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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 귀환으로, 그리고 페르시아 궁정의 반전 — 요세푸스가 전하는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바빌론 포로기가 끝나고 유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구약에서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세 권에 흩어져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1권에서 이 세 흐름을 하나의 연속된 드라마로 엮습니다. 귀환과 성전 재건, 율법 부흥과 성벽 재건, 그리고...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1

바빌론 포로기가 끝나고 유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구약에서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세 권에 흩어져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1권에서 이 세 흐름을 하나의 연속된 드라마로 엮습니다. 귀환과 성전 재건, 율법 부흥과 성벽 재건, 그리고 페르시아 궁정에서 벌어진 생사의 반전까지입니다.

이 시대는 유대 디아스포라가 처음으로 "제국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시험받은 때입니다. 그 시험은 약 200년 뒤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다시 반복되는데, 그 복선이 이미 11권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스어 §-번호를 따라 그 흐름을 짚어 보겠습니다.

고레스의 칙령과 첫 귀환

BC 539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하룻밤 만에 함락시켰습니다. 다니엘이 벽의 글씨를 해석한 바로 그 밤이었습니다. 이듬해 그 유명한 칙령이 내려집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고레스는 자기 성공의 근원을 추적하다가, 유대인 포로들 사이에 전해지던 이사야서를 접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200년 전 —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 그의 이름을 지목해 "그가 내 백성을 돌려보내고 성전을 재건하리라"고 예언한 구절을 읽고, 고레스는 "나 자신이 이 일에 택함을 받았음을 알고 놀라움과 야망에 사로잡혀" 칙령을 내렸다고 합니다(AJ 11.§3-7).

고레스는 예루살렘 재건에 제국 재정을 지원하고,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간 성전 기구 5,400점을 반환하라 명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칙령 전문을 인용하는데, 이방 왕이 유대인의 법적 권리를 공식 보장한 첫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스룹바벨(다윗 가계의 마지막 왕족)이 이끄는 귀환단 4만 2,462명에, 종 7,337명과 성가대원 244명이 함께 긴 여정에 올랐습니다(AJ 11.§8-67).

기쁨과 울음이 뒤섞인 성전 재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성전은 잿더미였고 성벽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먼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뒤, 이듬해 성전 기초석을 놓는 의식을 열었습니다. 이때 요세푸스가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레위인들이 심벌즈를 치며 찬송했는데, "젊은 세대는 환호했으나, 제1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새 성전의 작은 규모에 울음을 터뜨려, 기쁨의 함성과 슬픔의 통곡이 구분되지 않았다"(AJ 11.§78-81).

재건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북왕국 이주민의 후손)이 "우리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니 함께 짓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방해 공작을 벌입니다(AJ 11.§19-30, §84-103). 그들은 페르시아 궁정에 "유대인이 성벽을 쌓아 반란을 준비한다"고 고발해 공사 중단 명령을 받아냈고, 재건이 15년간 멈췄습니다. 그러다 다리우스 1세 때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의 독려로 공사가 재개돼, 마침내 BC 516년 제2성전이 완공됩니다(AJ 11.§96-111).

율법을 다시 세운 에스라와 느헤미야

수십 년 후 에스라가 바빌론에서 돌아와 율법 연구를 부흥시킵니다. 당시 이방인 아내 문제가 심각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을 포함한 많은 유대인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에스라는 성전 광장에서 공적 회의를 열어 백성을 떨게 한 뒤 이방인 아내를 보내도록 결의하게 했습니다(AJ 11.§140-153).

그 후임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수사 궁에서 아르닥사스다 왕(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술 맡은 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에 슬픈 표정을 짓자 왕이 까닭을 물었고, 느헤미야는 기도한 뒤 성벽 재건 허가를 청원합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건축 자재와 호위병까지 내줬습니다(AJ 11.§165-168). 느헤미야가 도착한 뒤 단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했는데,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에 대비해 일꾼들이 "한 손에 연장, 한 손에 칼"을 들고 일하며 밤에는 교대로 경계했다고 전합니다(AJ 11.§174-183).

페르시아 궁정의 반전, 에스더

같은 시기, 페르시아 궁정에서는 또 다른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왕 아하수에로(요세푸스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로 식별) 시절, 왕비 와스디가 손님 앞에 얼굴을 보이라는 명령을 거부해 폐위됩니다. 새 왕비를 찾는 과정에서 유대인 처녀 에스더가 선발됩니다(AJ 11.§196-216). 총리 하만은 궁정 사람들이 모두 절하는데 모르드개(에스더의 양아버지)만 절하지 않는 데 분노해, 페르시아 전역의 유대인 학살 칙령을 왕에게서 얻어냅니다. 아달월 13일에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해도 된다는 끔찍한 명령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상복을 입고 성문에서 통곡하자,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나섭니다. 초대받지 않은 자가 왕 앞에 나서면 사형이고, 왕이 금홀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사흘 금식 후 나아갔고, 왕이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두 차례 연회를 열어 마침내 하만의 음모를 폭로했습니다(AJ 11.§233-262). 하만은 자신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운 50큐빗(약 23미터) 교수대에 스스로 매달리게 됩니다. 요세푸스는 이를 "악이 악을 꾸민 자의 머리로 돌아간 정의의 대표적 사례"라고 논평합니다(AJ 11.§263-268). 부림절(푸림)의 기원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승리는, 제국 전역에 흩어진 유대인이 최고 권력 앞에서 살아남은 첫 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약 200년 뒤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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