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서 안티파테르가 카이사르의 신임으로 유대 총독이 되고, 두 아들을 요직에 앉히는 데까지 봤습니다. 그중 차남이 갈릴리를 맡은 청년 헤롯입니다.
이번 편은 그 청년이 어떻게 위기를 거쳐 로마까지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선언되는지를 따라갑니다. 산헤드린 법정에서의 위협적인 등장, 한 노(老)현자의 정확한 예언, 아버지의 독살, 파르티아의 침공, 그리고 겨울 바다를 건넌 끝에 왕관을 받는 — 그러나 정작 그 왕국은 아직 적의 손에 있던 — 아이러니의 순간까지. 요세푸스 14권 후반부는 헤롯이라는 인물의 모든 씨앗을 보여줍니다.
갈릴리의 젊은 총독
갈릴리에 부임하자마자 헤롯은 도적 수장 히스기야와 그 무리를 붙잡아 재판 없이 처형했습니다(AJ 14.§159). 요세푸스는 이 결단을 "용감하고 효과적"이라 평하면서도, 그것이 유대법을 명백히 어긴 일임을 짚습니다. 유대인은 산헤드린(공회)의 재판 없이는 처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총독 섹스투스 카이사르는 헤롯의 효율성에 감명받아 그를 코엘레-시리아(남부 시리아) 총독으로까지 임명했지만(AJ 14.§160), 예루살렘은 분노했습니다. 처형된 자들의 어머니들이 매일 성전에 와서 울부짖었습니다. "대제사장 힐카누스여, 왕이 임명한 자가 우리 아들을 재판 없이 죽였습니다. 율법이 있는 나라인지요?"
법정을 위협한 피고
14권에는 유대전쟁사에 없는 결정적 장면이 있습니다 — 헤롯의 산헤드린 재판입니다(AJ 14.§163-184). 여론에 떠밀린 힐카누스가 헤롯을 소환하자, 헤롯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피고답지 않게" 나타났습니다. 자주색 왕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은 채, 완전 무장한 호위병으로 법정 안팎을 위협하듯 둘러쌌습니다(AJ 14.§170-171). 의원 71명 대부분이 그 위세에 겁먹어 침묵했습니다. 사형감인 줄 알면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 단 한 사람, 원로 사마야스 — 힐렐과 동시대의 존경받는 바리새인 지도자 — 가 일어서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대제사장이여, 저 피고처럼 당당하게 나온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처럼 범죄자를 두려워서 재판하지 못하는 재판관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오늘 처벌을 면하면, 장차 그가 여러분 모두를 처벌할 것입니다"(AJ 14.§172-176). 요세푸스는 이 예언이 정확히 실현됐다고 직접 주석합니다. 훗날 왕이 된 헤롯은 산헤드린 의원 다수를 처형하면서, 오직 이 사마야스와 그 제자 폴리오 두 사람만은 이날의 용기를 기억해 살려둡니다(AJ 14.§175).
힐카누스는 판결이 사형으로 기울자 "저녁으로 미룬다"는 핑계로 헤롯을 밤에 시리아로 도피시켰습니다. 헤롯은 다마스쿠스에서 군대를 받아 예루살렘을 칠 기세였지만, 아버지와 형 파사엘이 달려와 "성공한 자는 겸손해야 한다"며 만류해 가까스로 물러섰습니다(AJ 14.§180-184). 헤롯이 처음으로 정치적 자제를 배운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독살
BC 43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동방이 다시 요동쳤습니다. 브루투스·카시우스가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와 싸우려 동방에서 자금을 긁어모을 때, 카시우스가 유대에 700탈란트(약 2만 킬로그램의 은)를 강요했습니다. 헤롯은 갈릴리에서 가장 먼저 할당량을 채워 바쳐 카시우스의 총애를 얻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안티파테르가 독살당합니다. 힐카누스의 측근이던 이두매인 말리쿠스가 카이사레아의 연회에서 포도주 잔에 독을 탄 것입니다(AJ 14.§277-284). 요세푸스는 그 동기를 "안티파테르의 성공에 대한 질투와 자신이 유대의 실권자가 되려는 권력욕"으로 적습니다. 헤롯은 카시우스의 허가를 받아 군대를 보냈고, 로마 병사들이 티레 근처에서 말리쿠스를 처단했습니다.
파르티아의 폭풍
이어 동쪽에서 더 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BC 40년, 파르티아 제국이 유대를 침공했습니다. 파르티아 왕자 파코루스와 장군 바르자파르네스가 로마의 동방 공백을 노려, 마지막 하스몬 왕자 안티고누스와 손잡고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AJ 14.§330-369).
파르티아인은 평화 협상을 핑계로 헤롯의 형 파사엘과 늙은 힐카누스 2세를 성 밖으로 유인해 붙잡았습니다. 파사엘은 포로가 된 것을 알자 결심했습니다 — 적에게 고문당하느니 스스로 끝내겠다고. 손이 묶여 있어 머리를 감옥 벽에 부딪혀 목숨을 끊었습니다(AJ 14.§367-369). 요세푸스는 "적에게 몸을 넘기되 영혼을 넘기지 않았다"고 평합니다. 힐카누스는 더 비참했습니다. 안티고누스가 그의 귀를 물어뜯어, 다시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 대제사장은 신체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율법을 악용한 것입니다(AJ 14.§365-366).
왕국을 잃고 받은 왕관
헤롯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적의 손에, 형은 죽고, 외삼촌은 불구가 됐으며, 자기 목에도 값이 걸렸습니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 — 어머니 키프로스, 여동생 살로메, 약혼녀 마리암네와 그 어머니 알렉산드라 — 을 사해 서쪽의 난공불락 마사다 요새에 맡기고 밤중에 사막을 가로질러 탈출했습니다. 어머니의 수레가 전복되자 절망한 헤롯이 칼을 뽑아 자결을 시도했지만, 친구들이 가까스로 막았다고 요세푸스는 적습니다(AJ 14.§352-360).
나바테아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거절당하고,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환대를 받았으나 그녀의 제안은 사양한 채, 헤롯은 거의 난파할 뻔한 겨울 바다를 건너 로마까지 갔습니다. 로마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만나자, 두 사람은 원로원에서 사건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안토니우스가 열변을 토했습니다 — "헤롯이야말로 파르티아에 맞설 유일한 인물입니다. 안티고누스는 파르티아의 종이 됐지만, 헤롯은 로마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헤롯을 "유대인의 왕"(rex Iudaeorum)으로 선언했습니다(AJ 14.§381-389). 회의 후 헤롯은 두 권력자 사이에 끼어 신전에 올라 제사를 드리고 연회를 열었습니다. 왕국을 잃은 자가 왕관을 쓴 것입니다 — 그 왕국을 되찾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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