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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우리 오른쪽에 있었다 — 헤로도토스가 믿지 못한 한 문장이 증명한 아프리카 일주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집트를 여행하다 오래된 돌기둥을 여러 번 마주쳤어요. 그런데 같은 모양의 비석을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스키타이의 경계에서도, 트라키아와 리디아의 바위 절벽에서도 봤다는 겁니다. 모두 같은 왕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어요.

2026년 5월 30일 헤로도토스 『역사』 읽기 조회 15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집트를 여행하다 오래된 돌기둥을 여러 번 마주쳤어요. 그런데 같은 모양의 비석을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스키타이의 경계에서도, 트라키아와 리디아의 바위 절벽에서도 봤다는 겁니다. 모두 같은 왕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어요.

그 왕의 이름은 세소스트리스(Sesostris). 사제들은 그가 세상 끝에서 끝까지 정복한 첫 인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Hdt 2.102). 알렉산드로스가 나타나기 백여 년 전이었어요. 이번 이야기는 세상을 한 바퀴 정복했다는 전설의 왕과, 실제로 세상을 한 바퀴 돌고도 그 의미를 몰랐던 배에 관한 거예요. 그리고 그 끝에는, 헤로도토스 자신이 "믿지 못하겠다"고 적은 한 문장이 도리어 진실을 증명하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끝까지 정복한 왕

세소스트리스는 함대를 이끌고 아라비아 만 — 지금의 홍해 — 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며 여러 민족을 복속시켰어요. 바다가 너무 얕아 더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자 그는 회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정복은 그 뒤였어요. 그는 큰 육군을 모아 아시아 전역을 거쳐 유럽의 스키타이와 트라키아 땅까지 진군했습니다. 점령한 땅의 끝마다 그는 돌기둥을 세워 자기 이름과 정복 사실을 새겼어요. 흥미로운 건 그 비석에 적의 성격까지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용감하게 맞서 싸운 종족의 비석에는 그들의 용기를 새겼고, 저항 없이 굴복한 종족의 비석에는 비겁함의 표식을 남겼다고 해요(Hdt 2.102). 헤로도토스는 이 기둥들을 직접 몇 개 봤다고 적습니다 — "내 시대에도 여러 개가 남아 있었다.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에 한 개가 있었다"(Hdt 2.106).

귀환길에도 위기가 있었어요. 트라키아에서 동생이 왕위를 찬탈하고, 나일의 한 섬에서 연회를 연다며 세소스트리스와 그의 자녀들을 초대한 뒤 연회장 둘레에 건초를 쌓고 불을 질렀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왕의 아내가 조언했어요 — "여섯 아들 중 둘을 다리처럼 불 앞에 눕히고, 나머지가 그 몸을 밟고 건너게 하시오." 왕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두 아들의 몸이 다리가 되어 가족은 탈출했고, 두 아들은 불에 타 죽었어요(Hdt 2.107). 헤로도토스는 이 참혹한 이야기 끝에 그저 "사제들이 그렇게 말했다"고만 덧붙입니다. 진위는 판단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적어 둡니다. 세소스트리스가 이집트로 돌아와 토지를 백성에게 공평히 나누고, 도랑을 파 나일 물을 모든 경작지로 흐르게 했다는 거예요. 해마다 나일이 범람해 땅의 경계를 지울 때마다 다시 측량해야 했기에, 바로 여기서 기하학이 발명되었다고 헤로도토스는 적습니다(Hdt 2.109). 사실 이 '세소스트리스'는 실존 파라오 세누세르트 1세와 3세의 정복 기억이 수백 년에 걸쳐 하나로 합쳐진 전설적 복합체였어요. 사제들은 그 합성된 이름을 진실로 믿었고, 헤로도토스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12만 명이 묻힌 운하

이집트 권의 마지막 긴 구간은 전설이 아니라 당대에 가까운 역사, 26왕조로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한 왕의 이야기가 있어요. 네코스 2세(Nekos II), 프삼메티코스 1세의 아들로 기원전 610년에 즉위한 왕입니다.

네코스는 이집트의 두 바다를 하나의 물길로 잇겠다는 큰 꿈을 품었어요. 나일강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사막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홍해에 닿는 운하 — 배가 지중해에서 나일을 타고 올라와 이 운하를 지나 홍해로 나가고, 거기서 에티오피아·아라비아·인도까지 항해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었죠.

공사는 수년간 이어졌고, 수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됐어요. 헤로도토스는 담담히 기록합니다. 이 공사에서 죽은 사람이 "12만 명이었다"(Hdt 2.158). 구간은 너무 길고 돌은 너무 단단했으며, 사막의 여름 열기는 일꾼들을 한 번에 수십 명씩 쓰러뜨렸어요. 시체들은 도랑 옆에 묻혔습니다.

마침내 네코스가 신탁을 구했어요. 신탁의 답은 짧았습니다 — "너는 야만인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왕은 이를 훗날 이 운하를 쓰게 될 외부 세력에 대한 경고로 읽고, 공사를 중단시켰어요. 12만 명의 죽음은 완성되지 못한 도랑 곁에 그대로 남았습니다(Hdt 2.158). 이 운하를 백여 년 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가 이어받아 완성하는 건, 또 다른 권의 이야기예요.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돈 배

같은 해, 네코스는 두 번째 거대한 실험을 시작했어요. 그는 당시 지중해 최고의 항해자였던 페니키아인들의 선단을 고용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 "홍해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의 남쪽 해안을 돌아, 헤라클레스의 기둥(지금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돌아오라"(Hdt 2.159).

페니키아 선단은 홍해를 떠나 동해안을 따라 내려갔어요. 식량이 떨어지면 해안에 내려 밀을 심고, 수확을 기다린 뒤 다시 출항했습니다. 그렇게 두 해를 보내고, 세 번째 해에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 지중해로 돌아왔어요. 그들은 놀라운 보고를 가져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북쪽을 빼면 온통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 즉 하나의 대륙이라는 사실이었죠.

그런데 그들은 한 가지 기묘한 것도 보고했어요 — "리비아 남쪽을 항해할 때, 태양이 우리의 오른쪽에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이 말을 적은 뒤 솔직하게 덧붙입니다 — "이 부분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믿을지도 모른다"(Hdt 2.159).

바로 이 문장이 역설적으로 페니키아 항해의 진실을 증명해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남쪽에 보입니다. 그런데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내려가면 태양은 북쪽에 떠요 — 서쪽으로 항해하는 사람에게 그건 '오른쪽'이 되죠. 헤로도토스는 이 천문학적 사실을 몰랐어요. 그가 "믿지 못하겠다"고 쓴 바로 그 대목이, 그들이 실제로 적도를 넘어 남반구까지 내려갔다는 결정적 증거인 셈입니다. 기원전 600년경의 페니키아 선원들은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고 왔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실을 알아냈고, 헤로도토스는 자기가 믿지 못한 구절로 그것을 확증해 버린 거예요. 이 일주가 두 번째로 이뤄지기까지는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명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멀리 간다 — 이야기가 남긴 것

이제 이집트 권은 끝을 향해 가요. 26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아마시스(Amasis)가 등장하고, 그의 아들 프삼메니투스(Psammenitus)가 재위 여섯 달 만에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의 군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건 다음 권의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 권의 진짜 무게는 돌기둥과 운하와 배에 있었습니다. 세소스트리스는 세상을 한 바퀴 정복했다고 전해졌고, 네코스의 배는 세상을 한 바퀴 도는 항해를 실제로 해냈으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어요. 헤로도토스 자신은 두 기록을 나란히 놓고 "믿지 못하겠다"고 한 번 적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구절이, 그가 알지 못한 위도의 물리학을 증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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