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Tacitus)는 이 총독에게 딱 한 문장을 줬어요. 단 한 문장입니다. 『연대기』(Annales) 12.54의 라틴어는 이렇게 흘러요 — Cumanus Galilaeae, Felix Samariae impositus, "쿠마누스는 갈릴리에, 벨릭스는 사마리아에 임명되었다". 로마 원로원 귀족 역사가에게 해방노예 출신 하나의 속주 발령은 그 이상 주목할 가치가 없었던 거죠.
한 문장 대 여섯 문단
요세푸스(Josephus)는 같은 사건에 여섯 문단을 썼어요.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20.137에서 그는 벨릭스(Felix)가 쿠마누스의 후임으로 유대 전역을 단독 통치하게 됐다고 기록합니다 — 타키투스와 다른 증언이에요. 현대 학자 대부분은 요세푸스를 따릅니다. 유대 지방의 행정 연표라면 유대인 역사가가 더 정확할 수밖에 없었죠.
헤롯의 딸, 드루실라
드루실라의 혼인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 남자를 차례로 거쳤어요. 첫 약혼자 콤마게네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 할례를 거부해 파혼됐습니다. 두 번째는 에메사(시리아) 왕 아지주스 — 할례를 받아들였고 서기 53년경 결혼이 성사됐죠. 그리고 그 이듬해, 벨릭스가 가이사랴로 부임한 직후 드루실라의 아름다움에 관한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갔어요. 벨릭스는 시몬(Simon)이라는 키프로스 출신 유대인 마술사를 에메사로 보냅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직함을 magos, 곧 마술사라 불러요. 시몬은 드루실라를 설득했어요 — 남편을 떠나 벨릭스에게 가면 복을 받을 거라고요. 드루실라는 설득됐고, 유대 율법을 어기고 아지주스와 이혼한 뒤 벨릭스의 세 번째 아내가 됐습니다.
수에토니우스는 벨릭스를 trium reginarum maritum, "세 왕녀의 남편"이라 불렀어요(Suet. Claud. 28). 해방노예 출신 유대 총독이 세 왕녀를 아내로 둔 거죠. 그 세 번째가 드루실라였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결혼을 단호히 비판해요 — 드루실라는 "조상의 관습을 버렸다"(AJ 20.143)고요. 자발적 이혼은 유대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는데(신 24:1은 남편만이 이혼장을 주도록 규정), 드루실라는 그 율법의 경계를 건넌 거예요.
사백칠십 명의 호위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
- 의(dikaiosynē) — 유대 전역을 6년간 통치하며 대제사장 요나단을 청부 살해하고(AJ 20.162) 시카리를 사병처럼 이용하며 뇌물을 탐한 그 통치의 의로움이요.
- 절제(enkrateia) — 세 왕녀를 아내로 둔 남자의 절제, 아지주스의 침상에서 여자를 빼앗아 온 남자의 절제,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율법을 어기고 이곳에 이른 여자의 절제요.
- 장차 오는 심판(krima to mellon) — 오늘의 권력도, 오늘의 결혼도, 오늘의 계급 상승도 무의미해지는 마지막 법정이요.
끝내 오지 않은 편리한 때
타키투스의 회고적 판결은 『역사』 5.9에 놓여 있어요. 벨릭스가 총독직을 마친 지 약 40년 후에 쓰인 한 구절에 로마 귀족의 경멸이 응축돼 있죠 — ius regium servili ingenio exercuit, "왕의 권세를 노예의 정신으로 행사했다"고요. ius regium 대 servili ingenio, 왕의 권세 대 노예의 정신. 라틴어 명사의 대립 구조가 그 자체로 타키투스의 사회관이에요. 신분이 본질을 결정한다, 해방노예는 해방되었어도 노예다, 총독의 권력을 줘도 노예의 정신으로 쓸 뿐이다 — 이게 벨릭스에 대해 타키투스가 남긴 유일한 평가였습니다. 12.54의 한 문장 발령과 5.9의 한 문장 부음, 로마 귀족 사가의 펜에서 벨릭스는 두 문장으로 열리고 닫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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