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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사랑하고 왕으로 두려워하다 — 헤롯이 친아들을 정죄하기까지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16권은 한 가정이 권력 때문에 어떻게 천천히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고대사에서 가장 음울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유대 왕 헤롯,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 마리암네가 남긴 두...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1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16권은 한 가정이 권력 때문에 어떻게 천천히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고대사에서 가장 음울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유대 왕 헤롯,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 마리암네가 남긴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입니다.

헤롯은 이미 질투 때문에 마리암네를 처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6권에서 그는 그녀가 낳은 두 아들마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요세푸스는 이 비극을 같은 사건을 다룬 『유대전쟁사』보다 훨씬 상세하게, 법정 절차와 외교 서신까지 곁들여 기록했습니다. 이번 편은 그 의심이 어떻게 싹트고 자라났는지를 따라갑니다.

하스몬 혈통의 두 왕자가 돌아오다

기원전 18년경, 마리암네가 낳은 두 아들 알렉산더(17세)와 아리스토불루스 4세(15세)가 로마 유학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궁정에서 5년을 자란 두 왕자는 세련되고 당당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들이 "외모와 체격이 뛰어났고, 하스몬 왕가 혈통의 고귀함을 드러냈다"고 묘사합니다(AJ 16.§6-8).

문제는 바로 그 혈통이었습니다. 두 왕자는 헤롯의 피만이 아니라, 헤롯이 무너뜨린 옛 하스몬 왕가의 피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이들을 보며 "옛 하스몬 왕자들이 돌아왔다"며 눈물을 흘렸고, 죽은 마리암네의 얼굴을 그 아들들에게서 보았습니다. 백성의 이 환호가, 살아 있는 왕 헤롯의 마음에 불을 질렀습니다.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요세푸스는 헤롯의 내면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그의 사랑은 의심의 그림자에 늘 쫓겼다. 그는 아들로서 그들을 원했으나, 왕으로서 그들을 두려워했다. 이 두 감정이 끝없이 싸웠고, 결국 의심이 이겼다"(AJ 16.§66-77).

헤롯은 두 왕자의 왕족 혈통을 정치적 자산으로 쓰려고 이중 결혼을 성사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카파도키아 왕 아르켈라우스의 딸 글라피라와 결혼해 카파도키아 왕실과의 동맹을 가져왔고(AJ 16.§11), 아리스토불루스는 헤롯의 누이 살로메의 딸 베르니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 혼인이 오히려 궁정 정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글라피라 공주가 자신의 고귀한 왕족 혈통을 자랑하며 살로메와 헤롯의 누이들을 "이두매 출신의 하녀들"이라고 대놓고 경멸한 것입니다(AJ 16.§193-199). 어느 날 글라피라가 살로메에게 "내 남편은 하스몬 왕가의 혈통인데, 당신의 가문은 누구의 가문인가?"라고 묻자, 살로메는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두 왕자의 파멸을 결심했습니다.

안티파테르의 독, 살로메의 가세

여기에 첫째 부인 도리스의 아들 안티파테르 3세가 끼어듭니다. 그는 헤롯의 장남이었지만 비하스몬계 어머니의 소생이라 지위가 낮았습니다. 마리암네의 아들들이 정식 후계자로 올라설 기미가 보이자, 안티파테르는 자신을 로마에서 불러들여 궁에 복귀시키도록 헤롯을 설득했습니다(AJ 16.§78-86).

요세푸스가 묘사한 안티파테르의 수법은 치밀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 앞에서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행동하면서, 동시에 대리인들을 통해 형제들의 반역 증거를 체계적으로 조작했다. 그는 마치 독이 혀에서 꿀처럼 흘러 목구멍에서 쓰라림이 되는 자와 같았다"(AJ 16.§193-206). 그는 왕궁의 하인, 이발사, 경호원까지 돈으로 매수해 거짓 증언을 준비시켰습니다. 살로메도 이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녀를 "가족의 평화보다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한" 인물로 기록합니다.

왕궁은 음모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헤롯은 한편으로는 아들들을 사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의심했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에게 "네가 왕이 되고 싶으냐?"고 직접 추궁했고, 알렉산더가 울면서 "아버지, 저는 형제를 바라지도 않고, 아버지보다 먼저 왕좌를 바라지도 않습니다"라고 맹세하자 잠시 마음이 풀렸습니다(AJ 16.§98-107). 또 한번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너희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어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퀼레이아의 눈물, 잠깐의 화해

갈등이 극심해지자 헤롯은 기원전 12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마침 발칸 원정 중이던 황제는 헤롯과 두 아들을 아드리아해 북부의 아퀼레이아로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왕좌에 앉고, 헤롯은 원고 자리에, 두 아들은 피고 자리에 섰습니다.

헤롯의 열띤 고발 뒤, 알렉산더가 울며 일어나 변론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반역을 원했다면 왜 아직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저를 죽이시되 의심으로는 죽이지 마시고 증거로 죽이십시오. 아버지가 저를 의심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저를 찔러 주십시오"(AJ 16.§86-126). 그 말에 온 법정이 울었고, 헤롯도 울었으며, 아우구스투스도 감동받았습니다. 황제는 "세 사람을 화해시키는 것이 황제의 재판보다 낫다"며 세 사람의 손을 맞붙여주었습니다. 헤롯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민중 집회에서 세 아들 모두에게 왕국을 나누되 안티파테르를 먼저, 그다음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로 정한다고 선포했습니다(AJ 16.§129-135).

화해는 완전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권리 헌장

흥미롭게도 16권에는 이 가정 비극 사이사이에 유대 민족의 법적 권리에 관한 기록이 끼어 있습니다.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도시들이 유대인의 자치권을 박탈하려 하자, 유대인은 헤롯을 통해 아우구스투스의 사위 아그립파에게 청원했습니다. 아그립파는 레스보스 섬에서 공청회를 열어 유대인의 권리, 곧 안식일 준수와 예루살렘 성전세 송금, 재판 면제를 재확인해주었습니다(AJ 16.§27-65, §162-178).

요세푸스는 "이것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로마 제국 안에서 누리는 권리의 헌장"이라며 긴 칙령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헤롯이 가정에서는 폭군이었지만 대외적으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는, 그의 모순된 두 얼굴이 같은 책에 나란히 담긴 셈입니다.

모함의 재개, 그리고 베이루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안티파테르의 모함이 재개됐습니다. 이번에는 훨씬 정교했습니다.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출신 에우리클레스라는 이중 첩자가 알렉산더의 측근인 척 접근해 사적인 불만을 끌어낸 뒤, 그 이야기를 "반역 음모의 증거"로 헤롯에게 보고했습니다(AJ 16.§300-320). 떠돌이 견유 철학자 한 명은 "공공장소에서 알렉산더가 아버지를 저주하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고, 헤롯의 이발사 트리폰까지 고문 끝에 "알렉산더가 나에게 왕의 목을 자르라고 제안했다"고 자백했습니다(AJ 16.§387-389).

수백 명의 궁정 관리가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고, 한 명의 자백이 다음 사람의 고문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궁전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16권에는 이 외교 과정과 재판의 법적 절차가 『유대전쟁사』보다 훨씬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AJ 16.§271-394).

결국 아우구스투스의 허가를 받아 베이루트(베리투스)에서 특별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로마 총독들과 헤롯의 친척들로 구성된 법정이 두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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