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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가의 눈먼 자리 — 타키투스가 유대 민족을 쓴 방식

서기 100년경의 어느 겨울 저녁, 로마의 한 서재에서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AD 56경-120경)가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 앞에는 막 끝낸 『역사』 5권의 초고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앞의 티투스, 다섯 군단, 세 파벌의 지도자. 그런데 그 포위 서사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유대...

2026년 5월 30일 타키투스 『역사』 읽기 조회 1

서기 100년경의 어느 겨울 저녁, 로마의 한 서재에서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AD 56경-120경)가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 앞에는 막 끝낸 『역사』 5권의 초고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앞의 티투스, 다섯 군단, 세 파벌의 지도자. 그런데 그 포위 서사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유대 민족에 관한 긴 여담(digressio)을 11장 분량으로 끼워 넣었어요(Hist. 5.2-13).

이 여담은 그의 사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자, 동시에 그의 편견이 가장 밀도 있게 응결된 부분입니다. 위대한 관찰자가 한 민족을 어떻게 잘못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잘못된 시선이 어떻게 천 년 넘게 살아남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미리 짚어 둘 게 있어요. 타키투스의 유대 서술은 명백한 사가의 편향이고, 본 글은 그 편향을 사실로 옮기는 게 아니라 편향으로서 짚어 읽습니다.

여섯 가지 기원설, 그러나 빠진 하나

타키투스는 유대 민족의 기원에 대해 여섯 가지 설을 병기했어요(Hist. 5.2-3). 크레타 이다산(Mount Ida) 숭배자들의 이주설, 이집트 과잉 인구의 이주설, 에티오피아 케페우스 왕 시대 난민설, 아시리아 정착 실패설, 호메로스가 언급한 리키아의 솔림(Solymi) 민족 후손설, 그리고 가장 길게 기술한 여섯 번째 — 이집트에 나병이 창궐하자 보코리스 왕이 신탁에 따라 나병 환자들을 추방했고 그 지도자가 모세였다는 설입니다. plurimi auctores consentiunt, "대부분의 저자들이 동의한다"고 그는 여섯 번째 설을 변호하며 자기 선호를 드러내요.

여섯 설을 나란히 놓는 그 방식은 학자적 중립성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섯 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어느 것도 유대 민족 자신의 증언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느 것도 그들의 거룩한 책(libri sacri)을 읽지 않습니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 부르심, 출애굽기의 열 재앙, 시내산의 율법 수여 — 유대인 스스로의 자기 이해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거죠. 출애굽기가 "하나님이 압제에서 구원하신" 구속사로 기록한 사건을, 타키투스는 정반대로 "이집트가 나병 환자를 쫓아낸" 추방사로 뒤집습니다.

읽지 않은 책 한 권

가장 어두운 나병 추방설은 어디서 왔을까요. 타키투스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어요. BC 3세기 이집트 사가 마네토(Manetho)의 Aegyptiaca, 그리고 AD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변론가 아피온(Apion)의 Contra Iudaeos.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다르게 썼지만 목적은 같았습니다 — 유대 민족의 도덕적 기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가 읽지 않은 책이 한 권 있었어요. 요세푸스의 Contra Apionem(아피온 반박문). 바로 그 반유대 수사를 조목조목 반박한 2권짜리 논저입니다. AD 95년경 로마에서 출간되어 도미티아누스 궁정의 유대 인맥이 보관하고 있었지만, 타키투스는 그 책을 읽지 않았어요. 혹은 읽고서도 무시했습니다. 한 사가가 자기 시대의 결정적 반박서를 펼치지 않았다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그건 선택이었습니다. 사료를 고르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입장이라는 걸 이 대목이 보여줘요.

안식일은 게으름인가 — 풍습의 병리적 환원

이어지는 장(Hist. 5.4-5)에서 타키투스는 유대 종교의 풍습을 자연주의적·병리적으로 환원해요. 안식일은 "여행의 피로에서 비롯된 관습"으로, 일곱째 해의 안식년(annus sabbaticus)은 "나태의 유혹에 굴복한 결과"로 적습니다. 돼지고기 금기는 "나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위생 관습이고, 형상 금지는 "알 수 없는 존재를 숭배하는 무신론"이라고 써요.

그리고 유대 율법의 배타성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 apud ipsos fides obstinata, misericordia in promptu, sed adversus omnes alios hostile odium, "자기들 사이에는 완고한 신의가 있으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적대적 증오"(Hist. 5.5). 마지막 두 단어 hostile odium("적대적 증오")이 그의 유대 민족지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적 축이에요. 안식·안식년·식습관·예배 — 유대인이 신앙으로 살아낸 것들이, 바깥에서 본 사가의 눈에는 게으름·미신·무신론으로 번역된 거죠. 같은 풍습에 대한 두 개의 언어가 여기서 갈라집니다.

같은 어휘로 쓰인 또 하나의 박해

그 구조적 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어요. 타키투스는 이미 『연대기』(Annales)에서 같은 말을 썼습니다. AD 19년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유대교 개종자와 점성술사가 추방된 사건을 기술하면서, 그는 유대교를 externae superstitiones("외국의 미신들")로 분류했어요(Ann. 2.85).

그리고 AD 64년 네로의 대화재 이후, 기독교인 박해를 서술하면서 같은 말을 다시 씁니다 — repressaque in praesens exitiabilis superstitio rursum erumpebat, "잠시 억눌렸던 파멸적 미신이 다시 터져 나왔다"(Ann. 15.44). Exitiabilis superstitio(파멸적 미신), odium humani generis(인류에 대한 증오). 타키투스에게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는 구별되는 두 종교가 아니라 같은 동방 미신의 두 모습 이었어요. 그는 두 기록 사이에 50년의 연표를 두었지만, 수사는 똑같았습니다.

이건 그 혼자만의 어휘도 아니었어요. 그의 친구 플리니우스가 훗날 비티니아 총독으로서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기독교인 처리를 묻는 편지를 쓸 때, 기독교를 superstitionem pravam et immodicam("왜곡되고 과도한 미신")이라 부릅니다(Plin. Ep. 10.96). 두 원로원 의원, 한 언어. 로마 엘리트가 동방 종교를 바라보던 공통의 범주가 거기 있었어요.

위대한 관찰자의 한계, 그리고 그 미래

타키투스가 가장 정확하게 기술한 것은 폼페이에서 네로에 이르는 유대 정치사였어요(Hist. 5.9). 헤롯, 아르켈라오스, 유대 속주 편입, 총독들의 부패,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의 자극으로 봉기가 발발한 것까지. 이 부분에서 그는 더없이 사가다웠습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와 풍습을 다룰 때, 그는 사가가 아니라 민족지학자였고, 민족지학자로서 그는 로마 귀족의 전형 이었어요.

그의 힘과 한계는 같은 원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 정확한 관찰과 선명한 문장이요. 관찰은 자기가 본 것까지만 가능하고, 문장은 자기 시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요. 타키투스는 위대한 사가였고, 동시에 AD 100년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습니다. 이 두 사실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의 dissimulatio — 사실을 배열해 도덕을 암시하는 간접 서술 — 은 의심을 마음에 두고 문장에는 사실만 남기는 방법이었지만, 유대 민족 앞에서는 그 의심마저 작동하지 않았던 거죠.

그가 알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있어요. 그의 문장 — exitiabilis superstitio, hostile odium — 이 얼마나 많은 후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어휘집을 형성하게 될지를요. 17세기의 한 랍비는 티투스 개선문 아래를 지나기를 거부했고, 20세기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그 아치 아래를 걷기를 피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가는 자기가 쓴 것의 미래까지는 보지 못해요. 타키투스를 읽는다는 건, 그의 위대한 관찰력과 제한된 시야를 동시에 마주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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