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사라지는 순간, 제자가 그 겉옷을 주워 강물을 칩니다. 물이 갈라지습니다.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영적 권위가 넘어가는 이 장면으로 『유대고대사』 9권이 열립니다.
요세푸스는 9권 전반부에서 엘리사의 50년 사역과 예후의 잔혹한 쿠데타를 다룹니다. 기적과 정치, 치유와 학살이 한 권 안에서 교차하는데, 요세푸스는 이 모든 사건을 "엘리야가 예언한 그대로의 성취"라는 틀로 엮습니다. 격동의 북이스라엘이 어떤 논리로 굴러갔는지 보여 주는 사료입니다.
갑절의 영을 이어받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과 불수레에 싸여 올라갈 때, 엘리사가 외쳤습니다 —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AJ 9.§28-30). 그가 떨어진 겉옷을 주워 요단강을 치자 물이 갈라졌습니다. 스승의 영이 갑절로 임한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평합니다. 그의 사역은 약 50년에 걸쳐 북이스라엘의 가장 격동기를 관통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늘 환대한 보답으로 늦둥이 아들을 약속받았는데, 그 아이가 들에서 머리를 잡고 쓰러져 죽자 시신을 엘리사의 방에 눕히고 갈멜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엘리사가 자기 몸을 아이 위에 펴고 입과 입, 눈과 눈, 손과 손을 맞대어 기도하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며 살아났습니다(AJ 9.§47-55).
나아만의 나병, 게하시의 탐욕
가장 유명한 기적은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 치유입니다(AJ 9.§60-73). 나아만은 이스라엘 포로 출신 어린 시녀의 추천으로 사마리아에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를 만나지도 않고 사자를 통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라"는 처방만 보냈습니다. 나아만이 발끈했습니다 — "직접 와서 손을 흔들어 고쳐줄 줄 알았는데, 하필 더러운 요단강이라니. 다마스쿠스의 강이 훨씬 깨끗하지 않은가." 그래도 부하들의 권유로 시도하자 살이 어린아이같이 회복됐습니다.
치유받은 나아만이 막대한 은과 옷을 바쳤지만 엘리사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제자 게하시였습니다. 탐욕에 빠진 그가 뒤를 쫓아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두 선지자가 왔으니 그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거짓말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냈습니다. 돌아온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내 마음이 너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고 꾸짖자,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에게 그대로 옮겨갔습니다 — "네 자손에게도 영원히"(AJ 9.§73-87).
환청에 무너진 포위
엘리사가 사마리아에 있을 때, 이 도시는 아람 왕 벤하닷 2세의 포위로 극심한 기근에 빠졌습니다. 비둘기 똥 한 되가 은 다섯 세겔에 팔리고,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를 삶아 먹는 참상까지 벌어졌습니다(AJ 9.§62-86).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엘리사를 죽이려 보내자, 엘리사는 "내일 이맘때면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에 팔리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밤, 아람군이 큰 군대 소리를 듣고 — 하나님이 그들의 귀에 환청을 일으킨 것입니다 —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도주했습니다. 다음 날 사마리아의 시장이 예언대로 회복됐습니다. 도시 하나의 운명이 한 번의 환청으로 뒤집힌 셈입니다.
나봇의 밭에서 끝난 왕조
이제 무대가 바뀝니다. 엘리사가 라못 길르앗 진영에 익명의 예언자를 보내, 장군 예후를 내실로 불러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명령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다. 아합의 집을 멸절하고, 이세벨의 피를 나봇의 포도원 땅에 갚으라." 그러고는 곧바로 도망쳤습니다(AJ 9.§106-109).
예후가 막사에서 나오자 동료 장군들이 "그 미친 자가 뭐라더냐"고 물었습니다. 사실대로 답하자 그들은 즉시 겉옷을 벗어 계단에 깔고 "예후가 왕이다!"라고 외치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예후는 시간을 끌지 않고 그날로 전차를 몰아 이스르엘로 향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 장면을 극적으로 그립니다. 정찰병이 "전차 모는 모양이 미친 듯한 게 예후 같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왕 여호람이 직접 전차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두 전차가 하필 나봇의 포도원 자리에서 마주쳤습니다. 여호람이 "평안이냐, 예후야?" 묻자,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평안이 있겠느냐"고 답합니다. 여호람이 말머리를 돌리며 "반역이다!"라고 외쳤지만, 예후의 화살이 등을 뚫고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시신은 나봇의 밭에 던져졌습니다 — 엘리야의 예언 그대로였습니다(AJ 9.§111-119). 함께 있던 남유다 왕 아하시야도 도주하다 잡혀 죽었습니다.
창밖의 여왕, 그리고 바알의 끝
다음 차례는 이세벨이었습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여왕답게 죽기로 합니다. 눈을 그리고 머리를 단장한 뒤 창가에서 예후를 내려다보며 조롱했습니다 — "주인을 죽인 시므리야, 네가 평안하냐?"(시므리는 200년 전 왕 엘라를 죽이고 7일 만에 망한 인물입니다). 예후가 환관들에게 "그녀를 던지라"고 명했고, 이세벨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나중에 "왕의 딸이니 묻으라"고 보냈을 땐 이미 개들이 시신을 먹어 두개골과 손발만 남아 있었습니다 — 역시 엘리야의 예언 그대로였습니다(AJ 9.§122-126).
예후는 사마리아에 사신을 보내 아합의 남은 아들 70명을 처형시키고, 다음으로 바알 숭배자 척결에 나섰습니다. "내가 아합보다 바알을 더 열렬히 섬기겠다"고 거짓 선언해 모든 바알 사제와 신자를 신전에 불러 모은 뒤, 신전이 가득 차자 신호를 보내 80명의 병사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학살했습니다. 신전은 헐어 변소로 만들었습니다(AJ 9.§130-139).
그러나 예후도 한 가지는 끝내 손대지 않았습니다 — 여로보암 1세가 세운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입니다. 정치적 분리주의를 위해 이 우상만은 남겨둔 거습니다. 요세푸스는 이를 예후 왕조의 결정적 한계로 봅니다.
한 아이로 보존된 다윗 왕가
남유다에서는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의 딸 아달랴가, 아들의 죽음을 듣자 자기 손주들을 포함한 다윗 왕가의 모든 자녀를 학살하고 스스로 여왕 자리를 찬탈했습니다(AJ 9.§140-146). 그런데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한 살배기 요아스를 학살의 한복판에서 빼내 성전에 숨겼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6년 동안 이 아이를 성전 골방에서 길렀습니다.
7년째 되던 해, 여호야다가 성전 군사를 무장시켜 요아스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백성이 박수치며 "왕이여,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소란을 들은 아달랴가 "반역이다!"라며 달려왔지만, 여호야다의 명령에 병사들이 그녀를 성전 밖 말이 다니는 길로 끌어내 처형했습니다(AJ 9.§151-156). 일곱 살 요아스가 다윗 왕좌에 올랐습니다 — 다윗 왕가가 단 한 아이에 의해 가까스로 보존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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