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에서 패한 크세르크세스는 더 이상 같은 왕이 아니었어요. 봄에는 바다를 채찍질하며 다리를 놓았지만, 가을에는 바로 그 바다 앞에서 퇴로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이 글은 헬레스폰트의 다리가 제국의 오만과 귀환의 불안을 함께 드러내는 장면을 따라갑니다.
기원전 480년 가을, 한 왕이 무너진 다리 앞에 말없이 서 있었어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였습니다. 그 봄,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자기가 놓은 다리가 폭풍에 부서지자 분노해 바다에 채찍 삼백 대를 명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가을이 되자, 채찍을 맞았던 그 바다가 왕의 귀환 길을 통째로 삼켜 버렸습니다.
이건 자연을 정복하려 했던 한 인간이 결국 자연에 가로막히는 이야기예요.
왕이 가장 먼저 물은 것
살라미스 해전 다음 날 아침, 크세르크세스의 진영에서 한 질문이 조용히 돌았어요 — "헬레스폰토스(Hellespont)의 다리가 아직 서 있는가." 왕이 가장 먼저 물은 것이 이거였습니다. 그는 해협에서 익사한 수만 명의 시체보다, 이천 마일 떨어진 곳에 배와 나무로 이어 만든 다리 하나의 운명을 더 걱정했어요(Hdt 8.97).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만약 그 다리가 이미 폭풍에 무너졌다면, 제국의 왕이 전례 없는 귀환 길을 헤매게 될 테니까요. 그 봄, 그가 이 다리를 처음 건너던 날이 떠올랐을 거예요. 첫 다리도 완공된 밤에 폭풍으로 파괴됐고, 왕은 바다에 삼백 대의 채찍질을 명했었습니다(Hdt 7.34-35). 처형관들이 파도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너 쓴 강물아…" 하고 외치던 그 장면. 그때는 분노가 허용되는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습니다.
떠나는 왕, 남는 장수
왕은 밀실 회의를 소집했어요. 마르도니우스(Mardonios)가 먼저 말했습니다. 애초에 왕을 그리스 침공으로 이끈 장본인이었죠. 그가 일어나 제안했어요 — "폐하, 저에게 삼십만의 선발군을 남기십시오. 저는 이 땅에 남아 그리스를 완성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안전히 귀국하십시오"(Hdt 8.100).
여기서 헤로도토스는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끼워 넣어요 — 마르도니우스가 남기를 자원한 건 사실 이 원정의 책임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승리하면 자기 공로가 되고, 실패하면 자기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나니까요(Hdt 8.100).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어요. 살라미스에서 살아 돌아온 할리카르나소스(Halikarnassos)의 여왕 아르테미시아(Artemisia)였습니다. 그녀는 왕 앞에 나서 단호하게 말했어요 — "폐하는 이미 아테네를 불태우셨습니다. 원정의 목표를 이미 이루셨습니다. 마르도니우스의 제안은 받아들이시되, 폐하 자신은 즉시 아시아로 돌아가십시오. 실패하는 것은 마르도니우스이지 폐하가 아닐 것입니다. 성공하면 폐하의 공으로 돌아옵니다"(Hdt 8.102). 원정 내내 왕에게 가장 현명한 조언을 건넨 여인의 마지막 조언이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듣고 승인했어요. 그는 자기 아들들을 그녀에게 맡겨 에페소스까지 호송하게 했습니다(Hdt 8.103). 아르테미시아의 역할은 여기서 막을 내렸어요.
같은 밤, 해협 건너편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가 또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왕의 퇴로를 끊자고 주장하는 아테네인들에게 그는 반론을 폈어요 — "적을 달아나게 두라. 몰리는 자의 싸움이 가장 무섭다. 지금 우리는 승리했다. 승리를 보존하자"(Hdt 8.108-109). 이게 그의 공식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의 논리는 달랐어요. 그는 노예 시킨누스(Sicinnus)를 다시 한번 페르시아 진영으로 보냈습니다. 이번 전언은 이랬어요 —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리스의 추격을 막고 있다. 왕이 안전히 돌아가도록 그가 애쓰고 있으니, 왕은 이 일을 잊지 말라"(Hdt 8.110).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거짓보다 더 교활한 진실이었어요. 테미스토클레스는 자기 도시의 안전을 위해 적의 감사를 미리 받아 둘 필요가 있었거든요. 전쟁은 반드시 다시 올 테니까요.
채찍을 맞았던 바다가 길을 끊다
크세르크세스의 귀환 행군이 시작됐어요. 봄에 석 달을 들여 행군했던 거리를 이제 사십오 일 만에 다급히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식량이 바닥나자 병사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뜯어 먹었고, 역병이 돌았어요.
이 행군 중 헤로도토스는 한 일화를 기록하되, 스스로 그 신빙성을 의심한다고 덧붙입니다. 배가 너무 많은 사람을 실어 바다를 건너지 못하자 왕이 갑판의 페르시아 귀족들에게 뛰어내리라 명했고, 그들이 한 명씩 왕에게 절한 뒤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익사했다는 이야기예요. 그 뒤 왕은 배를 가볍게 만든 선장에게 충성을 칭찬하면서도, 페르시아인들을 죽게 했다는 이유로 그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덧붙여요 —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왕이 갑판의 사람들을 먼저 바다에 던지고 그 뒤에 선장을 처벌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들은 대로 전한다"(Hdt 8.118-119 요약). "나는 들은 것을 기록한다"는 그의 원칙이 또 한 번 작동하는 대목입니다.
헬레스폰토스에 도착했을 때, 왕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정찰대가 먼저 가서 본 것을 전했거든요. 그가 봄에 건넜던 두 개의 긴 부교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름 끝의 폭풍이 휩쓸어 가 버린 거예요. 길이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왕이 해안에 이르렀을 때, 그의 눈앞에는 빈 바다만 있었어요. 멀리 잔해가 떠다녔습니다 — 배의 조각들, 끊어진 밧줄, 썩어 가는 목재. 그 조각들이 파도에 실려 해안으로 밀려왔다 밀려갔어요. 봄의 일을 그는 기억했을 겁니다. 같은 해협 앞에서 첫 다리가 부서지자 분노해, 바다에 쇠족쇄를 던지고 채찍질을 명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으라 했던 그날을요(Hdt 7.35).
이번에는 그런 분노가 없었어요. 바다가 한 번 더 제국의 교만을 부정했고, 왕은 말없이 해안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의 군대는 작은 배들을 모아 한 명씩 아시아로 건너가기 시작했어요. 봄에 왕이 분노로 때린 바다가, 가을에 왕의 다리를 삼킨 거예요. 자연을 채찍질해 복종시키려 한 자가 결국 자연에 가로막힌, 헤로도토스가 그려낸 가장 정교한 수미상관(首尾相關)이 이 장면에서 닫힙니다. 채찍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텅 빈 궁정으로 돌아온 왕
아르타바조스(Artabazos)가 왕을 마케도니아까지 호위했어요. 테살리아에서 왕은 본대를 남기고 빠른 행군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사르디스(Sardis)에서 한동안 머문 뒤, 마침내 수사(Susa)의 왕궁으로 돌아갔어요(Hdt 8.126).
그런데 돌아온 궁정은 비어 있었습니다. 왕의 아들들과 정비(正妃)와 궁녀들과 서기들이 있었지만, 왕이 떠나 있던 이 년 동안 궁정의 중심이 흔들려 있었어요. 출정의 폭군은 사라지고, 패전의 왕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채 서 있었습니다. 그의 분노는 이제 향할 곳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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