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황제의 마지막 숨을 지킨 것은 의사가 아니라, 다음 황제의 손에 들린 베개였어요. 적어도 전승은 그렇게 전합니다.
서기 37년 3월, 78세의 티베리우스(Tiberius)는 11년간 유폐되다시피 머물던 카프리섬을 떠나 본토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기록돼 있지 않아요. 어머니 리비아도, 점성술사도, 아들도, 며느리도, 양자도, 그 양자의 과부도 모두 먼저 떠났고, 남은 건 이 늙은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시대의 마지막 숨, 그리고 타키투스(Tacitus)가 그 숨 위에 새긴 가장 복잡한 부음에 관한 것입니다.
로마에 닿지 못한 함대
서기 37년 3월 초, 티베리우스의 함대가 카프리를 떠났어요. Capreas secessit("그가 카프리로 물러났다") 한 문장으로 11년 전 바위섬에 스스로를 유폐했던 황제가 마침내 본토로 향한 거예요. 하지만 그는 로마에 닿지 못했습니다.
타키투스 Ann. 6.50이 그 여정을 짧게 적어요. 폭풍이 배를 막고 건강이 다시 무너져, 함대는 미세눔(Misenum) — 캄파니아의 해군 기지, 나폴리 만 북단 — 에 정박했습니다. 3월 16일, 황제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어요.
침상을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칼리굴라(Caligula)가 있었습니다. 게르마니쿠스의 셋째 아들, 24세. 23년 전 라인강 군영에서 아버지의 작은 군화를 신고 뛰어다녔기에 병사들이 붙여준 별명 "작은 군화"가 이제 그의 공식 이름이 돼 있었어요. 그의 어머니와 두 형은 모두 이 황제의 명령으로 죽었고, 그는 살아남은 유일한 교량이었습니다 — 황제의 섬에서 사실상 황실 노예처럼 길러진 손자였죠. 그 옆에는 마크로(Quintus Naevius Sutorius Macro)가 있었어요. 세야누스의 후임 근위대 장관이자, 5년 반 전 원로원에 두 통의 편지를 들고 들어가 전임자 세야누스를 체포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한 번 멈췄던 숨이 다시 돌아왔을 때
마크로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황제의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내 칼리굴라에게 건넸어요. 제국의 봉인이 그 자리에서 이양된 거예요. 원로원에 보낼 서한이 미세눔 방 안에서 이미 작성되고 있었고, 칼리굴라가 방을 나서자 병사들이 그를 향해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대는 이미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준비가 돼 있었어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침상의 노인이 눈을 떴어요.
타키투스가 비워둔 주어
이 장면을 타키투스는 수동태와 생략으로 처리해요. 누구의 명령인지 끝내 밝히지 않는 한 문장으로요.
iacentem multo vestimento tegendum censuere
"누워 있는 그를 옷 여러 겹으로 덮기로 그들이 결정했다."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 주어가 누구인지, 타키투스는 말하지 않습니다. Dissimulatio — 그가 평생 이 황제를 분석하는 데 썼던 그 수사학 장치를, 이번엔 자기 서술 자체에 적용한 거예요. 황제 살해 의혹을 명시하는 건 서기 100년경의 저술가에게도 여전히 정치적 위험이었거든요.
수에토니우스는 이 침묵을 보완합니다. Tiberius 73에서 전승의 직접 화법이 나와요 — Macro premente oppressum, "전승에 따르면 마크로가 눌러 질식시켰다." 다른 전승은 칼리굴라 자신이 베개를 얹었다고 하고요.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습니다. 카이사르의 눈이 다시 감겼고, 이번엔 열리지 않았어요. 그날 저녁 미세눔의 별장에서, 로마 원로원이 끝내 보지 못한 두 번째 죽음이 조용히 집행됐습니다. 공식 기록은 고령에 의한 자연사였어요. 서기 37년 3월 16일, 재위 22년 7개월이었습니다.
다섯 단계, 다섯 얼굴
타키투스는 Ann. 6.51에서 붓을 멈춰요. 이제 필요한 건 마지막 판결입니다. 그는 부음을 다섯 단계 인물 변화의 형태로 응축했어요. 현존하는 『연대기』 전체에서 가장 복잡한 부음이자, 그가 자기 부음 수사학을 완성한 지점입니다. 라틴 원문은 한 호흡으로 써 내려가요 — Morum quoque tempora illi diversa…, "인물의 시대들마저 그에게 그토록 달랐다." 그 다섯 단계는 이렇습니다.
- 사적 시민이거나 아우구스투스 아래 직위에 있을 때에는 삶과 명성이 탁월했다.
- 게르마니쿠스와 드루수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미덕을 가장하며 음험하고 교활했다.
- 어머니 리비아가 무사한 동안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었다.
- 세야누스를 사랑하거나 두려워하는 동안에는 잔혹이 끝이 없었으나 정욕은 가려져 있었다.
- 마지막으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는 범죄와 수치로 한꺼번에 몰락하며 자기 본성만을 사용했다.
다섯 단계, 다섯 얼굴. 하지만 타키투스의 차가운 결론은 마지막 어구에 있어요 — suo tantum ingenio utebatur("자기 본성만을 사용했다"). 앞의 네 단계는 외부 조건이 만든 가면이었다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투스·게르마니쿠스·리비아·세야누스, 이 네 명의 억제자가 차례로 사라지자 비로소 드러난 것이 티베리우스 본인의 ingenium(타고난 본성)이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전기의 구조 자체예요. 평생 Dissimulatio(겉과 속을 가리는 통치술)를 썼던 인물의 최종 평가를, 타키투스는 Dissimulatio 자체를 해부하는 방식으로 서술합니다. 반어로도, 균형으로도, 생략으로도, 단순한 양가 서술로도 담을 수 없는 한 생애를, 그는 구조적 분석으로 대답해요. 다섯 단계의 냉소적 목록이 한 인물 전체를 가리는 동시에 드러냅니다 — 양가적이되 경멸적인, 경멸적이되 양가적인 마지막 판결이에요. 이 부음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죽음(Ann. 1.9)에서 시작해 티베리우스의 죽음(Ann. 6.51)에서 닫히는 곡선, 즉 22년 7개월에 걸친 『연대기』 전반부의 전체 뼈대가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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