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왕이 세워지던 순간을, 우리는 보통 사무엘상에서 만납니다. 그런데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같은 이야기를 자신의 책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6권에 담아 다시 썼습니다.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그리스어로 글을 쓴 그가, 성경의 사건을 헬레니즘 독자에게 들려주듯 풀어낸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단순히 옮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울의 겸손을 짚고, 사무엘의 정치철학을 논평하고, 골리앗의 키를 70인역 수치로 적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역사가의 시선이 더해지니 결이 달라집니다. 이번 편은 그 6권 전반부 — 왕정의 시작부터 다윗이 국민 영웅이 되기까지를 따라가 봅니다.
돌아온 언약궤, 그리고 마지막 사사
이야기는 블레셋에 빼앗긴 언약궤가 스스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궤를 빼앗긴 블레셋의 다섯 도시가 종기와 쥐떼와 역병으로 휩쓸리자, 블레셋 제사장들이 "이 궤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고 조언했습니다. 새끼를 막 낳은 두 암소가 우는 송아지를 뒤로 한 채 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까지 곧장 갔습니다(AJ 6.§1-16).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궤 안을 들여다보자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요세푸스는 이들을 "경건한 두려움이 부족해 호기심을 신성함보다 앞세운 자들"이라고 풀이합니다.
언약궤를 되찾은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미스바에 백성을 모아 "이방 신을 버리라"고 외쳤고,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큰 우레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그 자리에 세운 기념 돌이 "에벤에셀" —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 였습니다(AJ 6.§20-25).
왕을 원한 백성, 신정을 말한 역사가
문제는 사무엘이 늙으면서 시작됐습니다. 백성이 "다른 민족처럼 우리도 왕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슬퍼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는 "군주정을 미워했고 귀족정치를 최선의 정체로 여겼다"고 합니다(AJ 6.§36). 여기서 역사가의 색깔이 진하게 드러나는데, 요세푸스 본인도 이 정치철학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다른 책 「아피온 반박문」에서 유대 공동체의 이상적 정체를 "신정"(theokratia)이라 정의했고, 이 신조어 자체를 그가 만들었습니다.
사무엘은 왕정의 대가를 미리 경고했습니다 — 왕이 너희 아들을 군대와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너희 딸을 요리사와 향수 제조인으로 삼고, 땅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며, 결국 너희가 왕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리라(AJ 6.§37-43). 그래도 백성이 끝내 왕을 원하자, 하나님의 허락 아래 사무엘은 베냐민 지파의 청년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울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로 키가 컸고",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나왔다가 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AJ 6.§45-62). 미스바에서 공식 즉위할 때 사울은 수레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발견됐는데, 요세푸스는 이걸 "겸손의 증거"로 읽습니다.
사울의 좋은 시작
사울은 처음엔 잘 해냈습니다. 암몬의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포위하고는 항복 조건으로 "모든 남자의 오른쪽 눈을 빼겠다"고 요구했습니다. 활을 쏠 때 왼쪽 눈은 방패에 가려지니, 오른쪽 눈을 빼면 전쟁에 쓸모없게 만들겠다는 잔인한 계산이었습니다(AJ 6.§68-71).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이 소 한 쌍을 잡아 조각내고는 12지파에 사자를 보내 "나를 따르지 않는 자의 소도 이렇게 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30만 대군이 모였고, 사울이 밤에 군을 세 갈래로 나눠 새벽에 기습해 암몬을 격파했습니다(AJ 6.§76-80).
아들 요나단은 한술 더 떴습니다. 갑옷부관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전초기지에 몰래 다가가, 암벽을 기어올라 위에서 적을 덮쳐 20명을 쓰러뜨렸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놀라운 장면에 적진에 지진 같은 공포가 번져 블레셋 전군이 스스로 혼란에 빠져 서로를 치기 시작했다"고 적습니다(AJ 6.§111-116). 다만 이 추격전 와중에 사울이 경솔한 맹세를 했습니다 — "해 지기 전에 음식을 먹는 자는 저주받으리라." 그 맹세를 모른 채 꿀을 먹은 요나단이 처형 위기에 몰렸지만, 백성 전체가 "오늘 이 큰 구원을 이룬 자를 죽일 수 없다"며 왕에게 맞서 그를 구해냅니다(AJ 6.§117-128).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전환점은 아말렉 전쟁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남녀노소와 모든 가축까지 다 멸절하라"는 명을 전했는데,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과 가장 좋은 양과 소를 살려뒀습니다(AJ 6.§131-136). 사무엘이 따져 묻자 사울은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려 가축을 살렸습니다"라고 변명했습니다. 사무엘의 대답은 칼처럼 단호했습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청종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왕위를 거부하셨다"(AJ 6.§143-151).
요세푸스는 여기서 사울의 행동을 그냥 실수로 보지 않습니다. "전리품에 대한 탐욕과 왕권에 대한 교만이 뒤섞인 타락"으로 해석합니다(AJ 6.§137-138). 사무엘은 아각을 끌어와 제단 앞에서 직접 베며 "네 칼이 여인들을 자녀 없게 한 것처럼 네 어머니도 그리되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겉옷을 붙잡자 옷이 찢어졌고, 사무엘은 "하나님이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너에게서 찢으셨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베들레헴의 막내, 그리고 거인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베들레헴의 이새 집으로 갔습니다. 공개적으로 가면 사울이 반역으로 의심해 해칠 테니, 제사를 구실 삼아 비밀리에 간 것입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섰지만 모두 거부당했고, 마지막으로 양을 치러 나가 있던 막내가 불려왔습니다. 요세푸스는 다윗을 "붉은 빛의 피부에 날카로운 눈을 가진" 청년이라 묘사합니다(AJ 6.§164).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렸다"고 그는 적습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새끼 양을 물고 가면 맨손으로 쫓아가 때려눕히고 양을 구해내던 소년이었습니다(AJ 6.§182).
그리고 블레셋 거인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서 40일간 일대일 결투를 도발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골리앗의 키를 "4큐빗 1스판", 약 2미터로 기록합니다(AJ 6.§171). 이건 70인역(LXX)과 일치하는 수치로, 마소라 히브리 본문의 6큐빗(약 3미터)보다 낮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요세푸스가 70인역을 참조했을 가능성을 봅니다. 골리앗은 놋 투구에 5천 세겔(약 57kg) 무게의 비늘 갑옷을 두르고, 베틀채 같은 창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선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한때 모든 백성보다 키가 컸던 사울조차 막사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식량을 가져온 목동 소년 다윗이 이 도발을 듣고 나섰습니다. 사울이 자기 왕실 갑옷을 입혔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다"며 벗었습니다.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목자 가방에 넣고, 물매 하나만 들고 나갔습니다. 골리앗이 그 어린 얼굴을 보고 "내가 개냐, 막대기를 들고 오느냐?"고 조롱하자, 다윗이 외쳤습니다 — "너는 칼과 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온다." 첫 번째 돌이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 박혔고, 거인은 얼굴을 땅에 처박고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그 칼을 뽑아 목을 베어 높이 들어올렸습니다(AJ 6.§171-191). 블레셋 진영이 무너져 달아났고 이스라엘이 추격했습니다.
영웅의 탄생, 시기의 시작
국민 영웅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왕의 시기도 함께 싹텄습니다. 승전 행렬에서 여인들이 탬버린과 춤으로 노래했습니다 — "사울이 천을 죽이고 다윗은 만을 죽였다"(AJ 6.§193). 사울은 이 노래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내게는 천을, 다윗에게는 만을 돌렸다. 왕위 외에 다윗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비극의 씨앗이 심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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