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이아 평원의 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그 주, 에게해 건너편에서 또 하나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이오니아 해안의 한 반도, 미칼레(Mykale)에서였습니다.
이 전투는 헤로도토스(Herodotus) 『역사』(Historiae)에서 플라타이아의 쌍둥이로 배치돼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헤로도토스 전 9권의 마지막 전투이자, 페르시아 전쟁의 진짜 마침표입니다. 이건 칠십 년 만에 되돌아온 자유, 그리고 한 거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끝을 맺는가에 관한 이야기예요.
동쪽 바다로 향한 함대
기원전 479년 봄, 그리스 함대가 아이기나(Aegina) 근처 바다에 모였어요. 사령관은 스파르타의 레오티키데스(Leotychides) — 델포이 매수 사건으로 데마라토스의 왕위를 물려받은 바로 그 인물이었습니다. 함선은 백십 척, 살라미스 때보다 적었어요. 페르시아 함대가 달아난 뒤라, 이 함대의 성격은 복수보다 감시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이오니아의 사모스(Samos) 섬에서 사절단이 왔어요. 사절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헤게시스트라토스(Hegesistratos)였는데, 헤로도토스는 이 이름에 주목합니다 — "군대를 이끄는 자"라는 뜻의 좋은 징조였거든요(Hdt 9.91). 사절의 메시지는 간결했어요 — "오십시오. 페르시아 함대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오니아는 다시 자기 자신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레오티키데스는 신중했습니다. 그는 델로스(Delos)까지 함대를 끌고 왔지만 거기서 멈췄어요. 더 동쪽으로 가는 건 페르시아 수역에 들어가는 일이었거든요. 함대 대부분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아는 바다는 아이기나에서 살라미스까지였고, 소아시아 해안은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 산이 바로 바다에 닿고, 항구는 적고, 페르시아 수비대가 내륙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여러 날에 걸친 사절단의 설득 끝에, 레오티키데스는 마침내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바다를 버리고 땅으로 올라간 페르시아
사모스에 도착했을 때, 페르시아 함대는 이미 그곳에 없었어요. 삼 년 전 살라미스와 아르테미시온에서 큰 손실을 입은 페르시아 해군은 끝내 수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페니키아 선단 대부분은 본국으로 소환됐고, 남은 건 이집트와 키프로스, 킬리키아의 배 몇백 척뿐이었어요. 그들은 해전 자체를 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페르시아 지휘관 티그라네스(Tigranes)는 함대를 미칼레 반도로 끌어올렸어요. 모래 해변에 배들을 높이 올려 두고, 그 둘레에 나무 울타리를 둘러 성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트라프 휘하의 육군 육만 명이 그 함대를 지상에서 지키게 했어요. 해전 대신 지상 방어로 맞서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레오티키데스의 함대가 그 해안 앞에 도착해 광경을 보았어요. 바다에는 싸울 상대가 없었습니다. 페르시아 함대는 땅 위에서 육군과 울타리 뒤에 숨어 있었어요. 그리스 병사들은 배에서 내려 해변에 정렬했습니다. 미칼레의 해안은 평평한 모래가 짧게 이어지다 곧 산이 솟는 지형이라, 싸움은 그 좁은 띠 위에서 벌어져야 했어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소문
전투 직전,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그리스 진영의 전 열을 따라 소문 하나가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사모스에서 출항할 때는 없던 소문이었어요. 내용은 이랬습니다 — "오늘 아침 같은 시간에, 저 멀리 그리스 본토 보이오티아 평원에서 파우사니아스와 스파르타인들이 마르도니우스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들이 이기고 있다"(Hdt 9.100).
헤로도토스는 이 소문이 어떻게 미칼레까지 닿았는지 도무지 설명하지 못해요. 플라타이아에서 미칼레까지는 바다로 며칠 거리였습니다. 어떤 배도, 어떤 전령도 그렇게 빨리 올 수 없었어요. 그런데 소문은 거기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서로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고, 레오티키데스에게도 한 전령이 달려와 같은 보고를 했어요 — 누가 가져왔는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이 일화 뒤에 헤로도토스는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문장을 적습니다 —
"이로써 나는 신들의 일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본다. 같은 날에 두 전투가 벌어진 것도, 한 전투의 소식이 다른 전투의 전장에 이른 것도, 모두 인간의 손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 Herodotus, Historiae 9.100
평소 그의 문체는 조심스럽지만, 여기서만큼은 신의 개입을 직접 말해요. 현대 학자들은 이 "같은 날" 전승에 회의적입니다 — 정확한 시간 일치는 후대의 문학적 구성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헤로도토스가 보여 주려 한 건 연대기의 정확성이 아니라 대칭이었어요. 한 여름에 그리스가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자기를 되찾았다는 것. 그것이 그가 독자에게 맡긴 이미지였습니다.
안에서 무너진 전선
전투가 시작됐어요. 그리스 우익은 레오티키데스의 스파르타인들이, 좌익은 크산티포스(Xanthippos)의 아테네인들이 맡았습니다. 아테네인들이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 울타리의 한 모서리를 공격했어요. 울타리는 급히 세운 거라 높지 않았습니다. 아테네 중장보병이 그 위로 올라 안으로 뛰어들자 페르시아 측에 공황이 번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이 전투의 결정적 순간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페르시아 군 안에는 이오니아와 사모스의 병사들이 대규모로 섞여 있었어요 — 지난 이십 년간 페르시아의 강제 징병 아래 복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투가 한창일 때, 이들이 무기를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일부는 페르시아 쪽으로 돌아서서 칼을 겨눴습니다. 특히 사모스 병사들은 자기 동포의 함대가 해변에 도착한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해전이 아닌 지상전으로 끌려 나온 그 순간부터 기회를 기다리던 그들이, 자기 지휘관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페르시아 진영 뒤에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Hdt 9.103).
페르시아 전선은 두 압력 사이에서 무너졌어요 —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그리스인과 뒤에서 일어난 이오니아의 반란. 사령관 티그라네스가 전사했고, 사트라프는 산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해변의 함대는 무방비가 됐어요. 그리스인들은 그 함대를 통째로 불태웠습니다. 에게해를 건너온 페르시아 해군의 잔재가 그 해변에서 그날 밤 끝난 거예요(Hdt 9.104).
자유의 씨앗과 다가올 그림자
밤이 왔을 때, 레오티키데스는 해변에 섰어요. 뒤에는 불타는 페르시아 함대가, 앞에는 빈 바다가 있었습니다. 함대가 타는 그 불빛은 이오니아와 소아시아의 도시들에 보내는 신호 같았어요. 페르시아의 제해권이 끝났다는 신호. 이오니아 도시들은 이십 년 전에 잃었던 것을 다시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 날 그리스 연합은 사모스에서 회의를 열었어요. 이오니아를 어떻게 해방할 것인가를 두고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스파르타는 이오니아 사람들을 본토의 다른 땅에 재정착시키자고 했어요 — 아시아 해안은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아테네는 반대했어요. 이오니아는 자기 땅에 남아야 하고, 그 도시들은 그리스 동맹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요. 아테네가 이긴 건 전략보다 혈연 때문이었습니다 — 아테네는 자기가 이오니아의 어머니 도시 가운데 하나임을 내세웠거든요(Hdt 9.106).
그런데 이 결정이 훗날 델로스(Delos) 동맹의 씨앗이 돼요. 그 동맹은 머지않아 아테네 제국으로 변하고, 오십 년 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자유를 지키려 모인 그리스가, 그 승리의 자리에서 새로운 지배의 씨앗을 함께 심은 거예요. 하지만 그건 훨씬 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여름밤, 해변에서 배들이 타오르는 동안 이오니아는 자유로워지고 있었어요.
끝을 보기까지 — 23편의 여정이 닫히다
미칼레는 헤로도토스 전 9권의 가장 긴 음악적 해결이었어요. 헤로도토스 『역사』 1권에서 키루스(Kyros)가 이오니아를 점령한 이래 칠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 칠십 년이 미칼레 해안의 불타는 배들과 함께 끝났어요. 키루스의 손자의 손자가, 이 바다에서 조상의 정복을 그대로 되돌려받은 셈입니다.
같은 여름 두 전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이오티아의 평원에서, 하나는 소아시아의 해안에서. 그리스의 두 반도 — 본토와 이오니아 — 가 같은 달에 페르시아에서 벗어났어요. 헤로도토스는 이 대칭 앞에서 한 번 조용히 말합니다. 신은 인간의 일에 표시를 남긴다고. 그가 자기 책 어디에서도 그보다 더 분명하게 그것을 말한 곳은 없어요.
그리고 여기서, 23편에 걸친 헤로도토스의 거대한 여정이 닫힙니다. 가장 부유했던 리디아의 왕 크로이수스가 장작더미 위에서 "솔론!"을 외치며 시작된 이야기는(Hdt 1.86), 미칼레 해변의 불빛 아래에서 자유의 승리로 끝나요. 1권에서 솔론이 크로이수스에게 건넨 한마디 — "끝을 보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말하지 말라" — 가 전권을 떠받치는 기둥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대했던 페르시아 제국도, 끝을 보기 전엔 그 운명을 알 수 없었던 거예요. 휘브리스(hybris)는 무너지고 절제(sophrosyne)는 살아남는다는 이 원리가, 크로이수스의 황금에서 크세르크세스의 패전까지 9권 내내 변주됐습니다.
헤로도토스가 마지막에 키루스의 입을 빌려 남긴 경고도 같은 노래예요 — "부드러운 땅은 부드러운 사람을 만든다"(Hdt 9.122). 번영이 강인함을 갉아먹는다는 그 경고를 크세르크세스 세대가 망각했기에 플라타이아와 미칼레에서 패하고 궁정에서 가정마저 파괴했다는 것. 그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역사 서술이되, 그 마지막 음은 철학입니다. "인간이 한 일들이 시간에 의해 잊히지 않도록" 쓰겠다던 첫 약속이, 자유와 절제에 관한 한 편의 거대한 교향곡으로 완성된 거예요. 미칼레의 불빛은, 그 마지막 화음이 울려 퍼진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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