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13년, 세상에서 가장 큰 제국을 다스리던 한 왕이 70만 명을 이끌고 북쪽 초원으로 향했어요. 그가 정복하려던 상대는 도시 하나 가진 게 없는 유목민, 스키타이(Scythia)였습니다. 성벽도 신전도 농경지도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은 뜻밖이에요. 거대한 군대는 두 달 동안 빈 초원을 헤매다가 적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돌아섰습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역사』(Historiae)에 적어 둔 이 원정은, 가진 것이 없는 자가 어떻게 가장 강한 자를 이기는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전해진, 새와 쥐와 개구리와 화살로 된 수수께끼가 놓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놓은 다리, 두 대륙을 잇다
원정의 주인공은 다리우스(Darius)였어요. 페르시아의 법을 정비했던 다리우스가, 이번엔 북방의 유목민을 치러 나선 겁니다. 헤로도토스는 그 명분을 짧게 적어요 — 스키타이가 옛날 메디아를 28년이나 지배한 적이 있으니, 그 묵은 빚을 갚겠다는 것이었습니다(Hdt 4.1).
대군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려면 보스포로스(Bosporus) 해협을 넘어야 했어요. 사모스 출신 기술자 만드로클레스(Mandrocles)가 선박 삼백여 척을 줄지어 묶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흙을 덮었습니다. 두 대륙을 잇는 첫 번째 부교였어요. 왕은 말 위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바라보며 흡족해했고, 만드로클레스에게 큰 선물을 내렸습니다. 기술자는 뒷날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사모스의 헤라 신전에 봉헌하며 직접 새긴 문장을 남겼어요 — "만드로클레스, 보스포로스에 다리를 놓은 자"(Hdt 4.87–88).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이 스키타이라는 민족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묻다가, 한 문장에 자기 책 전체를 꿰어 버립니다. 스키타이는 원래 아시아에 살았는데 마사게타이(Massagetai)에게 쫓겨 흑해 북쪽으로 밀려났다는 거예요(Hdt 4.11). 그 마사게타이가 누구였던가요. 앞선 권에서 키루스 대왕의 머리를 잘라 피로 가득 채운 가죽 주머니에 담갔던 여왕 토미리스(Tomyris)의 부족입니다. 페르시아의 첫 왕을 죽인 그 북방의 그림자가, 이제 새 왕 다리우스의 길 위에도 드리워져 있었어요.
도시가 없으니 빼앗길 것도 없다
스키타이의 세계는 헤로도토스의 문명과 닮은 데가 거의 없었어요. 그들은 도시를 짓지 않았고, 농사도 거의 짓지 않았습니다. 수레 위에서 태어나 수레 위에서 잠들었어요. 최고신은 화로의 여신 타비티(Tabiti)였고, 왕권은 그 화로 앞의 서약으로 인정되었습니다(Hdt 4.59).
그들의 풍습은 거칠었어요. 전사는 자기가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셨고, 두피를 벗겨 말의 갈기에 매달고 다녔습니다. 가장 두려운 적의 두개골은 안쪽을 금으로 입혀 술잔으로 썼어요. 동맹을 맺을 때는 두 사람이 각자 피를 내어 포도주에 섞은 뒤 같은 잔으로 나눠 마셨습니다(Hdt 4.64, 4.70). 왕이 죽으면 시종과 말 수십이 함께 순장되었고, 그 행렬은 사십 일에 걸쳐 왕국 전역을 돌았어요(Hdt 4.71–72).
야만적으로 보이는 이 삶의 방식이, 사실은 가장 단단한 방패였습니다. 도시가 없으니 포위당할 것이 없었고, 농경지가 없으니 불태울 것이 없었어요. 정복자가 무너뜨릴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거예요. 헤로도토스는 바로 이 점에서 스키타이의 생활 방식이야말로 침략자에게 가장 어려운 적이라고 짚었습니다(Hdt 4.46).
매듭 60개에 걸린 운명
다리우스의 대군은 트라키아를 가로질러 도나우(Ister, Danube) 강에 닿았어요. 이오니아의 그리스 동맹국들이 육백 척의 함대를 몰고 와 강을 건너는 다리를 세웠습니다. 이때 뮈틸레네의 참주 코에스(Koes)가 왕에게 조용히 청했어요 — 만약 정해진 날까지 돌아오지 못하시면 저희가 다리를 거두어도 좋겠느냐고.
다리우스는 끈 하나를 받아 매듭 예순 개를 묶어 그리스 참주들에게 건넸습니다 — "매일 하나씩 풀라. 모든 매듭이 풀렸는데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함대를 거두고 고향으로 가라"(Hdt 4.97–98). 이 작은 매듭 끈이 원정 전체의 생사를 쥐게 되리라는 걸, 그땐 아무도 몰랐어요.
도나우 너머에서 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키타이의 수석 왕 이단티르수스(Idanthyrsus)는 정면 대결을 철저히 피했어요. 한 부대는 남쪽으로 페르시아 군을 유인했고, 본대는 북쪽으로 후퇴하며 지나는 길마다 우물을 메우고 풀밭에 불을 질렀습니다(Hdt 4.120–121, 129). 페르시아 군은 광활한 초원에서 물도 풀도 얻지 못한 채 적의 그림자만 쫓았어요. 그렇게 매듭이 하루하루 풀려 갔습니다.
선조의 무덤을 건드린다면
지쳐 가던 다리우스가 사절을 보냈어요 — "싸우려거든 나와서 싸우라. 두렵거든 흙과 물을 바쳐 항복하라."
사절이 며칠을 걸어 닿은 곳은 진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레 수십 대가 원을 그리며 서 있었고, 말들이 그 주위에서 풀을 뜯고 있었어요. 이단티르수스는 그 원의 한가운데 선 채 사절의 말을 들었습니다. 곁에는 다른 왕들이 조용히 서 있었고, 병사들의 손에는 이미 활이 들려 있었어요.
왕은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눈이 북쪽을 향했어요. 그곳 어딘가 초원 속에 스키타이 선왕들의 무덤이 있었거든요.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헤로도토스가 자기 책에서 가장 숭고하게 기록한 선언이 되었습니다 —
"우리에게는 도시도 농경지도 없다. 도시와 농경지를 빼앗길까 두려워 서둘러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무덤을 찾아내어 파괴하려 든다면, 그때 우리가 과연 싸우는지 아닌지 보게 될 것이다."
— Herodotus, Historiae 4.127
사절이 그 말을 받아 적고 돌아갔습니다. 빼앗길 것이 없는 자에게 협박은 통하지 않았어요. 단 하나, 죽은 자들이 잠든 땅만이 그들을 멈춰 세울 수 있었습니다.
말 없는 수수께끼와 두 갈래 해석
며칠 뒤 스키타이 전령 하나가 페르시아 진영에 도착했어요. 그는 말 한 마리와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외국 왕 앞에 절하는 법이 없던 그는 관례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가방을 열어 왕 앞 땅 위에 네 가지를 하나씩 내려놓았어요 — 날개가 묶인 작은 새 한 마리, 회색 쥐 한 마리, 강가의 개구리 한 마리, 그리고 짧은 활에 맞는 화살 다섯 대.
전령은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돌아서 말에 올라 지평선으로 사라졌습니다. 왕이 귀족들을 돌아보았어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풀이했어요 — "스키타이가 하늘(새)과 땅(쥐)과 강(개구리)을 내게 바치고, 무기(화살)까지 내려놓았다. 항복이다."
귀족들이 따라 웃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웃지 않았어요. 일찍이 어둠 속에서 가짜 왕을 잡아낸 일곱 음모의 공신, 페르시아 귀족 고브리아스(Gobryas)가 고개를 저으며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
"페르시아인이여, 그대가 새처럼 하늘로 날거나 쥐처럼 땅 밑으로 숨거나 개구리처럼 호수로 뛰어들지 못한다면, 그대는 이 화살들에 맞아 죽게 될 것이다."
— Herodotus, Historiae 4.132
왕의 웃음이 사라졌어요. 같은 네 가지 물건이 항복의 선물이 아니라 죽음의 경고였던 겁니다. 식량은 바닥났고 병사들은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그 밤 다리우스는 명령을 내렸어요 — 부상자와 약자는 야영지에 남기고 그 주위로 횃불을 피워 둔다, 나귀들을 묶어 두었다가 한밤에 풀어 그 울음소리로 진영이 그대로 있는 척 꾸민다, 그리고 주력은 소리 없이 남쪽으로 빠진다(Hdt 4.135). 새벽이 되자 스키타이는 빈 진영에서 횃불과 나귀와 버려진 사람들만을 발견했습니다. 왕은 이미 도나우를 향하고 있었어요.
다리 위에서 갈라진 두 사람의 길
도나우 다리 앞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스키타이 사절이 먼저 그리스 함대에 닿아 참주들에게 속삭였습니다 — "다리를 부수시오. 페르시아 왕이 돌아오지 못하게 하시오. 지금이 그리스의 자유를 되찾을 때요."
케르소네소스의 참주 밀티아데스(Miltiades)가 찬성했어요. 자유가 이렇게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밀레투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Histiaios)가 막아섰어요. 그의 논리는 솔직했습니다 — "우리가 저마다 도시의 참주로 있는 건 다리우스가 우리를 받쳐 주기 때문이오. 페르시아 권력이 무너지면 우리는 다 쫓겨나오. 민주정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Hdt 4.137). 자기 이익을 숨김없이 드러낸 이 논변에 다른 참주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리는 유지되었고, 스키타이 사절은 거짓 약속만 받고 돌아갔어요.
다리우스는 무사히 도나우를 건너 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정의 성과는 없었어요. 초원은 그를 삼키지도, 굴복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지나가게 했을 뿐이에요. 키루스가 마사게타이 앞에서 멈췄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리우스도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북방의 경계가 또 한 번 페르시아 제국의 한계를 그어 보인 거예요.
빼앗길 것 없는 자의 자유
다리우스는 몰랐지만, 도나우 다리에서 갈라진 두 사람의 길은 훗날 이 제국의 두 결정적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다리 보존에 찬성했던 히스티아이오스는 십 년 뒤 수사의 궁정에서 이오니아 반란의 불씨를 댕기게 되고, 다리 파괴를 주장했던 밀티아데스는 이십 년 뒤 아테네 근교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 군을 막아서는 지휘관이 됩니다. 한 다리 위의 짧은 논쟁이 페르시아 전쟁의 두 막을 미리 써 둔 셈이에요.
이 이야기에는 헤로도토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무늬가 숨어 있어요. 키루스는 북방의 마사게타이 앞에서 죽었고, 다리우스는 북방의 스키타이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수백만 군대를 이끌고 서쪽 그리스로 향하지만 같은 운명을 맞아요. 동쪽에서 끝없이 팽창하던 제국이 북방과 서방의 경계에서 거듭 무릎을 꺾는 이 도식은, 가진 것이 많아 지킬 것도 많은 자와 빼앗길 것이 없어 두려울 것도 없는 자의 대결이었습니다.
성벽 하나 없던 유목민이 70만 대군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이 사건은, 자유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매이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 줘요. 다리우스의 등 뒤로 초원이 닫혔습니다. 그리고 헤로도토스는 이 권의 시선을 북쪽 초원에서 남쪽 리비아 해안으로 돌려, 이번엔 전혀 다른 종류의 '지나침'이 무엇을 부르는지 보여 주려 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 페레티메의 복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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