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 고대사 · 타키투스
타키투스의 『연대기』와 『역사』를 로마 제국의 권력 기록으로 읽습니다.
티베리우스의 즉위에서 네로, 네 황제의 해, 플라비우스 왕조 초기까지 원로원·군단·속주의 긴장을 따라갑니다.
Taci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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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된 고대사 글
연대기 · 티베리우스
티베리우스 시대의 궁정과 원로원을 따라갑니다.
즉위 연기, 게르마니쿠스의 죽음, 세야누스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원수정 초기의 불안을 읽습니다.
"맡지 않겠습니다" — 거부 연기로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
서기 14년 9월, 로마 원로원에서 한 노인이 일어나 "나는 이 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가 말을 마쳤을 때, 그는 이미 제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맡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맡은 거예요. 타키투스는 『연대기』를 펼치는 첫 문장에서 독자와 계약 한 줄을 적어요. 공화정의 기억과 1인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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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숲으로 돌아간 군대 — 테우토부르크의 흰 뼈와 게르마니쿠스의 눈물
서기 9년, 로마는 게르마니아의 숲에서 군단 셋을 잃었어요. 그리고 6년 동안, 그 숲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서기 15년 가을, 한 로마 장군이 그 땅을 다시 밟아요. 거기서 그가 본 것을, 타키투스(Tacitus)는 『연대기』(Annales) 1.61에 한 문장으로 박아 둡니다 — medio campi alb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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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손도 전쟁도 아니었다 — 안티오키아에서 독으로 쓰러진 로마 황자
서기 19년 10월,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Antioch)의 한 침상 위에서 서른세 살의 로마 황자가 죽어가고 있었어요. 전쟁터에서 칼에 쓰러진 것도, 적의 매복에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무너뜨린 건 자기 집안에서 누군가 탄 독이었어요. 그의 이름은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로마 대중이 가장 사랑한 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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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귀족 여성의 사기 사건이 4,000명을 사막 광산으로 보냈다 — 로마의 첫 유대 추방
서기 19년 가을, 로마의 한 원로원 의원이 황제에게 사사로운 민원 하나를 들고 갑니다. 그의 아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었어요. 로마법으로 풀면 그저 민사 사기였습니다. 그런데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는 이 한 건의 사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버려요. 원로원 칙령이 내려졌고, 해방노예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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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중재자의 연기 — 1,968년 만에 땅에서 돌아온 청동판이 타키투스를 증명하다
서기 20년, 한 재판이 로마를 사로잡았어요. 게르마니쿠스(Germanicus)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시리아 총독 피소가 원로원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오늘날 세계 고전학에서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같은 사건을 두 번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타키투스(Tacitus)의 문장으로 — 서기 115년경,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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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지워진 이름 — 아우구스투스의 친딸은 왜 네 줄로만 죽었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유일한 친딸이 남이탈리아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굶어 죽었다는 기록은, 타키투스(Tacitus)에서 단 네 줄이에요. 『연대기』(Annales) 3.24. 제국을 세운 사람의 외동딸인데 말이죠. 그런데 이 짧음이 실수가 아니에요. 그건 의도된 침묵이었습니다. 타키투스에게는 기록의 부재가 곧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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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자연사"였던 죽음 — 로마 사가가 시간을 접어 넣은 독살 기록
서기 23년, 로마의 한 저택에서 황제의 친아들이 위장 통증을 호소하며 드러누웠어요. 며칠 뒤 그는 숨을 거뒀고, 로마는 슬퍼했고, 원로원은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공식 발표는 간결했어요 — 만성 질환, 점진적 쇠약, 자연의 순리. 그렇게 모두가 이 죽음을 "자연사"로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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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때문에 죽은 역사가 — 타키투스가 자기 작업의 원형으로 지목한 사람
원로원 결의로 책이 불태워진 날, 그 책의 저자는 이미 닷새째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있었어요. 서기 25년 로마, 조영관(造營官)들이 공공 광장 한 귀퉁이에 나무를 쌓고 두루마리들을 차례로 태우는 동안, 저자는 자기 집 침상에 누워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의 죄목은 단 한 줄이었어요. 그는 브루투스를 찬양했고, 카시우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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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섬으로 사라진 해 — 카프리의 침묵과 유대 총독 정치
서기 26년, 한 황제가 로마를 떠났어요. 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1년 뒤 그의 시신이 카프리 섬에서 본토로 옮겨질 때까지, 로마의 원로원은 그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어요. 타키투스는 황제의 은둔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요. 공식 이유는 건강, 그리고 점성술사 트라실루스(Thrasyllus)의 조언이었지만, 타키투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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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에서 처형까지 단 한 오후 — 로마 2인자 세야누스가 무너진 날, 그리고 타키투스가 잃어버린 문장
로마 원로원이 한 사람에게 환호를 올리던 바로 그 문장 안에서, 그 한 사람이 체포돼요. 서기 31년 10월 18일, 팔라티누스 언덕의 아폴로 신전, 오전이 오후로 기울던 어느 시각이었습니다. 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 근위대 장관 세야누스(Sejanus). 그가 신임 집정관의 입에서 나온 단 한 문장에 무너졌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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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을 기다린 복수 — 한 문장의 솔직함이 수주간의 굶주림으로 갚아진 해
황제가 한 사람의 질문을 19년간 기억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타키투스(Tacitus)는 그 질문을 『연대기』(Annales) 1.12에 한 줄로 적어둔 채 다섯 권을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 6.23에 와서야 비로소 대답해요 — 가능하다고. 그것도 굶겨 죽이는 방식으로요. 서기 33년, 세야누스가 처형되고 약 1년 반이 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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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마지막 숨을 막은 베개 — 티베리우스의 죽음과 타키투스가 남긴 다섯 얼굴의 부음
한 황제의 마지막 숨을 지킨 것은 의사가 아니라, 다음 황제의 손에 들린 베개였어요. 적어도 전승은 그렇게 전합니다. 서기 37년 3월, 78세의 티베리우스(Tiberius)는 11년간 유폐되다시피 머물던 카프리섬을 떠나 본토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기록돼 있지 않아요. 어머니 리비아도, 점성술사도, 아들도,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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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황실의 결혼, 독살, 화재, 재판을 읽습니다.
메살리나와 아그리피나, 브리타니쿠스, 보우디카, 로마 대화재, 피소 음모까지 권력이 사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봅니다.
황제가 살아 있는데 황후가 결혼식을 올렸다 — 역사가도 믿기 어려워한 메살리나의 마지막
서기 48년 가을, 로마 제국의 황제는 멀쩡히 살아 있었어요. 그런데 그 황제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정식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베일을 쓰고, 혼인 계약서에 서명하고, 공증인을 세우고, 로마 귀족 손님을 초대한 진짜 결혼식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냉정하기로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인데, 그조차 이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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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연설을 두 번 읽는 법 — 땅에서 돌아온 청동판이 폭로한 타키투스의 편집
같은 연설을 두 번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한 번은 위대한 역사가의 문장으로, 또 한 번은 그 연설을 실제로 한 사람이 직접 새긴 원문으로요. 고대사에서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설은 휘발되고, 우리에게는 보통 후대 역사가가 정리한 판본 하나만 남거든요. 그런데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서기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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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단상에 앉은 황후 — 로마 의전을 다시 그린 아그리피나의 3년
서기 48년 가을, 로마 황실에는 황후의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한 달 전 클라우디우스(Claudius)의 세 번째 아내 메살리나가 처형됐고, 그녀의 이름은 원로원 결의로 공공장소에서 긁혀 나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황제 본인은 그 빈자리를 채울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쉰여덟의 노황제, 같은 해에 두 번이나 사랑에 배신당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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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으로 지나간 총독 — 타키투스가 남긴 벨릭스의 유대 통치
타키투스(Tacitus)는 이 총독에게 딱 한 문장을 줬어요. 단 한 문장입니다. 『연대기』(Annales) 12.54의 라틴어는 이렇게 흘러요 — Cumanus Galilaeae, Felix Samariae impositus, "쿠마누스는 갈릴리에, 벨릭스는 사마리아에 임명되었다". 로마 원로원 귀족 역사가에게 해방노예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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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깃털, 그리고 한 사료의 침묵 — 클라우디우스 독살의 밤
서기 54년 가을, 팔라티움 위로 이상한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어요. 64세의 클라우디우스(Claudius)는 여름 내내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술이 좀 들어가자, 그는 친구에게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 "아내들이 내 운명이로구나. 한 번은 그녀들을 처벌하고, 한 번은 그녀들에게 처벌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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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속의 독 — 검사관이 끝내 막지 못한 한 모금
서기 55년 2월, 로마 팔라티움의 한 만찬장에서 열네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소년이 음료 한 모금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어요. 소년의 이름은 브리타니쿠스(Britannicus). 죽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이자, 혈통으로 따지면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였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음식 검사관이 미처 손대지 못한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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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투스가 침묵한 그해 — AD 58년 유대 총독 벨릭스의 폭정
같은 해를 세 명의 역사가가 적었는데, 셋 다 서로 다른 도시만 봤다면 어떻게 될까요. AD 58년이 바로 그런 해예요. 타키투스(Tacitus)는 로마 궁정만 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유대만 봤고, 누가(Luke)는 한 사도만 따라갔습니다. 타키투스는 Ann. 13.45에서 포파이아의 모든 자질을 셉니다 —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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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을 쳐라" — 아들이 보낸 칼 앞에서 황제의 어머니가 남긴 세 단어
서기 59년 봄, 나폴리 만의 휴양지 바이아(Baiae)에서 한 어머니와 아들이 오랜 반목을 끝내자며 끌어안았어요. 만찬은 따뜻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선창까지 배웅하며 눈과 가슴에 오래 입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포옹은 사실 정교하게 설계된 살해의 서막이었어요. 타키투스(Tacitus)의 『연대기』(Ann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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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맞은 여왕이 외친 한 단어, 자유 — 보우디카가 로마에 안긴 가장 비싼 청구서
서기 60년, 브리튼 동부의 한 속국왕이 죽으면서 영리한 유언을 남겼어요. 왕국의 절반을 네로 황제에게, 절반을 두 딸에게 물려준 거죠. 로마 법의 논리상 황제를 공동 상속인으로 지명하면 왕가가 보호받으리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그 믿음은 그가 눈을 감자마자 산산조각 납니다. 타키투스(Tacitus)의 『연대기』(Ann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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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욕조의 황후 — 네로가 자문가 시대를 끝낸 그해
서기 62년, 로마의 한 해 동안 네 사람이 사라졌어요. 친위대장 부루스, 스승 세네카(사실상), 황후 옥타비아, 그리고 해방노예 팔라스. 네로가 "5년의 선정"을 떠받쳐온 모든 기둥이 단 한 해에 철거된 거예요. 타키투스는 이 네 죽음을 한 묶음으로 엮어 자문가 시대의 종결을 기록합니다. 타키투스(Tacitus)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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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년 만에 멍에 밑을 지난 군단 — 어리석은 자는 살고 유능한 자는 죽다
서기 62년, 아르메니아 고원의 좁은 협곡에서 로마 군단 하나가 무기를 내려놓고 세 개의 창으로 엮은 낮은 문 아래를 한 사람씩 지나갔어요. 머리를 숙이고, 보급품도 다 두고, 적의 진영 한가운데를 통과해서요. 별것 아닌 장면 같지만, 로마인에게 이건 32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타키투스(Tacitus)는 『연대기』(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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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이 된 사람들 — 로마 대화재와 네로의 희생양 정치
서기 64년 7월, 로마가 9일 동안 불탔어요. 도시의 14개 구역 중 10곳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화재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특별한 이유는, 한 로마 귀족 역사가가 그 참사의 끝에 자기도 경멸하던 한 동방 종파에 대해 적어 넣은 단 몇 문장 때문이에요. 불은 키르쿠스 막시무스 곁 상점에서 시작됐어요. 바람·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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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여자는 침묵했고 귀족들은 배신했다 — 피소 음모와 세네카의 죽음
이틀 동안 고문받은 자유민 여성은 단 한 명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같은 음모단 안에서,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웠던 기사와 원로원 의원들은 첫 질문 앞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부터 내놓았습니다. 음모는 AD 64년 대화재 이후 한 해에 걸쳐 조직됐어요. 지도자로 세워진 인물은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Ga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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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연회처럼 — 우아함의 심판관 페트로니우스가 네로에게 남긴 마지막 평결
서기 65년에서 66년으로 넘어가는 로마, 네로의 숙청은 멈출 줄 몰랐어요. 피소 음모가 발각된 뒤 원로원 귀족들이 줄줄이 자살을 강요받던 그 무거운 계절에, 한 사람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었습니다. 울지도, 황제에게 아첨하지도, 철학을 읊지도 않았어요. 그는 죽음마저 평소의 저녁 식사처럼 치렀습니다. 타키투스(Ta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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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신에게 바친 피 — 타키투스의 펜이 멈춘 그 정원, 트라세아 파이투스의 최후
서기 66년 여름의 어느 오후, 로마의 한 정원에서 늙은 원로원 의원이 분수 옆에 무릎을 꿇었어요. 방금 자기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바닥에 받아 대리석 바닥에 뿌리며 한 문장을 말했습니다 — libate Liberi Patri sanguinem, "자유의 신께 이 피를 헌주하라."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곁에 선 젊은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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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네 황제의 해와 플라비우스 왕조의 출발을 봅니다.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의 시대를 내전과 속주 반란의 흐름으로 정리합니다.
통치하지만 않았더라면 — 한 줄로 황제를 지운 타키투스의 부음
서기 69년 1월 15일 아침, 일흔세 살의 한 노인이 로마 포룸의 포석 위로 굴러떨어졌어요. 그는 며칠 전까지 로마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자리를 둘러싼 군중 중 누구도 그를 구하려 손을 뻗지 않았어요. 이 노인이 바로 갈바(Galba)입니다. 네로가 죽은 뒤 제위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었지만, 그의 통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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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대가 팔린 값, 1백만 세스테르티우스 — 내전은 회계로 시작된다
로마 군단이 돈으로 거래된 날의 영수증은 단 한 장이었어요. 액수는 1백만 세스테르티우스. 빌려준 사람은 타키투스(Tacitus)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어느 부자였고, 빌린 사람은 스스로 황제의 양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서른일곱 살의 원로원 의원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Marcus Salvius Otho)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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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일 황제의 마지막 새벽 — 오토는 왜 이길 수 있는 전쟁을 버리고 죽었나
서기 69년 봄, 로마에는 황제가 둘 있었어요. 한 명은 게르마니아 군단이 세운 비텔리우스(Vitellius), 다른 한 명은 갈바(Galba)의 머리를 광장 포석 위에 굴리고 권좌를 빼앗은 오토(Otho)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4월 16일 새벽, 둘 중 한 명이 — 아직 패배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 스스로 가슴에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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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 끼, 먹기 위해 토한 황제 — 비텔리우스는 어떻게 제국을 "씹어 삼켰나"
서기 69년 봄, 오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네 황제의 해"의 세 번째 황제가 권좌를 차지했어요. 게르마니아 군단이 세운 거구의 사령관, 아울루스 비텔리우스(Aulus Vitellius)였습니다. 그런데 타키투스(Tacitus)가 『역사』(Historiae) 2권에서 이 황제를 진단하는 데 쓴 단어는 단 두 개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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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주일, 두 개의 진실 — 타키투스와 요세푸스가 따로 기록한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탄생
같은 일주일을 두 사람이 기록했어요. 한 명은 로마에서 원로원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던 귀족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였고, 다른 한 명은 그 일주일의 현장에 사슬로 묶여 있던 유대인 포로 요세푸스(Josephus)였습니다. 두 기록은 지금까지도 포개지지 않아요. 그리고 바로 그 어긋남 속에, 서기 69년 여름의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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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년을 산 도시가 나흘 만에 사라졌어요 — 크레모나 약탈과 네 황제의 해
서기 69년 가을, 한 도시가 나흘 만에 지도에서 지워졌어요. 크레모나(Cremona) —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던 바로 그해, 기원전 218년에 로마가 갈리아 키살피나 최북단에 세운 식민지였습니다. 286년 동안 두 차례 포에니 전쟁도, 킴브리족·튜튼족의 침공도, 카이사르의 내전도 모두 살아서 통과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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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적도 못 한 일을 로마인이 했어요 — 카피톨 신전이 불타던 밤
로마가 세워진 지 500년 가까이 지나 쓰인 책에서, 한 역사가가 도시의 전 역사를 돌아본 끝에 단 하나의 사건을 지목해 "가장 악한 행위"라 부릅니다. 타키투스(Tacitus)가 『역사』(Historiae) 3.72에 박아 넣은 facinus novissimum — "가장 악한 행위"가 그거예요. 갈리아인의 약탈도, 에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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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키운 반역자 — 라인강의 외눈 장교가 세운 '제2의 로마'
서기 69년, 로마는 한 해에 황제를 넷이나 갈아치우고 있었어요. '네 황제의 해'라 불리는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정작 가장 위험한 반란은 로마 한복판이 아니라 제국의 끝자락 라인강 삼각주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야만족 추장이 아니었어요. 라틴어 이름을 쓰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로마 보조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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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침으로 눈을 뜬 맹인 — 회의적인 로마 사가가 끝내 지우지 못한 증언
서기 70년 봄,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60세 황제가 맹인의 눈에 자기 침을 발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황제는 농민 출신이었고, 기적을 의심하는 성격이었고,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시력이 돌아왔다는 증언이 남았어요. 더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를 전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예요. 신앙심 깊은 사제도, 황제에게 아첨하려는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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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줄에 담은 멸망 — 타키투스가 한 동사에 실어 보낸 예루살렘의 운명
같은 일주일을, 같은 두 사내의 작별을, 같은 유대 해안의 봄 햇살을 두 역사가가 기록했어요. 한 사람은 마흔 단락을 썼고, 다른 한 사람은 다섯 줄을 썼습니다. 마흔 단락을 쓴 사람은 요세푸스예요 — 그는 거기 있었거든요. 다섯 줄을 쓴 사람은 타키투스(Tacitus)인데, 그는 거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줄,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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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 무너진 날 — AD 70년 예루살렘 포위와 로마의 승리
서기 70년 봄, 한 도시가 안에서부터 죽어가고 있었어요. 예루살렘은 세 파벌의 내전으로 쪼개져 매일 유대인이 유대인을 죽이고 있었고, 성벽 바깥에는 다섯 군단의 로마군이 포위선을 좁혀 오고 있었습니다. 그 여름이 끝나기 전, 헤롯이 46년에 걸쳐 증축한 거대한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어요. 유월절이 끝난 직후, AD 70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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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가의 눈먼 자리 — 타키투스가 유대 민족을 쓴 방식
서기 100년경의 어느 겨울 저녁, 로마의 한 서재에서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AD 56경-120경)가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 앞에는 막 끝낸 『역사』 5권의 초고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앞의 티투스, 다섯 군단, 세 파벌의 지도자. 그런데 그 포위 서사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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