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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왕은 어떻게 왕국을 둘로 쪼갰나 — 요세푸스가 그린 솔로몬과 분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대와 가장 뼈아픈 분열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맞붙습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 왕이, 정작 자기 손으로 통일 왕국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는 게 이 이야기의 묘한 긴장입니다.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2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대와 가장 뼈아픈 분열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맞붙습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 왕이, 정작 자기 손으로 통일 왕국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는 게 이 이야기의 묘한 긴장입니다.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8권에서 솔로몬의 즉위부터 왕국 분열, 그리고 이집트의 침공까지를 다룹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성경만 따라가지 않고, 두로(페니키아)의 문서보관소와 그리스 사가들까지 끌어와 "이 역사는 외부 자료로도 확인된다"고 변증한다는 점입니다. 1세기 유대 지식인이 자기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세계사 무대 위에 올렸는지 보여 주는 사료입니다.

피로 굳힌 왕좌

솔로몬의 첫 일은 지혜로운 재판이 아니라 정적 숙청이었습니다. 넷째 형 아도니야가 다윗의 마지막 시녀였던 수넴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청하자, 솔로몬은 이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읽고 즉시 베나야를 보내 처형했습니다(AJ 8.§5-11). 왕실 여인을 얻는다는 건 곧 왕위를 노린다는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다윗의 노장 요압이었습니다. 위협을 느낀 요압은 성막으로 도망쳐 제단 뿔을 붙잡고 버텼지만, 솔로몬은 "제단 곁에서라도 쳐라"고 명해 그 자리에서 끝냈습니다(AJ 8.§12-15). 마지막은 다윗을 저주했던 베냐민 사람 시므이로, 왕궁 연금 조건을 어기고 가드까지 나간 것이 빌미가 됐습니다. 세 숙청이 끝나고 나서야 요세푸스는 "왕국이 솔로몬의 손에 굳게 섰다"고 적습니다.

칼을 가져오라 — 지혜의 재판

기브온 산당에서 솔로몬이 1,000번제를 드린 그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무엇을 주랴" 물었습니다. 솔로몬은 부도 장수도 아닌, "이 백성을 재판할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해 지혜에 더해 부와 영광과 장수까지 약속했습니다(AJ 8.§22-25).

그 지혜가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 두 여인의 재판이었습니다.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친모라 주장하자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눠 반씩 주라"고 명합니다. 진짜 어머니가 "차라리 저 여인에게 주고 죽이지만 마소서"라며 울부짖자, 솔로몬은 즉시 "살아 있는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라, 그녀가 어머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AJ 8.§26-34). 요세푸스는 이 한 건의 재판이 "솔로몬의 지혜를 온 세상에 알린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합니다.

7년의 성전, 그리고 두로와의 수수께끼 게임

두로 왕 히람 1세가 즉위 축하 사절을 보내자,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과 숙련 장인을 요청했습니다(AJ 8.§50-60). 목재는 뗏목으로 바다를 건너 운반됐고, 히람과 이름이 같은 두로의 구리 장인이 성전의 모든 금속 공사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요세푸스는 성경에 없는 이방 일화를 슬쩍 끼워 넣습니다. 솔로몬과 히람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주고받으며 내기를 했는데, 처음엔 솔로몬이 이겨 돈을 벌었지만 나중에 두로인 압데몬이 솔로몬의 수수께끼를 풀어 거꾸로 돈을 잃었다는 것입니다(AJ 8.§143-149). 그러면서 출처로 두로의 문서보관소와 메난드로스의 역사서를 직접 들며, "이 기록은 두로에 지금도 보존되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고 못 박습니다(AJ 8.§55, §144-149). 성경 밖 독립 사료로 성경 역사를 입증하려는 요세푸스 특유의 변증 전략입니다.

7년 만에 완공된 성전은 본체 길이 60큐빗, 너비 20큐빗, 높이 30큐빗. 온 벽을 금박으로 덮고, 12마리 소 조각이 떠받치는 거대한 놋쇠 "바다"(물 저수조)를 두었으며, 지성소에는 5큐빗 날개의 황금 그룹(케루빔) 둘을 언약궤 위에 펼쳤습니다(AJ 8.§72-98). 봉헌식 날 솔로몬의 기도가 끝나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성전을 채워 제사장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AJ 8.§106-108). 요세푸스는 이 구름을 시내산의 현존과 같은 것으로 풀이합니다. 봉헌 제사 7일과 초막절 7일, 도합 14일 축제 동안 소 2만 2천 마리와 양 12만 마리가 제물로 바쳐졌습니다(AJ 8.§123-124).

솔로몬의 그림자 — 악령 퇴치 주문과 스바 여왕

요세푸스가 전하는 솔로몬은 단순한 성군이 아니라 거의 만능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잠언 3천 편과 노래 1,005편을 지었고(요세푸스는 잠언·전도서·아가를 모두 그의 작품으로 봅니다, AJ 8.§44-45), 심지어 "악령을 쫓는 주문과 방법까지 고안했다"고 적습니다.

더 놀라운 건 요세푸스 자신의 목격담입니다. 그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앞에서 엘레아자르라는 유대 엑소시스트가 솔로몬의 주문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직접 봤다고 증언합니다 — 반지에 솔로몬이 지정한 약초 뿌리를 넣어 귀신 들린 자의 코에 내밀고, 옆에 물그릇을 놓아 귀신이 빠져나갈 때 그릇을 엎어 보이게 하는 식이었습니다(AJ 8.§46-49). 1세기 유대의 의학과 마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 주는 귀한 기록입니다.

스바(에티오피아) 여왕은 그 명성을 듣고 금 120탈란트와 보석, "예루살렘에 그렇게 많이 들어온 적 없던" 향료를 싣고 찾아왔습니다(AJ 8.§165-175). 여왕은 갖은 수수께끼로 솔로몬을 시험했지만 모두 풀리자 "내가 들은 것은 실제의 절반도 못 됐다"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채찍과 전갈 — 왕국이 둘로 찢어지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년에 무너졌습니다. 700명의 왕비와 300명의 첩, 대부분이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성경보다 더 단호하게 못 박습니다 — "여인에 대한 애정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이긴 것이다"(AJ 8.§190-193). 아스다롯·밀곰·그모스에게 산당이 세워졌고, 하나님은 두 번째로 나타나 "네 아들 때에 왕국을 찢으리라"고 경고했습니다(AJ 8.§196-198).

40년 통치 끝에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했습니다(AJ 8.§211). 북쪽 10지파가 세겜에 모여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청하자,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신중한 조언을 버리고 젊은 측근의 과격한 말을 따랐습니다 —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쳤으나 나는 전갈로 치겠다.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AJ 8.§213-217). 요세푸스는 이 어리석음조차 신학적으로 읽습니다. "르호보암이 지혜로웠다면 솔로몬에게 주신 예언이 어떻게 성취됐겠는가"(AJ 8.§218).

10지파는 등을 돌려 여로보암 1세를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곧 치명적 죄를 짓습니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면 마음이 유다로 돌아갈까 두려워,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세우고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한 신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AJ 8.§225-229). 레위인이 아닌 평민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명절 날짜까지 임의로 바꿨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결정을 "왕국 전체의 운명을 정한 치명적 죄"로 봅니다 — 200년 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어떤 왕도 이 송아지를 치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열 5년 만에 이집트 파라오 시삭(쇼셴크 1세, BC 925년경)이 예루살렘을 쳐 성전 보물을 약탈했습니다.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 500개를 모두 가져가, 르호보암은 놋 방패로 메워야 했습니다(AJ 8.§253-262). 요세푸스는 이를 우상숭배에 대한 징계로 풀면서도, "그리스 사가 헤로도토스는 이 파라오 이름을 조금 다르게 적었다"며 외부 사료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에서 1828년에 쇼셴크의 원정 기록이 발견되어, 이 사건은 독립적 물증까지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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