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0년 여름, 그리스 중부의 한 협로에서 세계사의 한 장면이 멈춰 섰어요. 왼쪽엔 가파른 산이 솟았고 오른쪽엔 바다가 있었으며, 그 사이로 길이 마차 한 대 너비로 좁아지는 곳이었습니다. 이름은 테르모필레(Thermopylae), "뜨거운 문"이었어요. 바위 틈에서 솟는 온천이 그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Hdt 7.198).
그 문 앞에 두 군대가 마주 섰어요. 한쪽은 삼 년에 걸쳐 모은 페르시아의 백칠십만 대군, 다른 한쪽은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Leonidas)가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 육천여 명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결과가 정해진 싸움 같았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2,500년이 지나도록 기억되는 건, 그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이건 '자유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머리를 빗는 전사들
크세르크세스(Xerxes)는 협로 앞에서 나흘을 기다렸어요. 이 작은 무리가 곧 도망치리라 확신했거든요. 닷새째 새벽, 그는 정찰병 하나를 능선 위로 보냈습니다. 돌아온 정찰병의 보고를 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 "스파르타인들이 무기를 옆에 둔 채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맨몸으로 운동을 하고, 어떤 이는 마주 앉아 긴 빗으로 천천히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Hdt 7.208).
전투를 코앞에 두고 머리 단장이라니. 왕은 곁에 둔 망명 스파르타 전 왕 데마라토스(Demaratos)를 불러 그 뜻을 물었어요. 데마라토스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답했습니다 — "전하, 스파르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나설 때 머리를 정성껏 빗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례입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는 자기 몸을 단장하지요"(Hdt 7.209). 일찍이 데마라토스는 왕에게 이렇게도 말했었어요 — 스파르타인은 자기보다 많은 적 앞에서도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법(nomos)을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이라고(Hdt 7.104). 왕은 더 이상 웃지 않았습니다. 공격 명령을 내렸어요.
좁은 문이 삼킨 대군
첫째 날, 페르시아 군이 밀려왔어요. 그러나 협로가 좁아 수의 우위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청동 방패와 긴 창이 한 줄의 벽을 이루자, 페르시아의 짧은 활과 가벼운 방패는 그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어요. 스파르타는 거짓 후퇴까지 구사했습니다. 달아나는 척 적을 끌어들인 뒤 일제히 돌아서 다시 벽을 세웠어요(Hdt 7.211). 둘째 날, 크세르크세스는 자기 최정예 부대인 불사대(Immortals)를 투입했습니다. 결과는 같았어요. 문은 여전히 좁았고, 좁은 문 앞에서 숫자는 의미를 잃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한 일화가 전해져요. 한 병사가 디에네케스(Dienekes)에게 와서 겁을 주었습니다 — "페르시아 궁수들의 화살이 하늘을 가려 태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랍니다." 디에네케스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어요 —
"그거 잘 되었군. 그럼 우리는 그늘에서 싸우겠다."
— Herodotus, Historiae 7.226
농담 같지만, 이 한 마디에 스파르타라는 공동체의 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죽음의 규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말이에요.
산길을 판 자, 에피알테스
셋째 날 새벽이 오기 전, 한 사람이 페르시아 진영을 찾아왔어요. 현지 말리스(Malis) 지방 사람 에피알테스(Ephialtes)였습니다. 그는 은화 한 주머니를 받고 한 가지를 팔았어요 — 산 위로 협로를 우회하는 샛길, 아노파이아(Anopaia) 경로가 있다는 정보였습니다(Hdt 7.213-215). 크세르크세스는 즉시 불사대에게 야간 우회를 명했어요. 에피알테스가 길을 안내했습니다. 그 이름은 그 뒤로 그리스인들에게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어요 — 지금도 그리스어로 "에피알테스"는 악몽을 뜻합니다.
새벽녘 산 위에서 페르시아 병사들의 발소리를 들은 초병이 레오니다스에게 포위가 임박했음을 알렸어요. 왕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남쪽으로 후퇴해 새 방어선을 세우거나, 이곳에 남아 시간을 더 벌며 전멸을 받아들이거나. 그는 오래전 델포이의 신탁을 기억했을 거예요 — 스파르타의 왕 하나가 전장에서 죽든가, 아니면 스파르타 자체가 무너진다(Hdt 7.220). 그는 선택했습니다. 동맹군 대부분을 돌려보냈어요. 남은 자들은 스파르타의 삼백 명, 자발적으로 머문 테스피아이(Thespiae) 사람 칠백 명, 그리고 인질로 붙잡힌 테바이(Thebes) 사람 사백 명이었습니다(Hdt 7.222).
하데스에서 먹을 저녁
그들은 마지막 식사를 준비했어요. 창고에 남은 음식이 모두 나왔습니다 — 구운 고기, 올리브, 보리빵, 치즈, 포도주. 음식은 풍족했어요. 그 새벽 레오니다스가 병사들에게 했다는 한 마디가 전해집니다 —
"여러분, 아침을 충분히 드시오. 우리의 저녁은 하데스에서 먹게 될 것이오."
— Herodotus, Historiae 7.226
날이 밝자 그들은 다시 머리를 빗었어요. 청동 갑옷을 정성껏 입고 끈을 꽉 조였습니다. 그리고 협로를 빠져나와 평지로 걸어 나갔어요. 이번엔 반격을 위한 돌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죽음을 향해 전진한 거예요.
페르시아 병사들조차 이제 이 스파르타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무도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자 지휘관들이 채찍으로 등을 때려 병사들을 밀어붙였어요. 떠밀린 페르시아인 다수가 바다에 빠지거나 서로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창이 부러지자 그들은 검을 꺼냈고, 검이 부러지자 맨손과 이빨로 싸웠어요(Hdt 7.224-225). 정오 무렵 레오니다스가 쓰러졌습니다.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 네 차례나 페르시아의 공격을 밀어낸 끝에, 마침내 산을 돌아온 불사대가 후방에 나타나며 포위가 완성되었어요. 생존자들은 작은 언덕으로 물러섰고, 페르시아 군은 가까이 오지 않은 채 멀리서 화살을 퍼부었습니다(Hdt 7.225). 디에네케스의 말처럼, 그들은 마지막까지 화살의 그늘 아래 있었어요.
돌에 새겨진 두 줄
전투가 끝난 뒤 크세르크세스가 전장을 순시했어요. 레오니다스의 시신을 발견한 왕은 평소답지 않게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그 머리를 자르고 몸을 말뚝에 매달라 명했어요. 페르시아 왕의 법도에 없던 처사였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조용히 적어요 — "나는 이것이 크세르크세스가 다른 어떤 적에게도 보이지 않은 행위였음을 안다. 그의 영혼이 이 한 사람에 대해 크게 노했음이 분명하다"(Hdt 7.238). 시신을 훼손한 그 분노가, 역설적으로 레오니다스의 영웅성을 더 또렷이 증언한 셈이에요.
훗날 그 자리에 비석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가 두 줄을 새겼어요 —
"길손이여,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라 — 우리가 그들의 법에 복종하여 여기 누워 있다고."
— Herodotus, Historiae 7.228
이 두 줄에 테르모필레의 전부가 담겨 있어요. 그들이 죽은 건 한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nomos)'을 위해서였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 따르는 법,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키게 만드는 약속 말이에요. 데마라토스가 크세르크세스에게 했던 말 — 스파르타인은 법을 주인으로 섬긴다 — 이 비석 위에서 마침내 증명되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협로를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갔어요. 비워진 아테네에 입성해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을 불태웠습니다. 20년 전 사르디스에서 붙은 불이 이제 아테네에서 갚아지는 듯했어요.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절정은 아니었습니다. 진짜 승패는 이제 바다에서, 좁은 살라미스(Salamis) 해협에서 갈리게 돼요. 그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이어집니다. 테르모필레의 흙 아래엔 이미 두 이름이 묻혀 있었어요 — 하나는 돌에 새겨져 영웅으로, 다른 하나는 사전에 새겨져 악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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