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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투스가 침묵한 그해 — AD 58년 유대 총독 벨릭스의 폭정

같은 해를 세 명의 역사가가 적었는데, 셋 다 서로 다른 도시만 봤다면 어떻게 될까요. AD 58년이 바로 그런 해예요. 타키투스(Tacitus)는 로마 궁정만 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유대만 봤고, 누가(Luke)는 한 사도만 따라갔습니다. 타키투스는 Ann. 13.45에서 포파이아의 모든 자질을 셉니다 — 가문...

2026년 5월 30일 타키투스 『연대기』 읽기 조회 1

같은 해를 세 명의 역사가가 적었는데, 셋 다 서로 다른 도시만 봤다면 어떻게 될까요. AD 58년이 바로 그런 해예요. 타키투스(Tacitus)는 로마 궁정만 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유대만 봤고, 누가(Luke)는 한 사도만 따라갔습니다.

품위 있는 영혼만 빼고 다 가진 여자

타키투스는 Ann. 13.45에서 포파이아의 모든 자질을 셉니다 — 가문, 부, 교양, 재치, 외모. 그리고 한 문장으로 저울의 반대편을 기울여요 — huic mulieri cuncta alia fuere praeter honestum animum, "이 여자에게는 품위 있는 영혼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이 있었다." 다섯 단어가 포파이아의 부음(訃音)을 7년 먼저 써 둔 셈입니다.

문제는 그녀의 둘째 남편이었어요.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Marcus Salvius Otho) — 네로의 술친구이자 잘생긴 귀족, 훗날 AD 69년 "네 황제의 해"의 두 번째 황제가 될 인물입니다. 오토가 네로 앞에서 새 아내 포파이아의 아름다움을 자랑했어요(Ann. 13.45-46). 네로가 매혹됐고, 포파이아는 계산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녀의 목표는 황후 옥타비아의 자리였고, 그 목표는 4년 뒤 완성될 것이었어요(Ann. 14.60-64, AD 62).

그 사이의 과도기로 오토가 루시타니아 총독으로 임명됐습니다. 사실상 유배였어요. 오토는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서 10년을 보내요. 그 10년이 그를 AD 69년 갈바의 지지자에서 황제로, 그리고 베드리아쿰 전투 이후 자살자로 이끌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타키투스는 이 한 장면 — 한 남자가 아내를 자랑하고, 황제가 그 아내를 빼앗고, 남편을 속주로 치운 사건 — 을 13권의 실질적 종결 장면으로 배치해요. 그런데 같은 AD 58년, 지중해의 반대편에서는 세 개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타키투스는 거기에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성전 안에서 사라진 단검 — 대제사장 살해 청부

가이사랴에서 여섯 해째 속주를 다스리던 안토니우스 펠릭스(Antonius Felix)는 그해 중대한 결정을 내렸어요. 전직 대제사장 요나단(Jonathan ben Ananus)을 침묵시키기로 한 겁니다. 요세푸스 AJ 20.162-164가 기록해요. 요나단은 AD 52년 펠릭스의 부임 자체를 중재했던 유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펠릭스의 통치가 잔혹과 탐욕으로 기울자, 요나단은 그를 공공연히 비판했고 — 무엇보다 위험하게도 — 네로 황제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펠릭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계획은 우회적이었어요. 펠릭스는 요나단의 오랜 친구 도라스(Doras)를 매수했습니다. 도라스가 시카리(sicarii) — 옷 속에 단검(sica)을 숨긴 암살자들 — 를 고용했고, 축제 기간 예루살렘 성전 안쪽에서 대제사장이 군중에 섞였을 때 단검이 들어갔어요. 살해자는 애도하는 자들의 무리에 섞여 사라졌습니다. "시카리의 일반 범죄"로 위장이 끝난 거예요. 요세푸스의 평가는 가혹했습니다 —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멈추지 않는 공포 상태에 들어갔다"(AJ 20.165). 그 뒤 10년 동안 다른 제사장들이, 다른 귀족들이 같은 방식으로 쓰러질 것이었어요. AD 66년 유대 전쟁의 씨앗이 이 한 번의 청부 안에 심겼습니다.

그리고 타키투스는 — 같은 해 로마 원로원에서 한 내연녀 폰티아(Pontia)의 살해(Ann. 13.44)는 따로 기록한 그 타키투스는 — 유대 대제사장의 살해를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제국의 변두리에서 속주의 제사장이 죽은 것은, 로마 엘리트 역사가의 펜에 잡히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470명의 야간 호송, 그리고 가이사랴 궁전

의·절제·심판, 그리고 "틈이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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