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25년, 한 젊은 왕이 시나이 사막을 건너 이집트로 향했어요. 그의 이름은 캄비세스(Kambyses),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Kyros)의 장남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메디아와 바빌론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일군 거대한 제국을, 이제 그가 더 서쪽으로 넓히려 한 거예요. 그리고 그는 실제로 이집트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역사』(Historiae)에서 이 정복자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의 승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정복 이후 그가 어떻게 서서히 미쳐 갔는지, 신성한 것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그리고 그 칼끝이 결국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왔는지를 들려줍니다. 이건 한 제국의 두 번째 정복자가 광기 속에서 무너지고, 그 자리에서 키루스의 직계 혈통이 끊어진 이야기예요.
배신과 피의 잔으로 열린 사막의 길
캄비세스의 원정은 한 그리스인의 배신으로 가능했어요.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Amasis) 밑에서 용병 군단장을 맡던 파네스(Phanes)가 페르시아 진영으로 넘어와, 사막의 물길과 아라비아 왕을 통하는 보급로를 통째로 팔아넘긴 겁니다(Hdt 3.4–9).
배신의 소식이 이집트 진영에 닿자, 그곳에 남아 있던 그리스 용병들이 전투 직전 끔찍한 의례를 올렸어요. 그들은 파네스의 아들들을 양쪽 군대 사이의 평원으로 끌고 나와 하나씩 목을 베었습니다. 그 피를 포도주 잔에 섞고, 그 잔을 서로 돌려 마신 뒤 전투에 나섰어요. 배신자의 핏줄을 향한 이집트인의 마지막 분노였습니다.
그러나 분노만으로 전쟁이 이기는 건 아니었어요. 펠루시온(Pelusium)에서 이집트 군이 무너졌고, 멤피스(Memphis)의 성벽이 열렸습니다. 파라오 아마시스는 원정이 닿기 몇 달 전에 이미 자연사한 뒤였어요. 그래서 성문이 열렸을 때 왕좌에 앉아 있던 건 그의 아들 프삼메니투스(Psammenitus)였습니다. 즉위 여섯 달째였어요. 캄비세스는 그를 포로로 삼았습니다(Hdt 3.13–14).
가족에는 침묵하고 친구에는 통곡한 파라오
며칠 뒤 캄비세스는 한 가지 실험을 했어요. 그는 멤피스 성문 밖 공터에 포로가 된 이집트 귀족들을 일렬로 앉혔습니다. 프삼메니투스도 그들 가운데 있었어요. 해는 높았고 그늘은 없었습니다.
먼저 한 행렬이 지나갔어요. 귀족들의 딸들이 노예의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어깨에 물동이를 인 채 우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프삼메니투스 자신의 딸도 있었어요. 다른 귀족들은 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프삼메니투스는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그저 고개를 숙여 마른 흙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행렬이 왔어요. 귀족들의 아들들이 목과 팔에 사슬을 차고 처형장으로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프삼메니투스의 장남도 있었어요.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다시 통곡했지만, 프삼메니투스는 여전히 땅만 보았어요. 눈물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갔어요. 한 노인이었습니다. 옷은 누더기였고 얼굴은 여위었으며, 손을 내밀어 무엇이든 구걸하고 있었어요. 프삼메니투스가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한때 자기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들던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재산도 집도 잃고 길거리의 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프삼메니투스가 통곡했어요(Hdt 3.14).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캄비세스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통역관을 보내 물었어요 — "왜 그대는 딸과 아들에는 울지 않고, 이 노인에는 우는가?" 프삼메니투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지만 목소리는 고요했어요. 그가 답했습니다 — "내 집안의 슬픔은 너무 커서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불행은 눈물을 부른다." 이 말이 전해졌을 때, 정복자 캄비세스조차 잠시 흔들렸어요.
신성한 황소에 칼을 겨눈 순간
정복을 마친 캄비세스는 세 방향으로 새 원정을 보냈어요. 남쪽 에티오피아, 서쪽 리비아의 시와(Siwa) 오아시스, 더 서쪽 카르타고였습니다. 그러나 세 원정 모두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에티오피아로 간 군대는 식량이 떨어지자 제비를 뽑아 열 명 중 한 명을 잡아먹어야 했고, 시와로 향한 5만 대군은 사막에서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헤로도토스는 "폭풍이 모래를 그들 위로 몰아쳤고,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고만 적어요(Hdt 3.25–26).
원정에 모두 실패하고 멤피스로 돌아왔을 때, 이집트인들은 마침 새로운 아피스(Apis) 황소의 출현을 축하하고 있었어요. 이마에 흰 삼각형, 등에 독수리 무늬, 꼬리에 두 겹의 털 — 신의 표식을 지닌 황소가 나타날 때마다 온 이집트가 기뻐하던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캄비세스는 이 축제를 자기 원정의 실패를 비웃는 것이라 오해했어요. 그는 아피스를 끌어내라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황소 앞에서 검을 뽑아 그 허벅지를 찔렀어요. 며칠 뒤 황소가 죽었습니다(Hdt 3.27–29).
헤로도토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단언해요 — "이 일 이후로 캄비세스는 완전히 미쳤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 둘 필요가 있어요. 이집트 사제 우자호르레스네트(Udjahorresnet)가 남긴 비문은 캄비세스를 네이트(Neith) 신전을 복원하고 이집트 종교를 존중한 정식 파라오로 기록합니다. 두 기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예요. 우리는 헤로도토스의 서사를 따라가되, 이집트 자신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게 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 둡시다.
광기의 연쇄,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
황소의 피 이후, 광기가 연쇄로 터졌어요. 사실 캄비세스는 이집트로 떠나기 전부터 어두운 일을 저질러 두었습니다. 그는 이복동생 바르디야(Bardiya)를 충신 프렉사스페스(Prexaspes)를 시켜 비밀리에 살해해 둔 상태였어요 — 동생이 왕좌에 앉는 꿈을 꾸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Hdt 3.30).
광기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차례로 닿았어요. 누이이자 아내였던 한 여인이 아피스의 죽음을 두고 눈물을 흘리자, 그는 그녀를 걷어찼습니다. 그녀는 유산했고 며칠 안에 죽었어요(Hdt 3.31–32). 충신 프렉사스페스가 "백성들이 왕을 두고 술을 너무 즐긴다 한다"고 직언하자, 캄비세스는 자기 정신이 멀쩡함을 증명하겠다며 프렉사스페스의 아들을 문 앞에 세우고 그 심장을 활로 쏘았어요. 화살이 정확히 심장에 박히자 왕이 말했습니다 — "페르시아인들이 나를 미쳤다 하지만, 이 활솜씨가 미친 자의 것이겠느냐." 프렉사스페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충성의 마지막 형식은 침묵이었습니다(Hdt 3.34–35). 멤피스에서는 죽은 파라오 아마시스의 무덤을 열어 미라를 꺼낸 뒤 채찍질하고 끝내 불태웠어요(Hdt 3.16).
운명을 거스르고 신성한 것을 짓밟는 손이, 이미 그 대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칼이 되돌아온 자리 — 엑바타나의 신탁
기원전 522년 봄, 캄비세스는 시리아에 머물며 페르시아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그때 충격적인 소식이 당도했습니다 — 죽었어야 할 동생 바르디야가 살아서 페르시아의 왕좌에 올랐다는 거예요. 왕이 즉시 프렉사스페스를 불러 확인했습니다. 바르디야는 분명히 죽었다고 프렉사스페스가 거듭 확인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왕좌에 앉은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죽은 왕자와 외모가 흡사한 마기(Magi) 사제, 가우마타(Gaumata)의 위장 찬탈이었습니다.
왕이 급히 말에 오르려 했어요. 그가 발을 등자에 대고 몸을 끌어올리는 순간, 칼집의 쇠 버클이 느슨하게 풀려 있었습니다. 칼이 칼집에서 미끄러져 나와, 칼끝이 위를 향한 채 왕의 허벅지 안쪽에 꽂혔어요. 정확히 그가 아피스 황소를 찔렀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Hdt 3.64).
상처는 더운 계절의 먼지 속에서 빠르게 곪아 들어갔어요. 열이 오르고 눈이 흐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자기 군대가 머문 마을의 이름을 듣고 얼굴이 굳었어요. 그는 오래전 신탁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 "너는 엑바타나(Ecbatana)에서 죽으리라." 그는 그 이름이 메디아의 옛 수도 엑바타나라고 믿어, 평생 그 도시 쪽 원정을 피해 왔어요. 그러나 엑바타나라는 이름은 시리아의 한 변경 마을에도 있었습니다. 지금 그의 천막이 세워진 바로 그 자리였어요. 신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잘못 읽었을 뿐이에요.
죽기 전 캄비세스는 페르시아 귀족들을 불러 유언을 남겼어요 — 왕좌를 빼앗긴 것을 슬퍼하지 말고, 찬탈자를 반드시 타도하라고. 그는 아들 없이 죽었습니다. 키루스의 직계 남성 혈통이 그 자리에서 끊어진 거예요. 이제 키루스의 딸이자 캄비세스의 과부였던 아토사(Atossa)만이 남았습니다. 이 여인이 누구와 혼인하느냐에 따라 다음 왕조의 정통성이 결정될 것이었어요(Hdt 3.66).
신성한 황소를 찌른 칼이, 결국 같은 자리를 찔러 왕을 무너뜨렸습니다. 헤로도토스가 거듭 변주하는 주제 — 신성을 모독한 자에게 임하는 운명의 보복(네메시스) — 이 여기서 가장 또렷하게 울려요. 그런데 캄비세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왕좌에는 귀 없는 가짜 왕이 앉아 있었고, 수사(Susa)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일곱 명의 남자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 일곱 음모자와 말의 계교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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