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다윗은 물매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국민 영웅이 됐습니다. 그런데 영웅의 자리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환호가 가시기도 전에 그는 왕의 창을 피해 광야로 달아나는 도망자가 됩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6권 후반부는 바로 이 추격과 도피의 이야기입니다. 사울의 시기, 요나단의 우정, 두 번이나 적을 살려준 다윗의 절제, 그리고 길보아 산의 비극적 최후까지. 같은 사건을 1세기 역사가의 눈으로 따라가면, 익숙한 이야기에서도 새로운 결이 보입니다.
물매돌 하나면 충분했다
다시 그 결투의 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블레셋 거인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나타나 도전했습니다 — 키 4큐빗 1스판(약 2.1m), 놋 투구, 5천 세겔(57kg) 무게의 비늘 갑옷, 베틀채 같은 창(AJ 6.§171). 사울의 진영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온 소년 다윗이 이 장면을 보고 나섰습니다. 사울이 자기 갑옷을 입혔지만 다윗은 벗고, 목자의 지팡이와 물매, 시내에서 고른 매끄러운 돌 다섯 개만 들고 나갔습니다(AJ 6.§180-187). 첫 번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고, 다윗은 거인의 칼로 그 목을 베었습니다. 블레셋 진영이 무너지자 사울의 군대가 추격했습니다.
시기의 창을 피해
영웅이 된 다윗에게 사울은 딸 미갈을 아내로 줬습니다. 그런데 지참금으로 블레셋인의 전리품 200개를 요구한 데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 다윗이 그 위험한 임무를 하다 죽기를 바란 것입니다(AJ 6.§196-205). 다윗은 살아서 200개를 가져왔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해 우정의 언약을 맺었습니다(AJ 6.§206, §225-236).
하지만 그 노래가 사울의 마음을 계속 찔렀습니다 — "사울이 천을 죽이고 다윗은 만을 죽였다"(AJ 6.§193).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은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두 번이나 창을 던졌고, 다윗은 그때마다 피했습니다(AJ 6.§211-214). 사울이 군대를 보내 집을 포위하자, 미갈이 남편을 창문으로 내려보내 도망치게 하고는 침대에 염소 가죽 인형을 넣어 시간을 벌었습니다(AJ 6.§217-218). 이 밤을 기점으로 다윗의 긴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광야의 동굴, 그리고 놉의 학살
다윗은 유대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아둘람 동굴에는 빚진 자, 불만을 품은 자, 곤경에 처한 자 400명이 모여들었고(AJ 6.§247), 훗날 600명이 됩니다. 제사장의 도시 놉에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내줬는데, 이를 알게 된 사울이 분노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제사장 처형을 거부하자, 이두매인 도엑이 손수 집행해 놉의 제사장 85명과 그 가족, 짐승까지 학살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장면을 "사울의 광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으로 묘사합니다(AJ 6.§254-270). 오직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만 다윗에게 도망쳐 살아남았습니다.
두 번 살려준 손
요세푸스가 특별히 강조하는 건 다윗의 절제입니다. 엔게디의 동굴에서 사울이 볼일을 보러 들어왔을 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을 뿐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내가 해치겠느냐. 그분이 심판하실 것이다"(AJ 6.§285-295). 두 번째로는 사울의 진영에 잠입해 머리맡의 창과 물병을 가져왔지만, 역시 손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외치는 다윗의 목소리에 사울은 "내가 잘못했다, 돌아오라 내 아들 다윗아"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AJ 6.§311-323). 하지만 사울의 회개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엔돌의 밤, 그리고 길보아
사울의 말년입니다. 블레셋이 대군을 모아 길보아 산 기슭에 진을 쳤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울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지만 응답이 없자, 자신이 직접 추방했던 엔돌의 무당을 변장하고 찾아갔습니다 —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려 한 것입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타난 사무엘의 영이 말했습니다 —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진영도 블레셋의 손에 넘겨지리라"(AJ 6.§327-339).
여기서 요세푸스는 긴 여담을 덧붙입니다. 적대적인 왕이 찾아왔는데도 마지막 식사를 정성껏 차려낸 엔돌 여인의 친절을 극찬하며, "그 관대함은 그리스 비극의 어떤 인물보다 고귀하다"고 평합니다(AJ 6.§340-342). 역사가가 익명의 한 여인에게 이런 헌사를 바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튿날 길보아 산. 블레셋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주했습니다.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먼저 쓰러졌습니다. 화살에 부상당한 사울은 갑옷부관에게 자신을 찌르라 했으나 거부당하자, 자기 칼에 엎어져 죽었습니다(AJ 6.§368-372). 블레셋은 사울의 시체를 벳산 성벽에 걸었지만,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밤에 시체를 수습해 정중히 장사했습니다 — 40년 전 사울이 구해주었던 바로 그 도시였습니다(AJ 6.§374-377).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쫓던 사울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애가를 불렀습니다 — "이스라엘의 영광이 산 위에서 쓰러졌도다. 강한 자가 어찌 엎드러졌는가"(AJ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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