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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그리스 철학으로 다시 쓴 유대 역사가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권의 창조와 대홍수

신약과 구약을 다 합쳐도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1세기에 한 유대인 역사가가 똑같은 문장으로 자기 대작을 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계를 만드셨다" —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고대사...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읽기 조회 4

신약과 구약을 다 합쳐도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1세기에 한 유대인 역사가가 똑같은 문장으로 자기 대작을 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계를 만드셨다" —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첫 줄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이 창세기 이야기를 그리스-로마 독자를 위해 옮겼다는 점입니다. 6일 창조에 그리스 우주론을 겹치고,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까마득한 수명을 천문학으로 변호하고, 노아의 방주가 "지금도 아르메니아에 남아 있다"는 1세기판 관광 정보까지 곁들였습니다. 성경을 외부의 눈으로 다시 읽는 가장 오래된 시도 중 하나입니다.

왜 유대 역사가가 창세기로 시작했을까

요세푸스는 1권 서문(AJ 1.§1-26)에서 이 거대한 작업의 목적을 밝힙니다. 그는 후원자 에파프로디투스 — 로마 귀족이자 문학 애호가 — 의 요청으로 "유대 민족 5천 년의 역사 전체"를 20권으로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유대인이 "방금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반역적 민족"으로 오해받던 시절에 이 민족의 유구함과 존엄을 증명하는 것. 둘째, 유대 율법의 합리성을 그리스-로마 지식인에게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세의 기록을 따르되 철저히 헬레니즘 언어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을 "신"(θεός)으로, 천사를 "하나님의 사자"로, 율법을 그리스 정치철학의 "정체"(πολιτεία)로 비유했고, 성경의 기적에 대해서는 "독자가 믿든 안 믿든 각자 판단에 맡긴다"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6일 창조와 에덴의 네 강

요세푸스는 창조 기사를 그리스 철학의 우주론과 나란히 둡니다 — "모세는 6일 만에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글자 그대로 6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 말씀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AJ 1.§29).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 필로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닮은 대목입니다.

첫째 날 빛, 둘째 날 궁창, 셋째 날 땅과 바다와 식물, 넷째 날 천체,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고(AJ 1.§30-39), 일곱째 날의 안식이 모든 율법의 기초인 안식일의 기원이 됩니다. 흥미로운 건 에덴동산의 네 강을 당대 지리로 식별한 것입니다 — 비손은 갠지스, 기혼은 나일, 힛데겔은 티그리스,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AJ 1.§38-39)로 식별합니다. 이어서 선악과의 시험, 뱀의 유혹, 추방, 그리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이어집니다.

요세푸스는 여기에 고고학적 논평을 즐겨 덧붙입니다. 가인의 후손 투발가인이 쇠와 청동 제련을 발견했다는 것(AJ 1.§64-65), 셋의 후손이 천문학 지식을 새긴 두 기둥(벽돌 하나, 돌 하나)을 세웠는데 홍수가 벽돌 기둥은 무너뜨렸지만 돌 기둥은 "오늘날까지 시리아 땅에 남아 있다"(AJ 1.§70-71)는 식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식이 보존됐다는 변증이었습니다.

900년을 산 사람들 — 장수의 변호

아담에서 노아까지 10세대. 요세푸스는 각 세대의 수명을 또박또박 적습니다 —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야렛 962세, 에녹 365세(하나님이 데려가심), 므두셀라 969세, 노아 950세(AJ 1.§82-88).

독자가 이걸 안 믿을 걸 그는 미리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수를 칩니다 — "누구도 당시 사람들의 장수를 기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받았고, 천체 관측을 위해 더 긴 생명이 필요했다 — 600년을 살지 않으면 태양과 달의 한 '대년(Great Year)' 주기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AJ 1.§104-106).

그리고 이방 역사가를 무더기로 증인석에 세웁니다 — "마네토가 이집트 역사를, 베로소스가 칼데아 역사를 썼고, 모코스와 헤스티아이오스와 헤시오도스와 헤카타이오스와 헬라니코스와 아쿠실라오스와 에포로스와 니콜라오스가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이 1000년 가까이 살았다고 기록한다"(AJ 1.§107-108). 그리스·이방 역사가 10명을 한꺼번에 나열한 것은 자신의 박학을 과시하면서 성경 기록의 신뢰성을 세우는 전형적인 요세푸스식 논증 전략이었습니다.

대홍수와 1세기의 방주 관광

인류가 거인(네피림)을 낳고 타락하자 하나님이 물로 멸하기로 하셨고, 의인 노아만이 가족과 동물을 구할 방주를 지으라 명받았습니다. 노아의 가족 여덟 명 — 노아 부부, 세 아들 셈·함·야벳과 그 아내들 — 만 살아남았습니다(AJ 1.§72-95). 비가 40일간 내리고 물이 150일간 불어 가장 높은 산보다 15큐빗 위까지 차올랐습니다.

방주는 아라라트 산 — 요세푸스는 "아르메니아의 고르디아이오이 산"으로 식별 — 에 내렸는데, 여기서 놀라운 주석이 붙습니다. "그 지역 주민들이 오늘날에도 방주의 잔해를 보여주며, 그것을 떼어 부적으로 쓴다. 니콜라오스 다마스쿠스도 세 번째 책에서, '아르메니아 위에 바리스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홍수 때 많은 이가 그리로 피해 살아남았고, 한 사람이 방주를 타고 그 꼭대기에 내렸으며 그 나무 조각이 오래 보존되었다'고 기록한다"(AJ 1.§92-95). 1세기에 이미 "방주 유적 관광"이 있었다는 셈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첫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약속하시며 무지개를 언약의 표징으로 주셨습니다(AJ 1.§99-103). 노아는 농사와 포도주의 발견자가 되었고, 처음 취해 막내 함에게 조롱당하자 함의 후손 가나안에게 종의 운명을 선언했습니다.

민족표와 니므롯의 바벨탑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모든 민족이 퍼져나갑니다. 요세푸스는 창세기 10장의 민족표를 크게 확장해 당대 민족과 성경 계보를 체계적으로 연결합니다(AJ 1.§122-147). 야벳의 후손 마곡은 스키타이인, 마다이는 메디아인, 야완은 그리스인(이오니아)의 조상이고, 함의 후손 쿠스는 에티오피아인, 미스라임은 이집트인, 셈의 후손 엘람은 페르시아인, 앗수르는 앗시리아인의 조상이라는 식입니다. 이 민족표는 후대 중세 학자들이 모든 민족의 기원을 추적하는 표준 도구가 됐습니다.

함의 손자 니므롯은 최초의 폭군이 됐습니다. 요세푸스는 창세기에 없는 니므롯의 연설을 새로 지어 넣습니다 — "번영은 하나님 덕이 아니라 너희 자신의 용기 덕이다. 다시 홍수가 오면 홍수보다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의 복수를 이기고 조상들의 파멸을 갚자"(AJ 1.§113-114). 그리스 비극의 전형적인 휘브리스(오만) 인물로 니므롯을 그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어를 혼란시켜 인류가 흩어졌고, 요세푸스는 그 장소를 바빌론이라 하며 "'바벨'은 히브리어로 '혼란'을 뜻한다"고 어원을 답니다(AJ 1.§117-118). 그리고 이 사건마저 이방 사료로 받쳐요 — 예언 여사제 시빌라가 "모든 인간이 한 언어를 쓰던 시절 하늘까지 탑을 쌓자 신들이 폭풍으로 무너뜨리고 각자에게 다른 언어를 주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AJ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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