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역사』(Historiae) 제4권을 거대한 제국이 북쪽 초원 앞에 무릎을 꿇는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다리우스(Darius)는 스키타이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이 권을 그 실패로 닫지 않아요.
그는 시선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리비아의 해안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지나침'이 무엇을 낳는지 보여 줘요. 한 여왕이 아들의 원수를 한 명도 빠짐없이 갚는 이야기, 그리고 그 완벽한 복수 끝에 그녀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결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욕망이 멈출 곳을 모를 때 인간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에 관한 기록이에요.
말더듬이 청년에게 내린 신탁
이야기는 한 여왕보다 백 년 넘게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기원전 630년경, 테라 섬의 궁정에 바투스(Battus)라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어, 한 마디를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같은 소리를 반복했어요. 아버지는 그를 부끄러워했고, 청년이 되자 델포이로 보내 치유의 신탁을 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전의 무녀 피티아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어요 — "네 말더듬을 물었느냐? 아폴론께서 너를 리비아로 보내 식민지를 세우라 하신다"(Hdt 4.155). 바투스는 당황했습니다. 말을 고치러 왔지 먼 땅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거든요. 그는 신탁을 묵살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나 그 뒤 테라에는 칠 년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우물이 말랐어요. 다시 보낸 사절에게 피티아는 똑같은 명령을 반복했고, 결국 섬의 원로들은 바투스에게 배 두 척을 내주었습니다. 그는 뽑힌 동포 청년들과 남쪽으로 항해했어요.
처음 정착한 작은 섬에서 이 년이 지나도 가난을 벗지 못하자 그들은 또 델포이에 물었습니다. 피티아가 답했어요 — "너희는 아직 리비아 본토를 밟지 않았다"(Hdt 4.157). 그들이 본토로 건너가 세운 도시가 키레네(Cyrene)였습니다. 바투스는 초대 왕이 되었어요. 놀랍게도 리비아 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습니다. 신이 준 것은 혀의 치유가 아니라, 목소리를 낼 땅이었던 거예요(Hdt 4.155).
왕조의 절정과 한 번의 암살
바투스의 후손들은 키레네를 다섯 대에 걸쳐 다스렸어요. 절정은 바투스 3세 시대였습니다. 도시는 부유해졌어요. 리비아 고원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 실피움(silphium)이 이집트와 그리스 세계 전체로 수출되었고, 도시의 금고에는 은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여섯 번째 왕 아르케실라오스 3세(Arcesilaus III)에 이르러 왕조에 균열이 갔어요. 이 왕은 폭정으로 기울었습니다. 반대파 지도자들을 도시에서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어요. 앙심을 품은 귀족 무리가 침묵 속에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르케실라오스 3세가 자매 도시 바르카(Barca)로 여행을 갔을 때, 정적들이 그와 그의 장인을 한꺼번에 살해했어요(Hdt 4.164).
이 살해당한 왕의 어머니 이름이, 페레티메(Pheretime)였습니다.
상복을 벗지 않은 채 군대를 청하다
페레티메는 이미 한 번 망명을 겪은 여인이었어요. 이전 왕위 다툼에서 아들과 함께 키프로스로 피신해 살다가, 아들이 왕위를 되찾자 키레네로 돌아와 왕의 어머니로서 궁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아들이 바르카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닿았을 때, 그녀는 이미 중년을 지난 나이였어요. 그날부터 그녀의 얼굴은 굳어졌고, 그 표정은 이후 몇 년간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냉정하게 판단했어요. 키레네 안에는 자기를 도울 세력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도시 자체가 반란자들에게 기울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리비아를 떠나 이집트로 갔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던 페르시아 사트라프 아리안데스(Aryandes)를 찾아가, 상복을 벗지도 않은 채 알현을 청했어요 —
"사트라프여, 내 아들은 페르시아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다리우스께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의 피가 길 위에 쏟아졌습니다. 그 피를 갚아 주십시오. 당신의 군대를 빌려 주십시오."
— Herodotus, Historiae 4.165
아리안데스는 망설였지만, 이 청은 페르시아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졌어요. 리비아 해안에 페르시아의 발자국을 남길 기회였거든요. 그는 육군과 해군 한 부대씩을 편성해 남쪽으로 내려보냈습니다. 키레네는 페레티메 편이었기에 군대는 저항 없이 통과했고, 곧 바르카를 포위했어요.
해자는 그대로였지만, 바닥은 사라졌다
바르카의 성벽은 단단했어요. 포위는 아홉 달을 끌었습니다. 수비대는 몇 번의 출격으로 페르시아 병사들을 쓰러뜨렸고, 페르시아 측이 성벽 아래로 갱도를 파자 바르카의 한 대장장이가 놋쇠 방패를 땅에 대고 진동을 들어 갱도의 위치를 찾아냈어요. 그는 역갱도를 파게 해 페르시아의 시도를 번번이 무력화했습니다(Hdt 4.200). 포위는 교착에 빠졌어요.
결국 페르시아는 속임수를 썼습니다. 그들은 협상을 제안했어요 — 다리우스에게 조공만 바치면 자치를 유지하게 해 주겠다는 거였습니다. 협정은 성문 바깥에 넓게 판 해자 위에서 맺어졌어요. 양측 사절이 해자 위에 널빤지를 걸쳐 놓고 그 위에서 맹세했습니다 — "이 해자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이 협정은 유효하다"(Hdt 4.201).
그날 밤, 페르시아는 해자를 흙으로 메웠어요. 그 위에 널빤지를 덮고, 다시 흙을 얇게 깔아 두었습니다. 아침에 바르카 주민들은 해자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눈으로 보았어요 — 마치 맹세가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요. 안심한 그들이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페르시아 군대가 즉시 도시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바르카는 함락되었어요(Hdt 4.201). 맹세는 말에서만 지켜졌습니다. 해자는 그대로 있었으나, 그 바닥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어요.
멈출 줄 모른 복수
페레티메가 바르카에 도착했을 때, 페르시아 병사들은 이미 도시의 주요 인물들을 가려내 모아 두고 있었어요. 그녀는 그 무리 앞을 한 명 한 명 지나가며 아들의 살해자들을 손가락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녀의 복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그녀는 지목된 자들을 성벽 위에 매달아 처형하게 했고, 그들의 아내들까지 모두 찾아내어 잔혹하게 훼손한 뒤 시신을 성벽 위에 늘어놓게 했습니다. 죽은 남편들 바로 곁에 말이에요(Hdt 4.202). 원수에 대한 응징을 넘어, 살아남은 가족들에게까지 향한 복수였어요.
헤로도토스는 이 장면을 적은 뒤, 이 권 전체에서 아껴 두었던 단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
"페레티메는 자기 복수를 만족스럽게 본 뒤 이집트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몸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구더기에 먹혔다. 신들은 인간의 복수가 지나치게 되었을 때 그것을 혐오한다."
— Herodotus, Historiae 4.205
헤로도토스는 평소 이런 직접적인 도덕 논평을 좀처럼 하지 않아요. 그가 "신의 혐오"를 명시적으로 입에 올리는 곳은 그의 책 전체에서 손에 꼽을 만큼 드뭅니다. 그런 그가, 이 결말을 권 전체의 종결로 삼은 거예요.
지나친 것은 자기 자신을 먹는다
헤로도토스가 제4권을 이렇게 마무리한 데는 정교한 짜임이 있어요. 권의 첫머리에서 다리우스는 스키타이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북쪽 초원은 그의 군대를 삼키지도,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그저 지나가게 했을 뿐이에요. 제국이 그 거대한 욕망으로도 끝내 적을 집어삼키지 못한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권의 끝, 남쪽 해안의 이 여왕은 정반대의 실패를 보여 줘요. 그녀는 원하던 것을 전부 얻었고, 그 이상까지 취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제국이 손에 넣지 못해 좌절했다면, 남쪽에서는 한 개인이 복수의 깊이를 멈추지 못해 스스로 무너진 거예요. 모자람과 지나침, 양 끝에서 헤로도토스는 같은 진실을 비춥니다 — 인간의 지나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먹는다는 것을요.
전쟁이 끝난 뒤 바르카는 페르시아 이민자들의 정착지로 재건되었고, 한 도시는 사실상 페르시아령이 되었습니다. 키레네의 왕조는 이어졌지만 바투스의 혈통은 점차 흐려졌어요.
제4권의 마지막 음절은 구더기예요. 그 음절은 다음 권으로, 그리고 더 멀리 크세르크세스가 수백만 군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토스를 건너는 장면으로 길게 울려 퍼집니다. 헤로도토스의 독자는 그 거대한 원정의 행렬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이 한 여왕의 죽음이 남긴 긴 여운을 듣고 있어요 — 멈출 곳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절제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 이야기는 헤로도토스가 그리는 페르시아 전쟁의 본막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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