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이 200년 만에 무너지고, 마케도니아의 한 청년이 11년 만에 인도까지 진격해 세계의 모양을 영원히 바꿨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1권 끝에서, 다른 그리스 사료에는 없는 한 장면을 아주 길게 전합니다 —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직접 방문해 대제사장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이야기습니다.
이 일화는 요세푸스의 다른 책 『유대전쟁사』에도 없고 오직 『유대고대사』에만 나옵니다. 학자들이 진위를 크게 의심하는 전설이지만, 요세푸스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론이었습니다. 유대 민족이 헬레니즘 세계 안에서 합법적·종교적 지위를 가질 권리를, 다름 아닌 알렉산더 본인에게서 받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 서술을 따라가 봅니다.
충성 맹세 때문에 거절한 대제사장
배경은 BC 332년입니다. 알렉산더는 이수스 전투(BC 333)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격파한 뒤 시리아 해안을 따라 남하하며, 7개월에 걸친 거대한 두로 포위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두로를 함락시키려면 보급이 필요했고, 알렉산더는 인근 도시들에 충성과 식량을 요구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즉시 응했지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얏두아(Jaddua)는 거절합니다 — "우리는 다리우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므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왕을 섬길 수 없다"(AJ 11.§317-319).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유대 율법의 맹세 준수 원칙에 따른 답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격분했습니다. "두로를 끝낸 뒤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누구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옳은지 보여주겠다." 두로가 BC 332년 7월 마침내 함락됐고, 알렉산더는 가자(역시 2개월 포위 끝에 함락)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돌립니다(AJ 11.§321-325).
흰 옷의 행렬과 뜻밖의 경배
대제사장 얏두아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도시는 전쟁에 대비돼 있지 않았고, 알렉산더의 분노는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얏두아는 백성과 함께 단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말했다고 합니다 — "두려워 말라. 도성을 화관으로 장식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라. 백성은 흰 옷을 입고, 제사장들은 율법이 정한 의복을 차려입은 채 나가서 그를 맞이하라. 너희에게 어떤 해도 임하지 않으리라"(AJ 11.§327).
다음 날 아침, 얏두아는 꿈의 지시대로 행했습니다. 푸른 두루마기, 12지파의 보석이 박힌 황금 가슴패, 그리고 가장 신성한 표지 — 이마에 거룩한 이름이 새겨진 황금판이 달린 관 — 을 차려입었습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흰 세마포 옷을, 백성도 모두 흰 옷을 입었습니다. 이 행렬이 도시 북쪽의 스코푸스 산으로 나가 알렉산더를 기다렸습니다(AJ 11.§328-331).
산 너머에서 행렬을 본 알렉산더가 갑자기 — 모든 신하가 보는 앞에서 — 말에서 내려 얏두아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 황금판에 새겨진 거룩한 이름에 경배했습니다(AJ 11.§331-332). 함께 있던 왕들과 부하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왕이 사람에게 경배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배한 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다"
알렉산더의 측근 파르메니온이 감히 물었습니다 — "왕이여,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경배하는데, 어떻게 유대인의 대제사장에게 경배하실 수 있습니까?"(AJ 11.§333). 알렉산더의 답은 요세푸스가 가장 자랑스럽게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내가 경배한 것은 이 사람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다. 마케도니아의 디온에 있을 때, 페르시아를 정복할 야망에 잠 못 이루던 시절 — 꿈에 바로 이 의복을 입은 한 사람이 나타나 말했다. '두려워 말고 진군하라. 페르시아의 멍에를 깨뜨리는 자가 너이며, 그 결과는 나의 영광을 위함이다.' 그 인물이 오늘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경배함은 사실 그의 하나님을 경배함이며, 나의 운명이 그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AJ 11.§334-335).
알렉산더는 얏두아의 손을 잡고 도시로 들어가, 성전에서 대제사장의 안내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서를 보여주자, 그는 "그리스인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예언에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 자신이 그 예언의 성취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AJ 11.§337). 알렉산더는 유대인에게 여러 특권을 부여합니다 — 안식년의 세금 면제, 자국 율법에 따른 자치, 바빌론·메디아 디아스포라 공동체에도 같은 권리, 그리고 그의 군대에 자원하는 유대인에게 율법 준수 보장. 뒤이어 같은 특권을 요청한 사마리아인에게는 "너희가 진정 유대인이라면 면제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한 안 된다"고 답했다고 전합니다(AJ 11.§340-345).
전설인가 사실인가, 그리고 디아도코이
이 일화의 역사적 진위는 학자들 사이에 큰 논쟁이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실제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그리스 사료의 직접 증거는 없고, 두로 함락 후 그의 진군로는 가자에서 곧장 이집트로 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이 이야기를 "헬레니즘 시대 유대인이 지어낸 자기 정당화 신화"로 해석합니다. 본 글도 이 일화를 검증된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요세푸스가 전하는 전승으로 소개합니다.
다만 요세푸스에게 이 이야기가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로마 독자에게 유대 민족이 알렉산더 본인에게서 헬레니즘 세계 안의 합법적 지위를 부여받았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헤롯 대왕도, 요세푸스 자신도, 디아스포라 유대인 모두가 이 이야기에 자기 권리의 뿌리를 둘 수 있었던 겁니다.
알렉산더는 이집트에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페르시아 깊숙이 진격해 다리우스 3세를 무너뜨린 뒤 박트리아와 인도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BC 323년 6월, 바빌론에서 서른둘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 열병이라고도 하고 독살이라고도 하는데 사료가 엇갈립니다. 후계자 없이 떠난 그의 제국은 네 장군, 곧 디아도코이에게 분할됐습니다(AJ 11.§346-347).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시리아는 셀레우코스에게, 마케도니아 본토는 안티고노스에게, 트라키아는 리시마코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는 두 거인 —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집트와 셀레우코스의 시리아 — 사이에 끼여, 이후 150년간 두 왕조의 줄다리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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