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의 규모를 숫자로 압도하려 해요(Hdt 1.178–179). 성벽은 수레 두 대가 나란히 달릴 만큼 두꺼웠고, 100개의 청동 성문이 사방을 지켰으며, 둘레는 약 88km에 달했습니다. 유프라테스(Euphrates) 강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렀고, 마르둑 신전의 지구라트가 하늘로 솟아 있었어요.
이 도시에는 한때 니토크리스(Nitocris)라는 여왕이 있어, 강의 물길을 미로처럼 굽이지게 돌려 방어를 강화했다고 전해집니다(Hdt 1.185–186). 그녀의 무덤 비문엔 "돈에 굶주려 이 무덤을 열거든 이 글을 읽으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었는데, 훗날 다리우스 1세가 열어 보니 보물 대신 저주의 문장만 있었다고 해요(Hdt 1.187). 바빌론은 그렇게, 정복을 비웃는 도시였습니다.
강에게 선전포고한 왕
바빌론으로 향하던 키루스는 뜻밖의 적을 만났어요 — 강이었습니다. 군트(Gyndes) 강을 건너던 중 그의 신성한 백마가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거든요(Hdt 1.189). 격노한 키루스는 행군을 멈추고 강 자체에 선전포고했습니다 — "이 강이 내 말을 빼앗았다."
그는 군대를 토목 부대로 바꿔, 360일에 걸쳐 강을 180개의 가는 수로로 갈라냈어요. 본류가 잘게 나뉘자 깊던 강은 발목 높이로 주저앉았습니다. "다음엔 여자도 무릎을 적시지 않고 건너리라"는 말이 전해져요. 자연 앞에서의 이 오만(휘브리스)은, 훗날 그의 후손 크세르크세스가 헬레스폰트 바다를 채찍질하는 장면(Hdt 7)에서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강을 다스리는" 기술이, 바빌론 함락의 열쇠가 돼요.
축제의 밤, 강바닥으로
성벽은 난공불락이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은 수년 치 식량을 쌓아 둔 채 성 위에서 페르시아군을 조롱했어요. 직접 공격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키루스는 유프라테스 강을 상류의 인공 호수로 돌렸어요. 강물이 빠지자 성벽 아래, 강이 흐르던 바로 그 자리에 통로가 드러났습니다(Hdt 1.190).
그날은 마침 도시 전체가 술과 춤에 빠진 축제의 밤이었어요. 페르시아군은 진흙 강바닥을 따라 성벽 아래로,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헤로도토스의 문장이 서늘해요 —
"도시의 한 끝이 점령되었을 때, 다른 끝의 사람들은 아직 춤추고 있었다."
— Herodotus, Historiae 1.191
바빌론은 그 밤, 거의 무혈로 함락되었습니다.
토미리스의 가죽 부대
바빌론은 끝이 아니었어요. 키루스의 시선은 카스피해 동쪽 초원의 마사게타이(Massagetai) 유목 기병 부족, 그리고 그들의 여왕 토미리스(Tomyris)를 향했습니다. 청혼이라는 외교를 먼저 보냈지만 토미리스는 냉소했어요 — "너는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 왕국을 원한다. 조용히 돌아가라"(Hdt 1.205).
원로 고문 크로이수스가 계교를 조언했습니다(Hdt 1.207). 페르시아군은 후퇴하는 척하며 진영에 포도주와 진수성찬을 남겼어요. 포도주를 모르던 유목민 소부대가 취해 쓰러진 사이 페르시아군이 돌아와 학살했고, 여왕의 아들 스파르가피세스가 사로잡혔습니다. 깨어나 보니 전투가 아니라 포도주에 진 자신이 부끄러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Hdt 1.213).
토미리스의 전갈이 날아왔습니다 — "피에 굶주린 자여, 내 아들을 돌려보내고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네 피를 다 마시게 하리라"(Hdt 1.212). 키루스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헤로도토스가 "아시아에서 가장 격렬한 싸움"이라 부른 전면전 끝에,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 키루스는 그 초원에서 전사했습니다(Hdt 1.214).
전장을 걷던 토미리스는 키루스의 시신을 찾아내, 미리 준비한 인간의 피가 담긴 가죽 부대에 그의 머리를 담갔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
"내가 경고했다. 너는 피를 원했다. 배불리 마셔라."
제국은 자기 경계에서 좌절한다
가장 부유한 왕 크로이수스를, 가장 큰 도시 바빌론을 무너뜨린 정복자가, 정작 이름 없는 초원의 유목민 앞에서 멈췄어요. 키루스의 죽음은 페르시아 제국의 첫 확장 실패였고, 북방 유목민은 끝내 정복되지 않는 경계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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