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집트를 여행하다 오래된 돌기둥을 여러 번 마주쳤어요. 그런데 같은 모양의 비석을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스키타이의 경계에서도, 트라키아와 리디아의 바위 절벽에서도 봤다는 겁니다. 모두 같은 왕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어요.
그 왕의 이름은 세소스트리스(Sesostris). 사제들은 그가 세상 끝에서 끝까지 정복한 첫 인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Hdt 2.102). 알렉산드로스가 나타나기 백여 년 전이었어요. 이번 이야기는 세상을 한 바퀴 정복했다는 전설의 왕과, 실제로 세상을 한 바퀴 돌고도 그 의미를 몰랐던 배에 관한 거예요. 그리고 그 끝에는, 헤로도토스 자신이 "믿지 못하겠다"고 적은 한 문장이 도리어 진실을 증명하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끝까지 정복한 왕
세소스트리스는 함대를 이끌고 아라비아 만 — 지금의 홍해 — 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며 여러 민족을 복속시켰어요. 바다가 너무 얕아 더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자 그는 회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정복은 그 뒤였어요. 그는 큰 육군을 모아 아시아 전역을 거쳐 유럽의 스키타이와 트라키아 땅까지 진군했습니다. 점령한 땅의 끝마다 그는 돌기둥을 세워 자기 이름과 정복 사실을 새겼어요. 흥미로운 건 그 비석에 적의 성격까지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용감하게 맞서 싸운 종족의 비석에는 그들의 용기를 새겼고, 저항 없이 굴복한 종족의 비석에는 비겁함의 표식을 남겼다고 해요(Hdt 2.102). 헤로도토스는 이 기둥들을 직접 몇 개 봤다고 적습니다 — "내 시대에도 여러 개가 남아 있었다.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에 한 개가 있었다"(Hdt 2.106).
귀환길에도 위기가 있었어요. 트라키아에서 동생이 왕위를 찬탈하고, 나일의 한 섬에서 연회를 연다며 세소스트리스와 그의 자녀들을 초대한 뒤 연회장 둘레에 건초를 쌓고 불을 질렀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왕의 아내가 조언했어요 — "여섯 아들 중 둘을 다리처럼 불 앞에 눕히고, 나머지가 그 몸을 밟고 건너게 하시오." 왕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두 아들의 몸이 다리가 되어 가족은 탈출했고, 두 아들은 불에 타 죽었어요(Hdt 2.107). 헤로도토스는 이 참혹한 이야기 끝에 그저 "사제들이 그렇게 말했다"고만 덧붙입니다. 진위는 판단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적어 둡니다. 세소스트리스가 이집트로 돌아와 토지를 백성에게 공평히 나누고, 도랑을 파 나일 물을 모든 경작지로 흐르게 했다는 거예요. 해마다 나일이 범람해 땅의 경계를 지울 때마다 다시 측량해야 했기에, 바로 여기서 기하학이 발명되었다고 헤로도토스는 적습니다(Hdt 2.109). 사실 이 '세소스트리스'는 실존 파라오 세누세르트 1세와 3세의 정복 기억이 수백 년에 걸쳐 하나로 합쳐진 전설적 복합체였어요. 사제들은 그 합성된 이름을 진실로 믿었고, 헤로도토스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12만 명이 묻힌 운하
이집트 권의 마지막 긴 구간은 전설이 아니라 당대에 가까운 역사, 26왕조로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한 왕의 이야기가 있어요. 네코스 2세(Nekos II), 프삼메티코스 1세의 아들로 기원전 610년에 즉위한 왕입니다.
네코스는 이집트의 두 바다를 하나의 물길로 잇겠다는 큰 꿈을 품었어요. 나일강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사막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홍해에 닿는 운하 — 배가 지중해에서 나일을 타고 올라와 이 운하를 지나 홍해로 나가고, 거기서 에티오피아·아라비아·인도까지 항해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었죠.
공사는 수년간 이어졌고, 수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됐어요. 헤로도토스는 담담히 기록합니다. 이 공사에서 죽은 사람이 "12만 명이었다"(Hdt 2.158). 구간은 너무 길고 돌은 너무 단단했으며, 사막의 여름 열기는 일꾼들을 한 번에 수십 명씩 쓰러뜨렸어요. 시체들은 도랑 옆에 묻혔습니다.
마침내 네코스가 신탁을 구했어요. 신탁의 답은 짧았습니다 — "너는 야만인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왕은 이를 훗날 이 운하를 쓰게 될 외부 세력에 대한 경고로 읽고, 공사를 중단시켰어요. 12만 명의 죽음은 완성되지 못한 도랑 곁에 그대로 남았습니다(Hdt 2.158). 이 운하를 백여 년 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가 이어받아 완성하는 건, 또 다른 권의 이야기예요.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돈 배
같은 해, 네코스는 두 번째 거대한 실험을 시작했어요. 그는 당시 지중해 최고의 항해자였던 페니키아인들의 선단을 고용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 "홍해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의 남쪽 해안을 돌아, 헤라클레스의 기둥(지금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돌아오라"(Hdt 2.159).
페니키아 선단은 홍해를 떠나 동해안을 따라 내려갔어요. 식량이 떨어지면 해안에 내려 밀을 심고, 수확을 기다린 뒤 다시 출항했습니다. 그렇게 두 해를 보내고, 세 번째 해에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 지중해로 돌아왔어요. 그들은 놀라운 보고를 가져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북쪽을 빼면 온통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 즉 하나의 대륙이라는 사실이었죠.
그런데 그들은 한 가지 기묘한 것도 보고했어요 — "리비아 남쪽을 항해할 때, 태양이 우리의 오른쪽에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이 말을 적은 뒤 솔직하게 덧붙입니다 — "이 부분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믿을지도 모른다"(Hdt 2.159).
바로 이 문장이 역설적으로 페니키아 항해의 진실을 증명해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남쪽에 보입니다. 그런데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내려가면 태양은 북쪽에 떠요 — 서쪽으로 항해하는 사람에게 그건 '오른쪽'이 되죠. 헤로도토스는 이 천문학적 사실을 몰랐어요. 그가 "믿지 못하겠다"고 쓴 바로 그 대목이, 그들이 실제로 적도를 넘어 남반구까지 내려갔다는 결정적 증거인 셈입니다. 기원전 600년경의 페니키아 선원들은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고 왔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실을 알아냈고, 헤로도토스는 자기가 믿지 못한 구절로 그것을 확증해 버린 거예요. 이 일주가 두 번째로 이뤄지기까지는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명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멀리 간다 — 이야기가 남긴 것
이제 이집트 권은 끝을 향해 가요. 26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아마시스(Amasis)가 등장하고, 그의 아들 프삼메니투스(Psammenitus)가 재위 여섯 달 만에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의 군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건 다음 권의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 권의 진짜 무게는 돌기둥과 운하와 배에 있었습니다. 세소스트리스는 세상을 한 바퀴 정복했다고 전해졌고, 네코스의 배는 세상을 한 바퀴 도는 항해를 실제로 해냈으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어요. 헤로도토스 자신은 두 기록을 나란히 놓고 "믿지 못하겠다"고 한 번 적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구절이, 그가 알지 못한 위도의 물리학을 증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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