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불린 왕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크로이수스(Kroisos), 리디아(Lydia)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그의 수도 사르디스(Sardis) 곁을 흐르던 강은 모래에 사금을 실어 날랐고, 에게해 연안의 그리스 도시들이 하나씩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어요. 사람들은 그를 두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역사』(Historiae)의 거의 맨 앞에 이 왕의 이야기를 놓은 이유는 그의 황금 때문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황금이 어떻게 한순간에 재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재 위에서 한 왕이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들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건 부와 운명, 그리고 "끝을 보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말하지 말라"는 한 문장에 관한 이야기예요.
한 침실에서 시작된 저주
이야기의 시작은 크로이수스보다 다섯 세대 앞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680년경, 리디아 왕 칸다울레스(Kandaules)는 자기 왕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확신했어요. 그 확신이 어리석은 충동을 낳았습니다. 왕은 신하 기게스(Gyges)를 침실 문 뒤에 숨겨, 왕비가 옷을 벗는 모습을 몰래 보게 했어요.
왕비는 기게스를 발견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기게스를 불러 단 하나의 선택지를 내밀었어요 — "당신과 내 남편,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 선택하라." 기게스는 칸다울레스를 그 침실에서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Hdt 1.8–12).
리디아 사람들이 이 쿠데타에 반발하자, 분쟁은 델포이(Delphi) 신탁에 넘겨졌어요. 신탁은 기게스의 왕위를 인정했습니다. 다만 불길한 조건 하나가 따라붙었어요 — "헤라클리다이의 복수가 5대 후에 메르므나다이에게 임하리라." 새 왕조가 세워지는 바로 그 순간, 그 왕조가 무너질 시계도 함께 돌기 시작한 거예요(Hdt 1.13).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첫 장면에서 정해져 있었습니다.
기게스에서 아르디스, 사디아테스, 알리아테스를 거쳐 다섯 번째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 바로 크로이수스였어요. 저주의 시계가 가리키는 마지막 숫자가 그였던 셈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느 날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Solon)이 사르디스를 찾아왔어요. 그는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이었고, 아테네에 새 법전을 완성한 뒤 그 법이 함부로 바뀌지 않도록 10년간 도시를 떠나 있겠다고 맹세한 참이었습니다.
크로이수스는 그를 귀빈으로 맞아 사흘간 환대한 뒤, 자신의 보물창고를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어요. 금 덩어리가 층층이 쌓인 방, 페르시아산 에메랄드와 페니키아의 자색 옷감이 정렬된 방, 동방 도시들이 보내온 은잔과 향료가 가득한 방. 모든 방을 둘러본 뒤 왕이 물었습니다 —
"당신이 세상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오?"
크로이수스는 당연히 자기 이름이 나오리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솔론의 답은 기대를 완전히 비껴갔습니다.
"아테네의 텔로스(Tellos)입니다."
텔로스는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라 또 자식을 낳았고, 그의 도시는 그가 사는 동안 번성했으며, 마지막엔 이웃 도시와의 전투에서 명예롭게 전사해 그 자리에 국장으로 묻혔습니다.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좋았지요." 두 번째로는 어머니를 위해 직접 수레를 끌고 달린 뒤 신전에서 잠든 채 평온히 숨을 거둔 아르고스의 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을 꼽았어요.
불쾌해진 크로이수스가 따져 묻자, 솔론은 테라스 난간에 손을 얹고 격하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
"σκοπέειν δὲ χρὴ παντὸς χρήματος τὴν τελευτήν" — "모든 것의 끝을 보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말하지 말라."
— Herodotus, Historiae 1.32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신의 시기(phthonos)가 언제든 행운을 앗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지금 부유하다고 내일도 부유하리란 보장은 없다. 한 사람을 "행복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죽음이 확인된 뒤뿐이다 — 그전까지는 그저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거죠. 크로이수스는 이 말을 경박한 철학자의 말장난으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이 이야기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이 됩니다.
신이 시기하는 행복 — 아들 아티스의 죽음
솔론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이수스에게 꿈이 찾아왔어요. "아들 아티스(Atys)가 철제 무기에 찔려 죽을 것이다." 왕은 아들을 전쟁터에서 빼내고 궁궐의 무기까지 모두 치웠습니다. 그 무렵 형제를 우발적으로 죽인 죄를 안고 떠돌던 프리기아 왕자 아드라스토스(Adrastos)가 사르디스로 망명해 왔고, 크로이수스는 그를 정화하고 거두어 주었어요(Hdt 1.35).
그런데 미시아에서 거대한 멧돼지가 농토를 망친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아티스는 "멧돼지의 무기는 이빨이지 철이 아닙니다"라며 사냥을 간청했어요. 마음이 흔들린 크로이수스는 아드라스토스를 호위로 붙여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냥 도중 아드라스토스가 멧돼지를 향해 던진 창이 빗나가, 그대로 아티스의 가슴에 박혔어요(Hdt 1.43). 철을 피하려 했던 모든 노력이, 가장 가까운 손에서 시작된 단 한 번의 빗나간 창으로 무너진 겁니다. 아드라스토스는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운명을 피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운명을 불러온다 — 헤로도토스가 거듭 변주하는 주제가 여기서 처음 또렷하게 울려요.
"할리스 강을 건너면 대제국이 무너진다"
2년의 슬픔이 지난 뒤, 크로이수스의 시선이 동쪽으로 향했어요. 페르시아의 키루스(Kyros)가 메디아를 무너뜨리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거든요. 크로이수스는 델포이에 사절을 보내 물었습니다 — "내가 페르시아를 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신탁의 답은 짧았어요 — "크로이수스가 할리스(Halys) 강을 건너면, 대제국이 무너지리라"(Hdt 1.53). 왕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신탁은 어느 제국이 무너질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가 들은 것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 뿐입니다.
크로이수스는 할리스를 건넜어요. 프테리아에서의 전투는 승부 없이 끝났고, 겨울이 오자 그는 동맹군을 모으러 사르디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키루스는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어요. 기습 행군으로 사르디스 성벽 앞에 나타났습니다(Hdt 1.75–80).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사르디스 성채는, 한 페르시아 병사가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리디아 병사의 길을 역으로 추적해 오르면서 14일 만에 함락되었어요(Hdt 1.84). 무너진 "대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신탁을 잘못 읽은 크로이수스 자신의 제국이었습니다.
장작더미와 빗줄기
키루스는 크로이수스를 사로잡아, 리디아 귀족 소년 열넷과 함께 장작더미 위에 세웠어요. 리디아 왕가의 혈통을 불로 끝장내려는 의도였습니다.
불이 붙고 연기가 오르며 열기가 발밑에 닿는 순간, 침묵하던 크로이수스의 입에서 한 이름이 세 번 터져 나왔어요 —
"솔론! 솔론! 솔론!"
페르시아 병사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키루스가 통역관을 통해 그 까닭을 물었어요. 크로이수스는 가쁜 숨으로 답했습니다. 언젠가 한 아테네 노인이 자기 궁에 와서, 세상 어떤 왕도 삶이 끝나기 전에는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고 했노라고. 그 노인의 이름이 솔론이었고, 자기는 지금 이 장작더미 위에서야 그 뜻을 알겠노라고(Hdt 1.86).
통역을 들은 키루스가 잠시 침묵했어요. 자신도 한때는 포로였고, 지금은 정복자이지만 하루 뒤면 처지가 뒤집힐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위한 장작더미도 어딘가 이미 쌓여 있을지 몰랐어요. 왕은 명령했습니다 — "불을 꺼라."
그러나 불은 이미 너무 컸어요. 물을 아무리 부어도 닿는 것보다 타는 것이 빨랐습니다. 크로이수스는 이번엔 아폴론을 불렀어요. 자기를 이 자리로 이끈 그 신이라면 구해 줄 수도 있으리라고. 그러자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더니, 몇 분 만에 사르디스를 덮은 먹구름이 되어 봄 폭우 같은 비를 쏟아부었습니다. 불이 꺼졌어요. 크로이수스와 소년들은 살아서 장작더미를 내려왔습니다(Hdt 1.87).
솔론은 옳았다 — 이야기가 남긴 것
살아남은 크로이수스는 키루스의 고문이 되었어요. 그는 델포이에 사절을 보내 항의했습니다 — "당신의 신탁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 델포이의 답은 간결했어요. "대제국이 무너진다고 했지, 어느 제국인지는 당신이 물었어야 했다. 기게스의 5대 후 복수는 이뤄져야 했고, 우리는 다만 그 시간을 3년 늦춰 주었을 뿐이다"(Hdt 1.91).
기게스의 침실에서 뽑힌 칼날이, 약 170년 뒤 사르디스의 장작더미 앞에서 마침내 그 끝에 닿은 거예요. 솔론의 한마디 — "끝을 보기 전에는 행복을 말하지 말라" — 는 한 왕조 전체의 묘비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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