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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서도 모두를 울리고 싶었던 왕 — 헤롯 대왕의 마지막 날들

지난 두 편에서 헤롯은 마리암네가 낳은 두 아들을 자기 손으로 정죄해 죽였습니다. 그 비극의 설계자였던 이복형 안티파테르 3세는 이제 유일한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7권은 이 야심가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 그는 늙...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1

지난 두 편에서 헤롯은 마리암네가 낳은 두 아들을 자기 손으로 정죄해 죽였습니다. 그 비극의 설계자였던 이복형 안티파테르 3세는 이제 유일한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7권은 이 야심가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 그는 늙고 병든 아버지마저 독살하려 했습니다.

이번 편은 헤롯 대왕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음모의 발각, 끔찍한 병, 성전 황금 독수리 사건, 그리고 죽으면서도 온 유대를 울게 만들려 했던 그의 소름끼치는 마지막 명령까지 — 한 폭군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아버지를 겨눈 독약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제거하고 유일한 후계자가 된 안티파테르는, 늙고 병든 아버지가 너무 오래 살까 두려워 직접 독살을 꾸몄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음모의 전말을 『유대전쟁사』보다 훨씬 상세히 기록합니다.

독약은 이집트에서 구했습니다. 안티파테르는 헤롯이 가장 신임하던 동생 페로라스를 끌어들였습니다. 페로라스의 아내가 미천한 노예 출신이라 헤롯이 늘 못마땅해했고, 그래서 부부는 왕에 대한 은밀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안티파테르는 자신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페로라스 부부에게 독약을 맡겨두며 "만약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지 못할 것 같으면 이것으로 끝내라"고 했습니다(AJ 17.§61-69). 안티파테르의 어머니 도리스도 공모에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페로라스가 의문의 병으로 갑자기 죽자, 그의 시종들이 헤롯에게 충성을 증명하려고 "주인이 죽기 전 독약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실마리가 되어 심문이 확대됐고, 페로라스 아내의 시녀들까지 고문받으면서 음모 전체가 드러났습니다(AJ 17.§60-78). 요세푸스는 "이 심문에서 음모의 실이 하나씩 풀려, 안티파테르가 거미줄처럼 짜놓은 계략 전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기록합니다(AJ 17.§72).

돼지의 아비가 낫겠다

안티파테르는 로마에서 돌아오던 길에 킬리키아에서 자기 음모가 발각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아버지께 직접 해명하겠다"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시리아 총독 퀸크틸리우스 바루스가 배석한 가운데, 헤롯의 수석 고문이자 역사가 니콜라우스 다마스쿠스가 검찰 역할을 맡았습니다(AJ 17.§89-133).

독약이 법정에 직접 제출됐습니다. 그 약효를 입증하려고 사형수에게 먹였는데, 그가 즉시 쓰러져 죽었습니다(AJ 17.§117). 안티파테르는 바닥에 엎드려 결백을 외쳤지만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이었습니다. 바루스조차 "이런 자의 아버지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의 아비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헤롯은 최종 판결을 아우구스투스에게 보냈습니다.

산 채로 썩어가는 몸

헤롯의 병은 극심해졌습니다. 요세푸스는 상세한 증상 목록을 남깁니다 — 온몸을 태우는 미열, 잠들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내장의 지속적 궤양, 발과 복부의 부종, 호흡 곤란, 때때로 일어나는 경련, 그리고 가장 끔찍하게는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AJ 17.§168-170). 현대 의학자들은 이 증상 목록을 만성 신장병 합병증이나 간경화, 혹은 푸르니에 괴저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요세푸스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이것을 "율법 위반자에게 내린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이라 해석했다고 덧붙입니다(이는 사료를 남긴 요세푸스가 전하는 당대의 해석입니다).

헤롯은 사해 동쪽의 뜨거운 온천 칼리르호에로 옮겨져 마지막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의사들이 그를 뜨거운 기름 욕조에 넣자, 헤롯이 눈을 뒤집으며 실신해 시종들이 "왕이 죽었다"고 비명을 질렀습니다(AJ 17.§171-173). 그는 다시 여리고로 후송됐습니다.

황금 독수리와 월식

병중에도 헤롯의 분노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유대 학자 두 명 — 유다 벤 사레파이오스와 맛티아스 벤 마르갈로트 — 이 학생들과 함께, 헤롯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성전 정문 위의 황금 독수리를 끌어내렸습니다. 그 독수리는 로마를 상징하며 유대 율법이 금한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학생 40명이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율법을 위해 죽는 것은 영원한 영광이며, 우리 영혼은 더 나은 삶으로 옮겨갈 것이다"(AJ 17.§149-159).

헤롯은 병상에서 분노하여 관련자 전원을 체포시켰습니다. 주모자인 두 스승과 실제로 독수리를 부순 학생들이 여리고로 끌려왔고, 헤롯이 직접 재판을 주재한 뒤 산 채로 화형에 처했습니다(AJ 17.§160-167).

그 밤에 월식이 있었습니다(AJ 17.§167). 이 월식은 현대 천문학으로 기원전 4년 3월 13일로 계산되는데, 헤롯의 사망 시점을 기원전 4년 3~4월로 확정하는 핵심 천문학적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탄생 연대(헤롯 생전이므로 기원전 4년 이전)를 추정하는 간접 자료이기도 합니다.

죽음으로 온 나라를 울리려 한 명령

죽음이 다가오자 헤롯은 자기 장례에 누가 슬퍼할지 의심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말년 가장 소름끼치는 명령을 기록합니다. 헤롯은 유대 각 가문의 주요 인사들을 여리고 경마장에 소집해 가둔 뒤, 누이 살로메와 매부 알렉사스에게 비밀리에 명했습니다. "내가 죽는 순간, 이들 전원을 궁수들이 둘러 화살로 처형하라. 그러면 내 장례에 온 유대가 진정으로 울 것이다 — 자기 가문의 장을 잃은 슬픔으로. 유대인이 내 죽음에 기뻐하는 꼴을 나는 참을 수 없다"(AJ 17.§174-181). 요세푸스는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과연 이 세상에 있었는가"라며 경악합니다.

다행히 이 명령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죽은 직후 살로메가 "죽은 자의 광기에 따를 필요 없다"며 즉시 귀족들을 풀어주었습니다(AJ 17.§193).

헤롯은 유언장을 여러 차례 고쳤습니다. 처음에는 안티파테르를, 다음에는 안티파스를, 마지막에는 아르켈라오스를 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AJ 17.§146, §188-189). 최종 유언으로 왕국을 세 아들에게 나누었습니다 — 아르켈라오스에게 유대·사마리아·이두매, 안티파스에게 갈릴리와 페레아, 필립에게 골란·바타네아·트라코니티스를. 누이 살로메에게는 얌니아와 아스돗과 파사엘리스를 남겼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허가가 도착하자 헤롯은 죽음을 닷새 앞두고 안티파테르를 처형했습니다. 그 소식을 마지막 기쁨으로 들은 셈입니다. 그리고 5일 후 헤롯이 숨을 거두었습니다(AJ 17.§191). 70세, 37년의 통치였습니다. 요세푸스는 묘비명처럼 적습니다. "외부에서 본 그의 삶은 가장 성공적인 왕의 것이었으나, 그의 가정과 영혼은 가장 비참한 노예의 것이었다"(AJ 17.§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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