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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대왕 가문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 이두매인 안티파테르와 로마가 들어온 날

복음서에 등장하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그 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권력은 한 세대 전,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ter)가 무너져가는 하스몬 왕조의 틈을 파고들면서 시작...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2

복음서에 등장하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그 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권력은 한 세대 전,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ter)가 무너져가는 하스몬 왕조의 틈을 파고들면서 시작됐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14권은 바로 그 시작점을 다룹니다. 두 형제의 내전, 이두매(Idumea) 출신 책사의 등장, 그리고 로마라는 거대한 손이 유대 역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이 한 권이 사실상 신약의 무대 — 헤롯 왕조 — 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알려주는 배경 자료입니다.

형제의 내전, 그리고 끼어든 책사

살로메 알렉산드라 여왕이 죽자마자 차남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군대를 이끌고 형 힐카누스 2세를 몰아냈습니다. 요세푸스는 두 형제를 대조적으로 그립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전쟁에 능하고 활동적인 혼을 가진" 사람이었고, 힐카누스는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평화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AJ 14.§4-6). 예리코 근처 첫 전투에서 힐카누스의 병사 대부분이 동생 쪽으로 탈영하면서 왕위 다툼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힐카누스는 항복하고 사적 시민으로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AJ 14.§4-7).

바로 이 틈에 이두매인 안티파테르가 움직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두매 총독으로 해안 아랍 부족과 남쪽 나바테아(Nabatea) 왕실에 깊은 인맥을 쌓아둔 인물이었습니다(AJ 14.§8-10). 흥미로운 건 가문의 정체성입니다. 측근 역사가 니콜라우스는 안티파테르 가문을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의 후손"이라 주장했지만, 요세푸스는 이를 아첨으로 일축하며 "사실 그는 이두매의 상급 가문 출신"이라 적습니다(AJ 14.§9). 헤롯 가문의 "유대인" 정체성은 BC 125년경 힐카누스 왕조가 이두매를 강제 개종시킨 결과였던 거습니다.

꼭두각시 왕과 나바테아 군대

안티파테르는 무기력한 힐카누스를 찾아가 끊임없이 속삭였습니다. "당신이 정당한 맏아들로 왕이며 대제사장입니다. 동생은 찬탈자입니다. 지금 당신 목숨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 아리스토불루스가 당신을 독살하려 합니다"(AJ 14.§11-16). 요세푸스에 따르면 안티파테르의 진짜 속셈은 다루기 쉬운 힐카누스를 앞세우고 자신이 실권을 쥐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안티파테르는 힐카누스를 밤중에 예루살렘에서 빼내 페트라로 데려갔고,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에게서 "힐카누스를 복위시키면 빼앗긴 12개 도시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5만 명의 군대를 빌렸습니다(AJ 14.§17-21). 이 군대로 예루살렘을 공격해 아리스토불루스를 성전 산으로 몰아넣고 포위했습니다. 유대의 내전이 이제 외세를 끌어들이는 단계로 번진 것입니다.

로마가 들어오다 — 폼페이의 결정

마침 동방을 원정 중이던 로마 장군 폼페이(Pompey)에게 양쪽 모두 사절을 보냈습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무게 500탈란트짜리 금 포도나무를 선물해 환심을 사려 했고, 힐카누스 측은 정통성을 주장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세 번째 사절단도 기록합니다 — 유대 민중 대표단이 "왕정을 아예 폐지하고 제사장 통치로 돌아가자"며, 두 형제 모두 자격이 없다고 호소한 것입니다(AJ 14.§41-45).

폼페이는 세 주장을 다 들으면서도 판단을 미뤘습니다. 먼저 나바테아 원정을 끝내겠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불루스가 기다리지 못하고 성전 산 요새로 돌아가 저항을 준비하자, 폼페이는 이를 반란의 증거로 삼아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외세에게 판단을 맡긴 순간, 그 외세가 곧 주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전 산이 무너지던 날

BC 63년, 폼페이가 3개월 포위 끝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를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AJ 14.§54-76). 요세푸스에 따르면 로마군은 안식일을 노렸습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에는 방어 공사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그날 공성탑을 쌓고 참호를 메운 것입니다. "만약 유대인이 안식일에 방어 공사를 허용했더라면, 그 성벽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적습니다(AJ 14.§63).

성전이 함락될 때의 장면을 요세푸스는 인상적으로 남겼습니다. 제사장들은 칼에 찔리면서도 제사를 멈추지 않았고, "제단 앞에서 쓰러지면서도 자신의 피를 제물의 피에 섞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더 소중했다"고 합니다(AJ 14.§65-68). 1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폼페이는 지성소까지 직접 들어갔지만 — 그 안이 텅 비어 있음에 놀라며 — 2,000탈란트 상당의 성전 보물에 손대지 않았습니다(AJ 14.§71-72). 요세푸스는 이를 "폼페이의 미덕"으로 평가합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가족과 함께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에서 전시됐고, 힐카누스는 왕 칭호를 잃은 채 대제사장과 민족장(에트나르크) 칭호만 유지했습니다.

안티파테르의 부상과 14권의 진짜 보물

여기서 14권만의 특별함이 빛납니다. 이 책은 유대전쟁사와 같은 시기를 다루지만, 로마 원로원과 카이사르·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가 유대인에게 준 특권 칙령의 원문을 대량으로 인용합니다(AJ 14.§185-267). 안식일 준수 면제, 군복무 면제, 회당 건립 허가, 성전세 송금 허가,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자치권 — 이 20여 개의 공식 문서는 유대인이 로마 제국 안에서 합법적 권리를 가졌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세푸스의 집필 의도(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법적 지위 변증)가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구간이고, 현대 학자들은 이 칙령들을 14권에서 가장 귀중한 1차 사료로 평가합니다.

이 무렵 안티파테르가 결정적으로 도약합니다. BC 48년 카이사르가 폼페이를 격파하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포위당했을 때, 안티파테르는 힐카누스의 이름으로 3천 병력과 자금을 조달해 구원군에 합류했고 직접 앞장서 싸우다 부상까지 입었습니다(AJ 14.§127-139). 이 공로로 카이사르는 BC 47년 안티파테르를 유대 총독(에피트로포스)으로 임명하고, 힐카누스의 대제사장직을 세습제로 확정하며, 폼페이가 부순 성벽 재건도 허가했습니다(AJ 14.§143-148). 안티파테르는 즉시 장남 파사엘을 예루살렘 지휘관으로, 차남 헤롯을 갈릴리 지휘관으로 앉혔습니다 — 바로 이 임명이 헤롯의 권력 상승의 첫 발판이었습니다. 그리고 BC 40년, 파르티아가 침공해 마지막 하스몬 왕자 안티고누스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우자, 헤롯은 가족을 마사다에 맡기고 로마로 달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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