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4년 가을, 팔라티움 위로 이상한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어요. 64세의 클라우디우스(Claudius)는 여름 내내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술이 좀 들어가자, 그는 친구에게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 "아내들이 내 운명이로구나. 한 번은 그녀들을 처벌하고, 한 번은 그녀들에게 처벌받고." 타키투스(Tacitus)는 이 한 문장을 기록하면서도 누구의 귀가 그 말을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Ann. 12.64).
그런데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황후 아그리피나(Agrippina)는 그 자리에서 결심을 굳혔어요. 이건 한 황제의 마지막 밤이자, 동시에 세 로마 사료가 한목소리로 외친 독살을 한 유대 사료가 홀로 침묵으로 건너뛴 — 사료 비판의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합니다.
무너질 위기의 후계
아그리피나가 결심한 이유는 분명했어요. 남편이 친자 브리타니쿠스(Britannicus)를 최근 다시 품에 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의 친자는 열세 살, 성인 복장을 입힐 날이 머지않았죠. 그날이 오면 네 해 전 양자 입양으로 확보해 둔 네로의 후계 지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어요.
아그리피나는 조용히 사람을 불러들였습니다. 로쿠스타(Locusta) — 갈리아 출신의 여자, 최근 독살 혐의로 기소됐다가 황후의 손에 사면된 전문가였어요. 타키투스는 그녀를 짧게 소개합니다 — diu inter instrumenta regni habita, "오래도록 국가 통치의 도구로 취급된" 여인이라고요(Ann. 12.66). 독약은 까다로운 주문이었어요. 너무 빠르면 급사가 의심을 부르고, 너무 느리면 클라우디우스가 정신이 돌아와 브리타니쿠스를 불러들일 시간을 주니까요. 계산된 속도가 필요했죠. 그리고 공범이 한 사람 더 필요했어요 — 황제의 식탁을 관리하는 내시 할로투스(Halotus)요. 독을 전달하는 손은 항상 황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이어야 했습니다.
가장 탐스러운 버섯
10월 12일 저녁, 팔라티움 연회장에 버섯 요리가 올라왔어요. boletus — 클라우디우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궁정 전체가 아는 취향이었죠. 할로투스가 황제의 접시에 가장 상태가 좋은 것 하나를 골라 놓았습니다. 타키투스는 이 순간을 단 한 줄로 처리해요 — delectabili boleto venenum indidit, "가장 탐스러운 버섯에 독이 들어 있었다"(Ann. 12.67). 클라우디우스는 씹었고, 삼켰어요. 그리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그리피나의 얼굴이 굳었어요. 황제의 늙은 창자가 독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술에 취한 몸이 오히려 독을 밀어내고 있었던 거죠. 조금 뒤 클라우디우스는 복통을 호소하며 몸을 기울였고, 배설과 구토가 뒤섞여 식탁 위가 어지러워졌습니다. 한순간 모두가 안도했을 거예요 — 독이 저절로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공모자 중 또 한 사람이 조용히 황제 곁으로 다가섰어요 — 황실 주치의 크세노폰(Xenophon)이요. 코스 섬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 클라우디우스가 수년간 신뢰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환자의 목구멍에 구토 유도용 깃털을 삽입하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나 타키투스는 그 깃털이 무엇에 담갔던 것인지 정확히 기록합니다 — celeri veneno inlitam pinnam, "빠른 작용의 독에 적신 깃털"(Ann. 12.67). 두 번의 독살이었어요. 첫 번째는 느린 버섯, 두 번째는 빠른 깃털. 의사의 손이 치유의 도구인 척 죽음의 도구를 들인 거죠. 클라우디우스는 몇 시간 동안 침상에서 숨이 거칠어졌고, 10월 13일 동트기 전 숨을 거뒀습니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황제
아그리피나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뒀어요. 궁전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고, 브리타니쿠스와 옥타비아는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받는다는 명분으로 그녀 품에 붙잡혀 방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원로원과 군단에는 클라우디우스의 건강이 회복 중이라는 공식 발표가 내려졌어요. 점성가가 불려 들어갔고, 배우들이 남아 황제의 오락을 준비하는 시늉을 했죠. 죽은 황제는 죽지 않았어요 — 정확한 순간까지는요.
정오 무렵, 팔라티움 정문이 열렸습니다. 걸어 나온 것은 네로(Nero)였어요. 열여섯 살, 친위대장 부루스(Burrus)의 호위 아래 네로는 친위대 성전으로 직행했죠. 부루스가 먼저 부대 앞에서 황제 선포를 외쳤습니다. 병사 몇몇이 브리타니쿠스의 행방을 물었으나 — 타키투스는 이 장면을 건조하게 기록해요 — ubi nemo in contrarium respondit, "아무도 반대 대답을 하지 않았을 때"(Ann. 12.69), 일제히 만세가 터져 나왔어요. 약속된 하사금 — 한 사람당 15,000 세스테르티우스, 클라우디우스 즉위 때와 같은 액수 — 이 즉시 공표됐습니다. 원로원은 오후에 소집되어 친위대의 결정을 사후 승인했어요. 한나절 만에 모든 것이 끝나 있었습니다.
타키투스의 붓은 마지막 문장에서 한 번 더 힘을 줍니다 — Sic Britannicum aetate praestabat Nero, "이렇게 네로는 나이로만 브리타니쿠스를 앞섰다"(Ann. 12.69). 정통성에 대한 신랄한 반어예요. 네로는 혈통으로도, 법으로도, 아버지의 사랑으로도 앞서지 않았어요. 그를 앞서게 한 것은 세 살 더 많은 나이 하나뿐이었고, 그 세 살이 양자 입양 서열의 마지막 근거였습니다. 그리고 타키투스는 독자가 이어서 기억하게 해요 — 이듬해 서기 55년, 그 세 살의 차이조차 네로에게는 견딜 수 없이 가까웠다는 걸요. 같은 로쿠스타가 다시 불려왔고, 찬물에 식힌 포도주 한 잔이 열네 살 브리타니쿠스의 만찬 식탁에서 넘어갔습니다(Ann. 13.15-17). 그러나 그 장면은 다음 권의 몫이에요.
한 사료의 침묵이 말하는 것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 한 가지 이상한 침묵에 주목해야 해요. 수에토니우스 Claud. 44는 버섯과 깃털을 모두 기록합니다. 카시우스 디오 60.34도 같은 이중 독살을 확인하죠. 세 로마 사료가 일치하는 드문 장면이에요.
그런데 요세푸스(Josephus) 『유대 고대사』 20.148은 — 클라우디우스 통치의 종결을 기록하면서 — 독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황제가 "13년 8개월 20일 동안 통치한 뒤 사망했다"고만 적어요. 버섯도, 깃털도, 로쿠스타도 없습니다. 타키투스·수에토니우스·디오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독살을, 요세푸스 혼자 침묵으로 건너뛴 거죠.
왜일까요? 요세푸스는 서기 90년대 로마에서 이 책을 썼어요. 그의 후원자는 플라비우스 왕조 —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도미티아누스였습니다. 그들의 정통성은 네로 이후의 내전에서 태어났고, 네로 왕조의 출발점 자체를 독살로 규정하는 건 로마 궁정에서 환영받을 주제가 아니었어요. 같은 밤을 로마 사료 셋은 범죄로 기록했고, 유대 사료 하나는 통치 기간의 숫자로만 남겼습니다. 사료의 침묵은 때로 사료의 고백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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