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권에는 예수를 직접 언급한 그 유명한 "테스티모니움 플라비아눔"이 있지만, 진위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저자가 20권에 남긴 또 다른 짧은 구절은 사정이 다릅니다 —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처형을 적은 한 문장이, 거의 모든 학자가 진본으로 인정하는 1세기 외부 증언입니다.
이 마지막 편은 그 야고보 구절(AJ 20.§200)을 중심에 놓고, 그 처형을 가능하게 한 권력 공백, 그리고 유대고대사 20권이 유대전쟁사에는 없는 시각으로 전하는 전쟁 전야의 사회·경제적 붕괴를 따라갑니다. 13년에 걸친 요세푸스의 대작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도 함께 살핍니다.
정직한 총독 페스투스와 바울
다섯 번째 총독 포르키우스 페스투스(AD 60-62)는 펠릭스보다 나았습니다. 요세푸스는 그를 "정직하고 효율적인"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는 즉시 단검파 작전에 나서 많은 자를 처형했고, 거짓 예언자들을 광야에서 추적해 진압했습니다(AJ 20.§185-188). 다만 임기는 짧았습니다 — 부임 2년 만에 임기 중에 사망했습니다.
페스투스는 신약 사도행전 25-26장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가 부임 직후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 그곳 감옥에 있던 바울이 자기 사건을 호소했고, 페스투스가 아그립바 2세와 베레니케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바울이 두 사람 앞에서 변론했습니다. 바울이 "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한다"고 선언하자 페스투스가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답해 그를 로마로 보냈습니다. 요세푸스가 이 사건을 직접 적지는 않지만, 페스투스의 시대 배경은 사도행전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권력 공백을 노린 대제사장 아나누스
페스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권력 공백이 생겼습니다. 후임 알비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해 도착하기까지 몇 달의 틈이 있었고, 새로 임명된 대제사장 아나누스(대제사장 안나스의 다섯째 아들)가 이 틈을 이용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아나누스를 "사두개파에 속하며, 사두개인이 다른 모든 유대인보다 재판에 가혹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고 소개합니다(AJ 20.§199). 사두개인은 토라 외의 모세 전통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모호한 사건에서 더 엄한 형벌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아나누스는 산헤드린을 소집해 "야고보라 하는 사람과 또 다른 몇 사람"을 율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돌로 처형하도록 판결했습니다(AJ 20.§200).
예수의 형제 야고보 — 진본으로 인정받는 구절
요세푸스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 "이 자(아나누스)가 산헤드린의 재판관들을 모아,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이름의 사람과, 율법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은 다른 몇 사람을 끌어내어 돌로 치도록 넘겨주었다"(AJ 20.§200). 그리스어로 Iakōbos onoma autō, ho adelphos Iēsou tou legomenou Christou —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이 구절은, 18권의 테스티모니움과 달리 거의 모든 학자가 진위를 인정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독교 필사자가 추가한 흔적이 없습니다 — "그리스도라 하는"이라는 약한 표현은 신앙 고백이 아니라 단지 호칭 구별일 뿐이라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둘째, 야고보의 처형 자체가 새 정보로 강조되는 게 아니라, 아나누스의 부당한 행동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부수적으로 언급됩니다. 셋째, 그래서 이 구절은 1세기 외부 사료로 예수의 존재와 그를 따르는 형제의 존재를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본 글은 이 다수설을 사실 그대로 소개할 뿐, 진본/위작 판정이나 신학적 결론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아나누스의 행동에 온건파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 요세푸스는 그들을 "율법에 가장 정통하고 의로움으로 명성이 높은 자들"이라 묘사하는데, 학자들은 바리새파로 봅니다. 그들은 알비누스가 오는 길을 가로막고 "아나누스가 권력 공백을 이용해 산헤드린을 불법 소집했고, 총독 동의 없이 사형을 집행한 것은 로마법 위반"이라고 고발했습니다(AJ 20.§201-202). 알비누스가 격분해 협박 편지를 보냈고, 동시에 아그립바 2세가 아나누스를 불과 3개월 만에 대제사장직에서 해임했습니다(AJ 20.§203). 야고보의 처형이 결국 아나누스 자신의 권력을 끝낸 것입니다.
전쟁 전야 — 풀어지는 모든 이음새
여섯 번째 총독 루케이우스 알비누스(AD 62-64)는 노골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요세푸스의 묘사는 가차없습니다 —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도둑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견딜 수 없는 세금을 부과했고, 돈을 내면 옥에 갇힌 강도라도 풀려났다"(AJ 20.§215). 마지막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AD 64-66)는 더 나빴습니다 — "플로루스는 알비누스가 미덕의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알비누스는 범죄를 부끄러워하기라도 했지만, 플로루스는 자랑스러워했다"(AJ 20.§253).
이 정치적 부패와 함께,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20권에서만 다루는 사회·경제적 붕괴를 더합니다 — 이것이 유대전쟁사 2권보다 20권을 가치 있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헤롯 대왕이 BC 19년경 시작한 성전 대보수가 AD 64년경 마침내 완공됐는데(AJ 20.§219-222), 그 결과 1만 8천 명의 건설 노동자가 한꺼번에 실업자가 됐습니다. 아그립바 2세가 임시 일거리를 만들었으나 미봉책일 뿐이었습니다.
대제사장 가문의 부패는 더 심각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스 — 사도행전 23장에서 바울이 "회칠한 담"이라 부른 그 인물 — 가 부하를 보내 하급 제사장들의 십일조를 폭력으로 빼앗았고, 그 결과 가난한 제사장들이 굶어 죽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AJ 20.§206-207). AD 6년부터 70년까지 약 60년 동안 28명의 대제사장이 교체됐습니다 — 평균 임기 2년 남짓. 종교적 권위가 정치 거래의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이음새가 풀어지고 있었고, 플로루스의 마지막 도발 — 성전 보물 약탈, 항의자 학살 — 이 AD 66년 봄 대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그 본격적 전개는 유대전쟁사 2권에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13년에 걸쳐 모세부터 네로 직전까지 5천 년 역사를 20권에 담았다고 밝히며(AJ 20.§259-268), 다음으로 민족의 본성과 율법을 다룬 또 다른 작품을 쓰겠다고 예고합니다 — 후일의 「아피온 반박문」입니다. 그렇게 『유대고대사』가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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