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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왕의 귀를 더듬다 — 가짜 왕을 무너뜨리고 말 한 마리로 결정된 페르시아의 왕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Susa)의 궁정은 이상하게 조용했어요. 왕이 귀족들을 부르지 않았고, 사절을 만나지 않았으며,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고문만이 그가 살아 있음을 증언했어요. 그 이름은 바르디야(Bardiya), 키루스의 아들이자...

2026년 5월 30일 헤로도토스 『역사』 읽기 조회 1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Susa)의 궁정은 이상하게 조용했어요. 왕이 귀족들을 부르지 않았고, 사절을 만나지 않았으며,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고문만이 그가 살아 있음을 증언했어요. 그 이름은 바르디야(Bardiya), 키루스의 아들이자 죽은 왕 캄비세스의 친동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바르디야는 이미 오래전 비밀리에 살해되어 어딘가에 묻혀 있었어요. 왕좌에 앉아 있는 자는 그와 외모가 닮은 마기(Magi) 사제, 가우마타(Gaumata)였습니다. 문제는 단 하나였어요 — 누가 먼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낼 것인가. 이건 잠든 가짜 왕의 정체를 한밤중에 손끝으로 밝혀내고, 일곱 귀족이 제국의 운명을 바꾼 뒤, 마지막엔 말 한 마리의 울음으로 새 왕이 정해진 이야기예요.

잠든 왕의 귀를 더듬은 밤

가장 먼저 의심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귀족 오타네스(Otanes)였어요. 그는 키루스 혈통 다음가는 명문가의 수장이었고, 그의 딸 파이디메(Phaidyme)는 캄비세스의 왕비였다가 형제 관례에 따라 새 왕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전갈을 보냈어요 — "네 남편이 정말 키루스의 아들 바르디야인지 확인하라."

오타네스는 딸에게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키루스 시대에 마기 가우마타가 큰 죄를 지어 양쪽 귀가 잘린 일이 있었거든요. 진짜 바르디야라면 두 귀가 멀쩡할 것이었어요. 그가 딸에게 지시했습니다 — "왕이 잠들었을 때 머리맡으로 다가가 귀를 만져 보아라. 귀가 있으면 바르디야, 없으면 가우마타다."

파이디메는 두려웠어요. 그 왕은 밤에 깨어나 가까이 오는 자를 경호 없이 베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그날 밤 그녀는 남편 옆에 누웠습니다. 등불이 꺼졌어요. 그녀는 호흡을 고르며 왕의 숨소리가 깊고 규칙적으로 길어지기를 몇 시간이고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이불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어요.

손가락이 베개 위로 소리 없이 미끄러졌습니다. 짧고 기름진 머리카락이 손끝에 걸렸어요. 그 손이 머리카락 아래, 귓바퀴가 있어야 할 자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어요. 살이 평평했고, 오래된 상처의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뗐어요. 왕이 뒤척였습니다. 그녀는 숨을 멈췄어요. 다행히 왕은 다시 잠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파이디메가 아버지에게 단 한 줄의 쪽지를 보냈어요 — 왕은 귀가 없다(Hdt 3.68–69).

탑 위의 자백, 그리고 일곱 명의 진입

오타네스는 여섯 명의 귀족을 소리 없이 포섭했어요. 그중에는 아케메네스 왕가의 먼 방계이자 가장 나이 어린 다리우스(Darius)도 있었습니다. 일곱 명이 수사의 외진 저택에 모였지만, 아직 거사의 날짜도 방법도 정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그들의 손을 떠밀었습니다.

같은 며칠 사이, 충신 프렉사스페스(Prexaspes)가 왕궁 탑 꼭대기에 올라 수사 시민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어요. 프렉사스페스는 일찍이 캄비세스의 명으로 진짜 바르디야를 살해한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가우마타는 그에게 "바르디야는 살아 있다"고 시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거짓 증언하라 강요하고 있었어요. 프렉사스페스가 탑 위에 섰고, 군중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외친 것은 강요받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 "수사 시민들이여, 바르디야는 이미 죽었다. 내 손으로 죽였다. 지금 왕좌에 앉은 자는 마기 가우마타다!" 말을 끝낸 순간, 그는 탑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자기 시체로 그 증언을 보증한 거예요(Hdt 3.74–75).

일곱 명은 더 기다리지 않았어요. 그날 대낮에 그들은 수사 왕궁의 정문을 지나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페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의 수장들이었고, 검을 찬 채 왕을 만나러 들어가는 건 관례 안의 일이었어요. 정문, 제2문, 제3문이 차례로 열렸습니다. 내정에 이르러 환관들과 부딪혔어요. 일곱 귀족을 본 환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려 할 때 일곱이 검을 뽑았어요.

어둠 속 왕실 깊은 곳에 가우마타와 그의 형제 마기가 있었습니다. 일곱이 방문을 밀어 열자 두 마기가 벌떡 일어섰어요. 어둠 속에서 귀족 고브뤼아스(Gobryas)가 한 마기와 엉켜 바닥을 굴렀습니다. 그 위로 다리우스가 검을 뽑은 채 다가섰어요. 그런데 어두워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 찌르면 동료를 죽일 것이었어요. 그가 주저하는 순간, 바닥에서 고브뤼아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

"구별하지 말고 찔러라! 차라리 나를 찌를지언정 놓치지 말라."

— Herodotus, Historiae 3.78

다리우스의 검이 내려갔어요. 검이 살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고브뤼아스가 상처 없이 몸을 일으켰어요. 그의 발 아래에 마기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같은 시각 방의 다른 구석에서 또 한 명의 마기가 쓰러졌어요. 일곱 명이 두 마기의 머리를 창에 꿰어 거리로 내려가자, 수사 시민들이 환호하며 그들을 맞았습니다. 그날부터 페르시아에서는 해마다 "마기 살해의 축제(Magophonia)"가 열렸어요(Hdt 3.79).

군주정이냐 민주정이냐 — 최초의 정체 논쟁

마기를 제거한 닷새 뒤, 일곱 명이 다시 모였어요. 이번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 누가 왕이 되느냐보다, 어떤 형태의 통치를 할 것이냐가 먼저였어요. 헤로도토스는 이 대목에서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끼워 넣어 단언합니다 — "어떤 그리스인들은 이 논쟁이 실제로 있었다고 믿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분명히 있었다고 확신한다"(Hdt 3.80). 서양 정치사상 최초의 비교정체 논의가 이렇게 펼쳐졌어요.

오타네스가 먼저 민주정(이소노미아, isonomia)을 주창했습니다 — "군주정은 최선의 인간조차 타락시킨다. 왕은 질투와 교만 때문에 동료를 죽이고, 자기가 세운 법조차 어긴다. 다수가 결정하게 하고, 공직은 추첨으로 뽑고, 심의는 공개로 하라"(Hdt 3.80). 메가비조스(Megabyzus)가 과두정으로 반박했어요 — "민중은 돌풍과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충동에 휩쓸린다. 배운 자들, 귀족 중의 귀족이 통치해야 한다"(Hdt 3.81).

마지막으로 다리우스가 군주정을 주창했습니다 — "세 정체 모두 최선의 형태를 가정하고 비교해 보자. 최선의 왕 한 사람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민주정도 결국 우두머리 하나를 세우게 되고, 과두정도 결국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모인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왕을 두는 것이 가장 솔직한 길이다"(Hdt 3.82). 일곱 중 넷이 군주정에 표를 던졌어요.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주정을 외쳤던 오타네스는 왕위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났어요. 그 대신 조건 하나를 내걸었습니다 — 자신과 후손이 영원히 어떤 페르시아 왕에게도 복종하지 않을 권리. 나머지 여섯이 승낙했어요. 헤로도토스는 덧붙입니다 — "이 가문은 나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 조건 아래 살고 있다"(Hdt 3.83). 군주정의 그림자 속에, 가문 단위의 자유라는 예외 공간 하나가 남은 거예요.

새벽의 말 한 마리가 정한 왕

이제 남은 여섯 명 중 누가 왕이 될지를 정해야 했어요. 그들은 기묘한 방법에 합의했습니다 — 이튿날 동이 트기 전 함께 궁정 밖 평원으로 말을 몰고 나가, 해가 솟는 순간 가장 먼저 우는 말의 주인이 왕이 되기로 한 거예요(Hdt 3.84).

그날 밤, 다리우스의 마부 오이바레스(Oebares)가 말과 씨름했습니다. 그는 다리우스의 수말이 좋아하는 암말 한 필을 정해진 장소로 끌고 가, 밤새 그 자리에서 수말과 교접하게 했어요. 새벽이 되었습니다. 여섯 명이 말을 타고 그 지점을 지나는 순간, 다리우스의 수말이 어젯밤의 냄새를 맡고는 몸을 떨며 가장 먼저 크게 울었어요. 여섯 명이 말에서 내려 다리우스 앞에 엎드렸습니다. 일부 전승에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고도 하는데, 헤로도토스는 그 판본을 전하되 단정하지는 않아요(Hdt 3.84–87).

이렇게 다리우스가 페르시아의 대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키루스의 두 딸 아토사(Atossa)와 아르티스토네(Artystone)를 왕비로 맞았어요. 키루스의 혈통과 자신의 혈통을 한 집안에 모아, 끊어졌던 정통성을 다시 잇는 행위였습니다(Hdt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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