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년 가을, 로마의 한 원로원 의원이 황제에게 사사로운 민원 하나를 들고 갑니다. 그의 아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었어요. 로마법으로 풀면 그저 민사 사기였습니다.
그런데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는 이 한 건의 사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버려요. 원로원 칙령이 내려졌고, 해방노예 4,000명이 한 번에 뽑혀 사르데냐(Sardinia) 섬으로 실려 갔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한 집단의 질병으로 번역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쓰인 라틴어 한 단어는, 그 뒤 90여 년에 걸쳐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향한 박해의 법적 기둥이 됩니다. 타키투스(Tacitus)가 『연대기』(Annales) 2.85에 거의 지나가는 말처럼 적어 넣은, 작지만 무거운 이야기예요.
한 귀족 여성의 사기 사건
발단은 풀비아(Fulvia)라는 로마 귀족 여성이었어요. 유대교에 끌린 여인으로, 요세푸스(Josephus)는 AJ 18.82에서 그녀를 "유대교에 귀의한 여인"(προσεληλυθυῖαν τοῖς Ἰουδαϊκοῖς)이라 부릅니다. 그녀 주위에는 네 명의 유대인 교사가 드나들었어요. 토라를 해설해 주고,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함을 이야기해 주고, 마침내 성전을 위한 자줏빛 천과 금을 기부하도록 권했습니다. 풀비아는 흔쾌히 내놓았어요. 그런데 그 금은 예루살렘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네 사람이 나눠 가졌어요.
풀비아의 남편 사투르니누스(Saturninus)가 황제궁에 들고 간 것은 한 가지 사건이었습니다 — 귀족의 아내가 사기당했고, 가해자는 네 명이며,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는 것.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청하는, 명료한 민원이었어요. 문제는 티베리우스가 이 사건을 네 명에게 묻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 문장으로 새겨진 칙령
원로원이 소집되고, 칙령이 내려졌어요. 그리고 라틴어 한 구절이 로마사에 기록됩니다.
actum et de sacris Aegyptiis Iudaicisque pellendis, factumque patrum consultum ut quattuor milia libertini generis ea superstitione infecta ... in insulam Sardiniam veherentur ... et, si ob gravitatem caeli interissent, vile damnum
"이집트와 유대의 제의를 추방하는 안건이 의결되었고, 원로원 칙령이 내려졌다. 그 미신에 감염된 해방노예 계급 4,000명을 — 병역 적령기의 자들을 — 사르데냐 섬으로 실어 보낸다. … 만약 혹독한 기후로 죽더라도 그 손실은 하찮은 것이다"(Ann. 2.85).
타키투스는 이 칙령에 단 한 문장만 할애했어요. 한 권의 마지막 장, 그것도 끝에서 두 번째 문단이었습니다.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유해가 로마에 도착하고, 아그리피나(Agrippina)가 민중 앞에 유골 단지를 안고 나타나고, 제국이 그 죽음의 의미를 소화하지 못하던 바로 그 몇 달이었어요. 한 황자의 죽음이 책의 가운데를 가득 채운 뒤, 책의 끝에 타키투스는 이 구절을 거의 지나가는 말처럼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의 숫자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에요. Quattuor milia, 곧 4,000명. Libertini generis, 곧 해방노예 계급. 로마 시민권의 법적 방패를 아직 제대로 두르지 못한 자들, 옛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그 후손을 이탈리아에서 키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동방에서 전쟁 포로나 노예 무역으로 끌려왔다가 대를 거쳐 뿌리를 내린 가족들이었어요. 그 4,000명이 — 병역 적령기의 젊은 남자들이 — 한 번에 뽑혀 배에 실려 사르데냐로 보내졌습니다.
"하찮은 손실"이라는 각주
사르데냐는 당시 로마인에게 유배의 대명사였어요. 섬 내륙은 산적(latrocinia)이 횡행했고, 공기는 말라리아를 품고 있었으며, 광산은 노역수를 먹어 치웠습니다. 칙령 속의 si ob gravitatem caeli interissent, vile damnum — "혹독한 기후에 죽는다면, 하찮은 손실" — 은 그 자체로 로마 행정의 냉정한 각주예요. 죽음이 계산된 결과였고, 그 계산에서 4,000명의 젊은이는 "거의 손실 축에도 못 드는" 값으로 처리됐습니다.
여기에는 묘한 규모의 불균형이 있어요. 요세푸스의 Antiquitates 18권은 풀비아 사건을 장황하게 전합니다 — 네 교사의 행각, 풀비아의 경건성, 자줏빛 천의 구체성, 사투르니누스의 분노까지. 유대 역사가는 한 귀족 여성의 사적 피해를 집요하게 서술해요. 그러나 원로원이 내린 결론은 그 한 사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네 명의 사기꾼에게 내릴 판결이 4,000명의 추방이 되었고, 유대 전체와 이집트 이시스 숭배 전체가 "로마에서 사라져야 할 것"으로 범주화됐어요. 개인의 죄가 집단의 질병이 된 거예요.
종교가 질병이 되다 — superstitio
타키투스는 이 전환을 한 단어로 집약합니다. superstitio, 곧 "미신". 로마 개념어 세계에서 religio(인정된 종교)의 반대편에 놓인 범주예요. 그리고 그 앞에 더 강한 단어 하나가 붙습니다 — infecta, 곧 "감염된". 종교가 질병으로 비유된 거예요.
ea superstitione infecta — "그 미신에 감염된 [4,000명]". 그들은 사기꾼이 아니었어요. 칙령의 언어 안에서 그들은 병자였습니다. 병자를 치료할 수 없다면 격리해야 하고, 격리지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치료의 부수적 비용일 뿐이라는 논리. 로마 공중보건의 언어로 종교 정책이 집행됐어요.
칙령은 사르데냐로 끌려가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못을 박습니다. 정해진 날 이전에 profanos ritus exuissent — "속된 의례를 벗지" 않으면 이탈리아를 떠나야 한다고요. 거룩을 속되다 부르는 언어가 법전에 들어온 거예요.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Tiberius 36이 같은 사건을 병행 기록하며 4,000명 수치와 군복 징발을 확증하고, 디오(Cassius Dio) 57.18.5a가 세 번째 증언으로 가세합니다.
90여 년을 움직인 한 단어
45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서기 64년, 같은 도시 같은 제국. 네로의 정원에서 기독교인들이 횃불로 타오르던 그 밤, 타키투스는 『연대기』 15권의 중심 장에서 그들을 가리켜 exitiabilis superstitio — "치명적 미신"이라 써요(Ann. 15.44). 같은 단어 superstitio. 45년 전 유대인에게 붙인 바로 그 단어가, 이제 거기서 갈라져 나온 한 종파에 붙었습니다. 앞에 붙은 형용사만 infecta(감염된)에서 exitiabilis(치명적)로 바뀌었을 뿐, 문법은 같았어요. 질병의 은유가 치료 가능한 전염병에서 몰살을 요구하는 역병으로 강화됐을 뿐입니다.
다시 48년이 흐릅니다. 서기 112년, 비티니아-폰투스 총독 소(小)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써요. 그의 관할에서 기독교인들이 체포되고 있는데, 절차를 묻는 내용입니다 — nomen ipsum, etiam si flagitiis careat, an flagitia cohaerentia nomini puniantur, "범죄가 없어도 이름 자체를 처벌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름에 결부된 범죄를 처벌해야 합니까?"(Ep. 10.96). 그는 기독교를 superstitio prava, immodica — "타락한, 절제 없는 미신"이라 부릅니다. 또 같은 단어 superstitio. 93년 전 원로원 칙령이 유대인 해방노예에게 적용한 법적 범주가, 이제 제국 속주 법정의 공식 심문 항목이 됐어요.
서기 19년 → 64년 → 112년. 93년의 아크 속에서 동일한 단어 하나가 세 번의 추방·박해·심문의 법적 기둥이 됩니다. 타키투스는 이 아크의 첫 기둥과 두 번째 기둥을 직접 세웠고, 플리니우스는 세 번째 기둥을 서신으로 세웠어요. 세 기둥은 같은 채석장에서 나왔습니다 — 로마 엘리트가 유대·이방 동방 종교를 바라보는 단일한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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