤습니다(AJ 7.§131-134). 결국 다윗은 요압에게 밀봉한 편지를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냅니다 — 우리야를 최전선에 세우고 그가 죽도록 퇴각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야가 전사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편지를 우리야가 직접 자기 죽음을 전한 것이 가장 비극적"이라 논평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앞에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자기 양 떼가 가득한 부자가, 가난한 이웃의 유일한 어린 양을 빼앗아 손님에게 대접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이 분노해 "그 자는 죽어야 한다!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외치자, 나단이 말했습니다 — "당신이 그 사람이다"(AJ 7.§147-152). 그리고 예언이 이어집니다 — "칼이 네 집안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은밀히 행한 것을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행하시리라." 다윗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회개했지만, 밧세바가 낳은 첫 아이는 7일 만에 죽었습니다(AJ 7.§154). 두 번째 아이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장남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욕보였고(AJ 7.§164-170),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2년 뒤 암논을 살해합니다. 압살롬의 반란 — 이건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말년에는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위를 노렸지만, 밧세바와 나단의 개입으로 솔로몬이 후계자로 확정됐습니다(AJ 7.§353-362).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 계획과 막대한 금은(금 10만 달란트, 은 100만 달란트)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헤브론 7년, 예루살렘 33년, 모두 40년의 통치였습니다(AJ 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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