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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영웅은 어떻게 1년 만에 무너졌나 — 썩어 가는 허벅지와 빈손의 함대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Marathon)에서 아테네(Athens)를 구한 사람,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위대한 아테네인으로 불린 사람이 있었어요. 밀티아데스(Miltiades)입니다. 페르시아 정예를 평야 한가운데서 포위한 그 전술을 설계한 장본인이었죠.

2026년 5월 30일 헤로도토스 『역사』 읽기 조회 1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Marathon)에서 아테네(Athens)를 구한 사람,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위대한 아테네인으로 불린 사람이 있었어요. 밀티아데스(Miltiades)입니다. 페르시아 정예를 평야 한가운데서 포위한 그 전술을 설계한 장본인이었죠.

그런데 그가 무너지는 데는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영광의 절정에서 그는 도시 전체의 신뢰를 손에 쥐었고, 바로 그 신뢰를 자기 개인의 복수에 써 버렸습니다. 결말은 빈손으로 돌아온 함대, 썩어 들어가는 허벅지,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 받은 재판이었어요.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권 6의 마지막을 이 몰락으로 닫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위대한 공적이 그것을 이룬 사람을 어떻게 집어삼키는가, 라는 질문을 남기기 위해서였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원정

마라톤의 승리가 있은 다음 해 여름, 밀티아데스가 아테네 민회 앞에 섰어요. 그는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 함선 일흔 척, 병력, 그리고 비용 일체를. 무엇을 위해서냐고요? 그는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 약속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

"내가 여러분을 어느 도시로 이끌겠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많은 금을 얻어 돌아올 것이다. 그곳의 이름을 지금은 말할 수 없다"(Hdt 6.132).

민회는 투표했어요. 그리고 마라톤의 영웅에게, 어디에 쓰일지도 모른 채, 일흔 척의 함선을 내주었습니다. 이것은 한 도시가 한 사람의 명성에 얼마나 깊이 기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함대는 남쪽으로 항해했고, 밀티아데스는 끝까지 목적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그들이 닻을 내린 곳은 에게해의 한 섬, 파로스(Paros)였어요.

개인의 원한이 빌린 도시의 함대

이 원정은 아테네의 이름으로 떠났지만, 그 진짜 동기는 한 사람의 사적인 원한이었어요. 몇 년 전, 파로스의 한 시민이 페르시아 궁정에 밀티아데스를 밀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밀티아데스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마라톤의 승리가 그에게 준 아테네의 신뢰를, 그는 지금 개인의 복수에 쓰고 있었던 거예요.

그는 파로스 성벽 앞에 상륙해 섬의 사절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 "백 탈란트의 은을 내라. 그러면 함대는 떠난다. 내지 않으면 이 성벽을 무너뜨릴 때까지 머문다." 파로스의 답은 거절이었어요(Hdt 6.133).

포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에서 파도처럼 돌격해 페르시아군을 두 시간 만에 꺾은 그 그리스 중장보병도, 높고 단단한 돌벽 앞에서는 같은 돌격이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공성 장비는 부족했고, 병사들은 성벽 아래에서 지쳐 갔습니다. 스물여섯 날이 지나도록 파로스는 끄떡없었고, 밀티아데스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어요.

데메테르 성소의 어둠

그 무렵 섬에서 한 여자가 밀티아데스의 진영을 찾아왔어요. 이름은 티모(Timo)였습니다. 그녀는 파로스의 한 지하 신전에서 봉사하는 여사제였어요 — 여자만 들어갈 수 있는, 데메테르(Demeter)에게 바쳐진 성소였습니다. 티모는 은밀히 제안했어요 — "파로스를 점령하고 싶다면 성 밖의 데메테르 성소로 가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일러 주마"(Hdt 6.134).

헤로도토스는 여기서 말을 아껴요. 그녀가 왜 자기 도시를 배신했는지, 무엇을 약속받았는지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록할 뿐이에요. 밀티아데스는 그 말을 들었고, 밤에 진영을 빠져나가 데메테르 성소의 담을 뛰어넘었습니다. 그가 신전 본당으로 다가갔을 때,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적어요 — "그에게 어떤 공포가 닥쳤다"(Hdt 6.134). 그가 본 것이 등불의 그림자였는지, 제의의 물건이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지금 범하는 신성모독에 대한 갑작스러운 자각이었는지, 헤로도토스는 특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그의 문장은 조용해져요.

밀티아데스는 돌아서서 달아났습니다. 다시 성소 외벽을 넘으려고 높은 담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때 한 발을 잘못 디뎠습니다. 그는 허벅지를 다쳤어요. 심한 타박상이었다고도 하고 뼈가 부러졌다고도 하는데, 헤로도토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적습니다(Hdt 6.134). 확실한 건 단 하나, 그가 이 부상에서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정해진 몰락이라는 신탁

병사들이 그를 진영으로 옮겼고, 의사들이 찢긴 다리를 붕대로 감쌌어요. 그는 더 이상 말을 탈 수도, 지휘봉을 들 수도 없었습니다. 군용 침대에 실린 채 배로 옮겨졌고, 함대는 이튿날 아침 닻을 올렸어요. 백 탈란트도, 어떤 사죄도 받지 못한 채였습니다. 스물여섯 날 만에 함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파로스 사람들은 뒤에 델포이(Delphoi)로 사람을 보내 물었습니다 — "우리가 티모를 처형해야 합니까? 그녀는 신전의 금기를 외지인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 외지인은 침공자로 우리 성소에 들어왔습니다." 신녀의 답은 뜻밖이었어요 — "아니다. 티모에게 잘못이 없다. 밀티아데스는 어떤 식으로든 불행하게 끝나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다만 그 일의 도구였을 뿐이다"(Hdt 6.135). 파로스 사람들은 여사제를 용서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판결을 문학적으로 써요. 몰락은 티모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밀티아데스 자신이 만든 것이다. 여사제는 그 길 위의 한 표지판이었을 뿐이라는 거예요.

침대에 누운 채 받은 재판

밀티아데스가 아테네 항구에 들어왔을 때, 도시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일 년 전 일흔 척의 배를 맡겼던 바로 그 도시가, 아무 결과 없이 돌아온 그를 차갑게 맞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허벅지는 이미 썩기 시작했어요. 상처에서 악취가 났고, 다리는 푸르스름하게 변해 갔습니다.

크산티포스(Xanthippos)라는 젊은 귀족이 — 훗날 그의 아들이 페리클레스(Pericles)가 됩니다 — 민회에 밀티아데스의 탄핵을 제기했어요. 죄목은 "민중을 속인 죄"였습니다. 목적지도 밝히지 않고 공적 자원을 받아 사적 원한을 풀려 했다는 것이었어요. 그에게 사형이 요구되었습니다.

재판의 날, 밀티아데스는 법정에 서지 못했어요.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허벅지는 부풀어 올랐고 붕대 위로 고름이 배어 나왔어요. 친구들이 그의 침대를 민회 뒤편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었어요. 사촌과 친구 몇 명이 대신 말해야 했고, 그들이 반복한 논거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 "마라톤에서 그가 한 일을 기억하라"(Hdt 6.136).

민회는 논쟁 끝에 판결했어요. 사형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오십 탈란트의 벌금이 부과되었어요. 밀티아데스의 재산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허벅지의 부패는 위로 번졌고, 고름은 깊어졌어요. 열에 들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던 그는, 며칠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Hdt 6.136). 그의 아들 키몬(Cimon)이 아버지가 죽은 뒤 오십 탈란트의 벌금을 국고에 갚았어요. 그것은 그의 개인 재산 대부분을 앗아갔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깨끗이 기록되도록.

영광이 영웅을 삼킬 때

이 몰락의 서사에서 한 구절이 유독 길게 울려요. 헤로도토스가 티모에 대한 델포이 신탁 속에 숨겨 둔 한마디 — "밀티아데스는 어떤 식으로든 불행하게 끝나도록 정해져 있었다."

마라톤 다음 해는 또 하나의 기적의 해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한 영웅이 스스로를 태워 버린 해였습니다. 그는 마라톤에서 아테네를 구했어요. 그러나 그 구원을 자기 개인의 이름으로 청구했고, 다음 원정에서 그 이름을 불태웠습니다. 헤로도토스는 독자에게 질문을 남겨요 — 위대한 공적이 그것을 이룬 사람을 지나친 자신감으로 몰아넣을 때, 그 공적 자체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같은 권에서 우리는 신을 매수하고 미쳐 죽은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를 보았고, 이제 자기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린 승리를 사적 복수에 쓰다 무너진 아테네 장군을 봅니다. 헤로도토스에게 인간의 운명은, 그가 가장 높이 올랐을 때 가장 위태로워요.

밀티아데스는 마라톤 언덕의 공동 묘지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그 둔덕에는 같은 날 전사한 백구십이 명의 아테네 시민만 누워 있어요. 그들은 몰락하기 전에 죽었고,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깨끗합니다. 밀티아데스는 그들 곁에 있을 수 없었어요.

이 질문이 권 6의 마지막 음절이고, 동시에 권 7로 가는 다리예요. 권 7의 첫 장에서 다리우스(Darius)는 죽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왕좌에 오릅니다. 마라톤의 복수는 이집트 반란이 가라앉은 뒤 훨씬 거대한 규모로 다시 시작돼요. 아테네는 마라톤의 영웅을 이미 잃었습니다. 다음 침공이 올 때, 그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지도자가 필요할 거예요. 그의 이름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예요. 그 이야기는 권 7 크세르크세스의 3년 잔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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