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단이 돈으로 거래된 날의 영수증은 단 한 장이었어요. 액수는 1백만 세스테르티우스. 빌려준 사람은 타키투스(Tacitus)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어느 부자였고, 빌린 사람은 스스로 황제의 양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서른일곱 살의 원로원 의원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Marcus Salvius Otho)였습니다.
그가 그 돈을 쓴 대상은 원로원도, 로마 시민도, 속주 군단도 아니었어요. 황궁 언덕의 근위대(Praetoriani) 9천 명이었습니다. 타키투스는 이 액수 — HS 1,000,000 — 를 어떤 수사적 장식도 없이 평범한 장부 기재처럼 적어 놓아요(Hist. 1.24). 그리고 그 평범함이 이 권 전체의 해석 틀을 만듭니다 — 내전은 전투로 시작되지 않는다, 내전은 회계로 시작된다.
토양을 만든 한 문장
토양을 만든 건 갈바 자신이었어요. 서기 68년 10월 로마에 입성한 일흔세 살의 갈바(Galba)는, 네로가 14년간 지켜온 실용주의를 공화주의 원칙으로 해체합니다. 새 황제는 근위대에 관례적 보너스(donative)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는 이 원칙을 측근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줬고, 타키투스는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
legi a se militem, non emi.
나는 병사를 뽑지 돈으로 사지 않는다.
라틴어 legere는 "고르다"이면서 동시에 "읽다"라는 뜻도 가져요. 갈바는 자신이 병사의 이름을 읽어서 고른다고 말한 겁니다 — 시장의 흥정이 아니라 공화정의 추천 장부처럼요. 반면 emere는 물건을 사는 동사, 노예 시장과 곡물 거래의 동사예요. 한 문장 안에서 갈바는 제국의 현실을 통째로 부정한 셈입니다.
문제는 근위대가 그 공화주의 장부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들은 네로 치세 14년간 즉위 때마다, 위기 때마다 은 동전이 손에 쥐어지는 현실만 알았거든요. 근위대 장관 님피디우스 사비누스(Nymphidius Sabinus)가 직접 황제가 되려다 살해당한 뒤에도(Hist. 1.5) 병영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약속 없이 통치하는 황제 아래에서, 9천 자루의 칼은 그저 잠시 칼집에 들어가 있었을 뿐이에요.
위험과 필요
오토는 그 칼집을 열 사람이었어요. 루시타니아에서 10년에 가까운 총독 생활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갈바의 양자가 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측근 비니우스(Titus Vinius)가 그 방향을 밀고 있었고, 네로 시기 포파이아(Poppaea)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 단련된 정치적 수완도 그의 편이었어요. 그러나 서기 69년 1월 10일, 갈바는 원로원 귀족 피소 리키니아누스(Piso Licinianus)를 양자로 지명합니다(Hist. 1.15–1.16). 같은 연설을 듣고 있던 오토에게 그것은 선고문이었어요. 그는 그날 저녁부터 쿠데타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타키투스는 오토의 내면을 두 단어로 요약해요(Hist. 1.21) — periculum(위험)과 necessitas(필요). 양자 지명을 놓친 자는 공적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 대상이었거든요. 오토는 자신이 다음 숙청 명단 첫 줄에 있으리란 걸 계산했고, 빚은 이미 쌓여 있었어요. 루시타니아에서 귀국한 뒤 원로원 의원의 생활 수준을 맞추느라 파산 직전까지 차용한 상태였고, 그 부채는 제위에 오르지 못하면 갚을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돈이 그를 쿠데타로 몰았다기보다, 돈의 부재가 그의 퇴로를 막았다고 타키투스는 암시해요.
돈, 점성가, 노예 네트워크
설계의 재료는 세 가지였어요 — 돈, 점성가, 그리고 노예 네트워크.
타키투스는 이 대목에서 라틴어 하나를 고릅니다 — vulgus militum("병사 떼", Hist. 1.25). 귀족 시민권자도, 공화주의 장부 속 이름도 아니라, 시장의 군중이라는 뜻이에요. 갈바가 legere("골라 읽다")로 거부한 것을, 오토가 emere("사다")로 사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도시, 정반대의 두 문법이었어요.
건축가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1월 15일 아침, 팔라티움 언덕에서 종교 의식이 열렸어요. 갈바가 희생 제물의 내장을 살피며 불길한 조짐을 읽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오토 곁의 오노마스투스가 한 줄의 암호를 전합니다 — "건축가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오토는 의식을 떠나 포룸으로 내려갔고, 스물세 명의 기병이 그를 근위대 병영(Castra Praetoria)으로 호위했어요. 병영 문 앞에서 오토는 짧게 연설합니다(Hist. 1.27) — "나를 너희의 지휘관으로 인정해 달라."
병사들은 처음엔 망설였어요. 그 망설임을 깬 건 연설이 아니라 포룸에서 도착한 한 통의 보고였습니다 — 갈바가 쿠르티우스 못 근처에서 쓰러져 살해됐다는 보고. 노인의 가마가 흔들리다 기울었고, 근위병 중 누구도 그 앞에 서지 않았어요. 타키투스가 남긴 그 장면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 모두가 그의 살해를 원했고, 누구도 그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Hist. 1.40–1.41).
같은 날 오후 비니우스(Hist. 1.42)·피소(Hist. 1.43)·라코·이켈루스(Hist. 1.46)가 전원 살해됐어요. 포룸 포석 위에 갈바의 머리가 굴러다녔습니다. 저녁에 원로원이 긴급 소집되어 만장일치로 오토를 아우구스투스로 추대했어요. 저항도, 토론도 없었습니다. 타키투스는 이것을 원로원의 두려움(timor senatus)이라고 불러요. 갈바의 양자 연설이 설파한 이상 — "우리가 선택되기 시작했다" — 이 같은 날 저녁 조롱거리로 바뀌는 속도였습니다.
라인 강의 다른 장부
그런데 같은 주간, 라인 강 건너편에서는 전혀 다른 경제가 작동하고 있었어요. 서기 69년 1월 1일 새해 맹세의 날,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의 두 군단이 갈바에게 맹세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대신 SPQR("원로원과 로마 시민")의 이름으로만 맹세했어요(Hist. 1.55). 하루 뒤인 1월 2일,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의 군단이 자신들의 총독을 황제로 외쳤습니다 — 탐식과 무관심으로 유명한 쉰네 살의 아울루스 비텔리우스(Aulus Vitellius)였어요.
타키투스는 그를 한 문장으로 해부합니다 —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인물(neque boni neque mali, Hist. 1.9). 갈바가 그를 게르마니아로 보낸 이유가 바로 그 무해함이었거든요. 그러나 구조는 인물보다 강했어요. 라인 방어선의 정예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비텔리우스는 거부할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수동적으로 황제가 됐어요. 게르마니아 군단의 불만 역시 오토가 근위대를 설득했던 것과 같은 언어로 조직돼 있었습니다 — 갈바는 보너스를 약속하지 않았고, 라인 방어선을 지키는 대가도 내놓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진압한 빈덱스를 사후에 "애국자"로 복권시키려 했거든요. 병사들에게 이건 "우리가 잘못된 편에 섰다"는 메시지였어요.
실질적 추동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파비우스 발렌스(Fabius Valens) — 타키투스가 fraudulentus("기만적")로 평한 야심가(Hist. 1.7). 그리고 카이키나 알리에누스(Caecina Alienus) — 갈바의 뇌물 혐의로 처벌 위기에 몰려 게르마니아로 도주한 스물다섯 살의 재무관, "젊음과 체격과 걸음의 위엄"으로 기억된 청년(Hist. 1.53). 두 사람은 약 4만과 3만의 병력을 이끌고 두 갈래 알프스 고개를 넘어 북이탈리아 크레모나 평원에서 합류하기로 했어요. 진군 중 그들은 갈리아 남부 민간인을 약탈하고 헬베티이 부족을 무자비하게 진압합니다(Hist. 1.63, 1.66, 1.68). 로마 군단이 로마 속주를 약탈하는 이 장면이야말로 "내전의 진정한 얼굴"이었어요.
매수는 매수를 부른다
오토가 비텔리우스 추대 소식을 받은 건 1월 말이었어요. 쿠데타로 황제가 된 지 2주 만에, 다른 군단이 세운 다른 황제를 상대해야 했던 거예요. 그는 먼저 외교 카드를 꺼냅니다 — 비텔리우스에게 공동 통치(collegium)를 제안하는 편지였어요(Hist. 1.74). 비텔리우스는 거부합니다. 정확히는 발렌스와 카이키나가 거부했다고 하는 편이 맞아요. 라인 군단은 이미 알프스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협상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성의 문제였습니다.
오토는 병력을 소집했어요 — 자신을 황제로 만든 근위대, 네로가 창설한 신설 군단, 라벤나 함대와 미세눔 함대. 그러나 타키투스가 기록한 집결 장면에는 어떤 승리의 예감도 없습니다(Hist. 1.87–1.89). 이 병력은 라인 강에서 수십 년간 게르만족과 싸운 비텔리우스 군단의 실전 경험에 비하면 경험 부족이 약점이었거든요. 오토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는 3월 중순, 포(Po) 강을 향해 북이탈리아로 진군하기로 결정합니다. 타키투스는 1권을 한 문장의 극적 단절로 닫아요 — iam bellum erat, "이제부터는 전쟁이다"(Hist. 1.90).
흥미로운 건, 오토가 자신이 한 번도 지휘해 본 적 없는 병력을, 서로 다른 이유로 충성하는 측근들과 함께 이끌어야 했다는 점이에요. 보우디카 반란을 진압한 베테랑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Suetonius Paulinus)는 지연 전략을 본능적으로 선호했고, 오토의 친형 살비우스 티티아누스(Salvius Titianus)는 동생의 왕관이 곧 자기 운명이었기에 신속한 결정을 밀어붙일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군막 안에서 이미 베드리아쿰의 비극적 결정 구조가 예고되고 있었던 거죠. 오토의 쿠데타는 일관된 계산서 한 장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전쟁은 서로 모순된 여러 장의 계산서로 치러질 운명이었어요. 결국 모든 게 한 장의 영수증으로 되돌아옵니다.
갈바가 legi a se militem, non emi("나는 병사를 돈으로 사지 않는다")를 선언한 지 석 달 만이었어요. 그는 병사를 돈으로 사지 않는 원칙을 지키다, 돈으로 산 병사의 손에 살해됐습니다. 오토는 1백만 세스테르티우스로 제위에 올라, 같은 달 안에 라인 강의 무상 관성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가 됐고요. 매수의 경제학 — 약속된 돈과 매월 보너스 — 이 엄격주의의 도덕주의 — legere, non emere("골라 읽되 사지 않는다") — 를 제압했지만, 매수는 곧 또 다른 매수를 불러왔어요.
이게 바로 "네 황제의 해"(서기 69년)의 작동 원리예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이 끝나고 황제 계승의 규칙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칼과 돈이 메우기 시작합니다. 갈바는 돈을 거부하다 죽었고, 오토는 돈으로 사들였지만 그 충성이 라인 군단의 경험 앞에서 무너질 운명이었어요. 타키투스가 『역사』 1권의 핵심 패턴으로 설계한 "근위대 충성의 가격"은 양쪽 모두에서 증명됐습니다 — 원칙의 비용(갈바)과 매수의 연쇄(오토).
베드리아쿰의 평원은 아직 피로 젖지 않았고, 오토가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될 날은 아직 95일 뒤의 일이었어요. 그러나 그 95일의 모든 계산서는 이미 1월 15일 아침, 오노마스투스가 오토에게 전한 한 줄의 암호에 인쇄돼 있었습니다 — 건축가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 건축가는 살인자였고, 오토는 자기 다음 챕터를 스스로 매수할 수 없는 영수증 위에 서명하고 있었던 거예요.
다음 편은 오토가 선택한 죽음 — 베드리아쿰과 자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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