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하면 보통 갈대 바구니, 십계명, 홍해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2권 후반부(AJ 2.§201-끝)에는 구약 어디에도 없는 청년 모세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 그가 이집트 장군이 되어 에티오피아를 정벌하고, 따오기 떼로 사막의 뱀을 청소하고, 적국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세푸스가 이런 일화를 넣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헬레니즘 독자에게 모세는 단순한 율법 입법자가 아니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견줄 영웅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가 시작되기 전, 이집트 왕자로 살았던 모세의 첫 40년을 따라가 봅니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조
요셉이 죽은 뒤 야곱의 가족 70명이 번성해 한 민족이 되자, 그 번성이 도리어 두려움을 불렀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조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AJ 2.§202). 많은 학자들은 이를 힉소스(아시아 출신 외래 왕조)를 축출한 뒤의 고유 이집트 18왕조로 추정합니다 — 외국인 일반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한 것입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한 점쟁이가 파라오에게 예언했습니다 — "이 시기에 히브리인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서 이집트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히브리인을 영광으로 인도할 것이다"(AJ 2.§205-206). 이 예언이 파라오를 두렵게 했고, 그는 이스라엘을 노예로 전락시켜 잔혹한 강제 노동을 부과합니다.
요세푸스는 그 노동을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 "강에 도랑을 파게 했고, 도시 둘레에 성벽을 쌓게 했으며, 둑으로 강의 범람을 막게 했고, 피라미드를 지어 올리게 했다"(AJ 2.§203). 피라미드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1세기 작가인데, 시대상으로는 다소 어긋나지만(피라미드는 훨씬 일찍 지어졌습니다) 그리스-로마 독자에게 익숙한 이집트의 상징을 쓴 것입니다. 학대가 심해질수록 이스라엘이 더 번성하자, 파라오는 끝내 "모든 히브리 남아를 나일강에 던지라"는 학살령을 내립니다(AJ 2.§206).
강물에 띄운 바구니
레위 지파의 아므람과 아내 요게벳이 학살령 한가운데서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절망이 깊던 그때, 요세푸스에 따르면 아므람이 잠결에 환상을 봅니다 — 한 인물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이 아이가 너희 백성을 이집트의 종노릇에서 구원할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의 기억은 히브리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영원히 존경받으리라"(AJ 2.§210-216). 구약에 없는 이 환상 장면은 모세의 운명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부모의 결심을 정당화합니다.
석 달 뒤 아이가 태어났고,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부모는 갈대로 엮어 역청을 바른 바구니에 아기를 담아 나일강 갈대숲에 띄웠습니다. 누이 미리암이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마침 파라오의 딸 — 요세푸스가 기록한 이름은 테르무티스(Thermuthis) — 가 강에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바구니를 발견합니다(AJ 2.§224). 자식이 없던 그녀는 이 아기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어떤 이집트 유모의 젖도 받지 않자(요세푸스는 이를 "하나님의 섭리"로 봅니다), 근처에 있던 미리암이 나서서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구해드리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친모 요게벳이 자기 아들의 유모로 정식 고용됩니다(AJ 2.§225-227).
테르무티스는 아이를 양자로 삼고 이름을 짓습니다 — "모세". 요세푸스는 그 어원을 친절히 설명합니다 — "이집트인은 물을 '모(mō)'라 하고 구원받은 자를 '우세스(uses)'라 한다. 그래서 '물에서 구원받은 자'라는 뜻으로 모세라 한 것이다"(AJ 2.§228). 그리스 독자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왕관을 짓밟은 아이
모세는 이집트 궁정에서 왕자처럼 자랐습니다. 여기서 요세푸스는 구약에 없는 고유 일화를 하나 더합니다. 어느 날 테르무티스가 어린 모세를 파라오에게 데려가 안겼는데, 파라오가 사랑스럽게 안고 농담 삼아 자기 왕관을 아이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러자 어린 모세가 왕관을 벗어 땅에 던지고 발로 짓밟았습니다.
이를 본 한 신성한 서기관이 외쳤습니다 — "이 아이가 그 예언의 아이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우리에게 재앙이 됩니다." 파라오가 죽이려 했으나 테르무티스가 가로채 구해냅니다(AJ 2.§232-237). 모세의 운명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드러나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따오기로 사막의 뱀을 청소하다
청년 모세에 관한 가장 길고 독특한 일화는 에티오피아 원정입니다(AJ 2.§238-253). 구약엔 전혀 없고,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작가 아르타파누스의 전승에서 왔다고 봅니다.
당시 에티오피아인이 이집트를 침공해 멤피스까지 이르자, 신성한 서기관이 신탁을 받아 "히브리 청년 모세를 사령관으로 삼으라"고 조언했습니다. 파라오는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 사실은 모세가 패해 죽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의외의 길을 택합니다. 보통은 강을 따라가지만, 그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더 짧고 위험한 길을 골랐습니다. 사막엔 독사가 가득했는데, 모세는 갈대 바구니에 따오기(이집트의 신성한 새)를 가득 담아 군대 앞에 풀어놓습니다 — 따오기가 본능적으로 뱀을 잡아먹기에,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길의 뱀을 모두 청소한 것입니다(AJ 2.§245-247).
이 기발한 전략으로 모세의 군대는 사막을 건너 에티오피아 후방에 갑자기 나타났고, 적은 패하여 수도 사바(후일 메로에)로 물러납니다. 사바는 나일강 지류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라 함락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도시 안에서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에티오피아 왕의 딸 타르비스(Tharbis) 공주가 성벽 위에서 군대를 이끄는 모세를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비밀 사절을 보내 "당신과 결혼하면 도시를 열어드리겠다"고 제안했고, 모세가 수락하자 사바가 함락됩니다. 모세는 약속대로 타르비스와 결혼한 뒤 군대와 함께 이집트로 귀환했습니다(AJ 2.§248-253).
요세푸스는 이 전승의 역사성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도는 분명합니다 — 모세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위대한 군사 지휘관으로도 부각하려는 것입니다.
미디안으로의 도주
승전의 영광이 도리어 모세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파라오와 사제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 "이 히브리 청년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다. 마음만 먹으면 왕좌를 빼앗을 것이다." 사제들이 음모를 꾸며 파라오에게 모세 처형을 주청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미리 알려주었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주합니다(AJ 2.§254-256). 이로써 이집트 왕자로서의 첫 40년이 끝납니다. 그가 출애굽기 무대에 다시 설 때까지, 모세는 다음 40년을 미디안의 양치기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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