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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금고를 턴 도적이 왕의 사위가 되기까지 —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피라미드 시대의 전설

어느 해, 이집트의 사제들이 헤로도토스(Herodotus) 앞에 파피루스 한 장을 펼쳤어요. 그 위에는 무려 341명의 왕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간 왕 미네스(Min)부터 그때까지, 이집트가 기억하는 모든 임금의 계보였어요.

2026년 5월 30일 헤로도토스 『역사』 읽기 조회 1

어느 해, 이집트의 사제들이 헤로도토스(Herodotus) 앞에 파피루스 한 장을 펼쳤어요. 그 위에는 무려 341명의 왕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간 왕 미네스(Min)부터 그때까지, 이집트가 기억하는 모든 임금의 계보였어요.

사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긴 줄 가운데 신이었던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인간에서 나와 인간으로 죽었습니다"(Hdt 2.100). 헤로도토스는 그 목록을 멍하니 바라봤어요. 그리스의 왕가는 대개 열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신에 닿았거든요. 그런데 이집트는 인간의 역사를 인간의 길이로 재고 있었습니다. 그 긴 목록의 몇몇 이름 곁에 사제들이 남겨 둔 이야기 — 보물을 지킨 왕, 딸을 팔아 돌을 쌓은 왕, 자기 손으로 사람을 물에 빠뜨린 여왕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볼게요.

사라지지 않는 보물 — 도적 형제의 침입

람프시니토스(Rhampsinitus)라는 왕이 있었어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많은 보물을 모은 왕이었습니다. 은이 산더미처럼 쌓이자, 그는 궁의 벽 안쪽에 튼튼한 석조 금고를 짓게 했어요.

그런데 공사를 맡은 석공이 교묘한 장치를 숨겨 두었습니다. 벽 한 부분에,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들어낼 수 있는 돌 하나를 끼워 넣은 거예요.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표가 나지 않았죠. 석공은 죽기 직전, 두 아들에게만 그 돌의 위치를 알려 줬습니다(Hdt 2.121).

두 형제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밤을 기다렸어요. 벽을 더듬어 돌을 빼내고 금고로 들어가, 은과 금을 들고 나올 수 있는 만큼만 챙긴 뒤 돌을 제자리에 맞췄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이 일은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왕은 보물이 줄어드는 걸 알아챘지만, 문은 잠겨 있고 봉인도 멀쩡했어요. 그는 장인에게 명해 보물 더미 주위에 짐승 잡는 덫을 설치하게 했습니다.

머리 없는 시체 — 형제의 선택

다음 밤, 형이 먼저 돌을 빼고 들어갔어요. 어둠 속에서 덫을 보지 못한 그의 발목을 쇠이빨이 물었습니다. 그는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어요. 밖에는 경비병이 있었으니까요.

뒤따라 들어온 동생에게 형이 말했습니다 —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낼 것이다. 그러면 너와 어머니도 파멸한다. 내 머리를 잘라 가져가라. 얼굴이 사라지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 Herodotus, Historiae 2.121

동생은 잠시 망설였어요. 하지만 형의 논리는 깰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형의 목을 쳐서 머리를 품에 안고, 돌을 다시 맞춘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아침에 금고를 연 왕은 머리 없는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봉인은 무사했고, 벽은 어디도 뚫리지 않았어요. 들어올 수 없는 방에 시체가 머리도 없이 누워 있었던 거죠. 왕은 놀라움 너머의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포도주에 잠든 경비병들

왕은 기묘한 함정을 다시 폈어요. 머리 없는 시체를 성벽에 매달고 경비병을 세운 뒤, "이 시체 앞에서 통곡하거나 슬퍼하는 자가 있으면 붙잡아 오라"고 명령했습니다(Hdt 2.121). 시체를 거두려는 가족이 반드시 나타나리라 본 거예요.

아들의 시체를 알아본 어머니는 남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 "네 형이 저렇게 걸려 있는 한 나는 살 수 없다. 내려다오." 동생은 또 한 번 계책을 꾸몄어요.

그는 당나귀 여러 마리에 포도주 가죽 부대를 싣고 경비병들이 있는 길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슬쩍 부대 몇 개의 매듭을 풀었어요. 포도주가 길 위로 쏟아지자, 그는 큰 소리로 탄식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달려온 경비병들이 흘러나오는 술을 손으로 받아 마셨어요. 동생은 한탄을 이어 가며 사과의 표시로 부대 하나를 통째로 건넸고, 경비병들은 그것마저 나눠 마셨습니다. 밤이 깊자 그들은 벽에 기대 모두 잠들어 버렸어요.

동생은 시체를 내려 당나귀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잠든 경비병들의 오른쪽 뺨만 일부러 면도해 두었어요 — 그들이 무심하게 곯아떨어졌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작은 조롱이었죠. 형의 시체는 마침내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왕의 마지막 시험 — 그리고 사위가 된 도적

다음 날 보고를 받은 왕은 분노와 감탄 사이에서 흔들렸어요. "이 도적을 꼭 붙잡고 싶다." 그가 세운 마지막 시험은, 헤로도토스마저 "이집트인들이 한 말이지만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고 적어 둔 대목입니다(Hdt 2.121).

왕은 자기 딸을 시켜, 찾아오는 남자마다 평생 가장 영리했던 일과 가장 악독했던 일을 고백하게 했어요. 그러다 "형의 목을 잘라 가지고 나오고, 경비병들을 취하게 해 시체를 훔쳤다"고 말하는 자가 있거든 즉시 붙잡으라고 지시했죠.

도적은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의 팔 하나를 옷 속에 숨기고 찾아갔어요. 왕의 딸이 묻자 그는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했습니다 — "이것이 나의 가장 악독하고도 영리한 행위다." 딸이 즉시 어둠 속에서 그의 팔을 붙잡았어요. 그러나 그녀의 손에 잡힌 건 죽은 사람의 차가운 팔이었습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등불을 켰을 때, 도적은 이미 사라진 뒤였어요.

왕은 결국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사자를 보내 "내 궁으로 나오라, 네게 내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도적은 두려움 없이 나타났고, 왕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집트인은 다른 민족보다 영리하다. 그러나 이 자는 이집트인 가운데서도 가장 영리하다" — 왕이 남겼다는 말이에요(Hdt 2.121). 재무관의 금고를 턴 도적은 그렇게 왕의 사위가 되어 여생을 궁에서 보냈습니다.

신전을 닫은 폭군, 신전을 연 왕

람프시니토스의 뒤를 이은 왕은 쿠푸(Cheops)였어요. 사제들의 이야기는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이 왕은 이집트를 온갖 재앙으로 밀어 넣었어요.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했으며, 백성을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한 번에 십만 명이 석 달씩 교대로 부역했고, 이 일이 십 년이나 이어졌어요.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피라미드 본체 공사가 시작돼 다시 이십 년이 걸렸습니다(Hdt 2.124-126). 자금이 바닥나자 쿠푸는 자기 친딸까지 팔아 돈을 받아오게 했다고 해요. 딸은 손님 한 명에게 돌 하나씩을 따로 요구해, 그 돌들로 자기만의 작은 피라미드를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일화에 아무 논평도 붙이지 않아요. 그저 기록할 뿐입니다.

쿠푸의 동생 카프레(Chephren)도 같은 길을 갔어요. 형제가 합쳐 106년 동안 이집트의 모든 신전을 닫아걸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두 왕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 피라미드를 한 목자의 이름인 '필리티스(Philition)'로 부른다고 사제는 덧붙였어요(Hdt 2.128).

세 번째 피라미드의 주인 멘카우레(Mycerinus)는 정반대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닫은 신전을 모두 다시 열고, 백성에게 제사를 허락했어요. 재판에서 자기 판결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면 왕실 재물로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관습까지 세웠습니다. 사제들은 그를 그리워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가혹한 신탁이 내렸습니다 — "너는 이제 육 년밖에 살지 못한다." 왕이 항의했어요. "신전을 닫고 백성을 종처럼 부린 아버지와 숙부는 백 년을 넘게 살았는데, 신전을 열고 자비를 베푼 나는 왜 죽는가?" 신탁의 답은 서늘했습니다 — "바로 그것이 네 죄다. 이집트는 백오십 년 동안 고통받게 되어 있었는데, 너는 그 시간을 단축시켰다"(Hdt 2.133).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여긴 왕은 등불을 사방에 밝히고 밤마다 잔치를 벌였어요. 밤을 낮으로 바꿔 육 년을 십이 년처럼 두 배로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길이로 잰 역사 — 이야기가 남긴 것

이 긴 왕들의 줄 가운데 헤로도토스가 특히 주목한 한 여성이 있었어요 — 니토크리스(Nitocris)입니다(Hdt 2.100). 그녀는 왕이던 오빠가 살해당한 뒤 왕위를 물려받았고, 복수를 준비했어요.

그녀는 지하에 거대한 연회장을 짓게 한 뒤, 오빠를 죽인 자들을 모두 그곳으로 초대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흥이 한창 오를 무렵, 그녀는 비밀 수로로 나일강 물을 흘려보냈어요. 물이 방을 가득 채웠고, 그녀는 출구를 봉쇄했습니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복수를 마친 그녀는 백성의 보복을 피하려 재와 뜨거운 연기가 가득한 방에서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집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모든 이야기에 거의 논평하지 않아요. 그가 정작 기록한 건 한 문명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였습니다. 341명의 왕 가운데 단 한 명도 신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모두 인간이었고, 영리했거나 잔인했거나 자비로웠습니다.

사제가 파피루스를 다시 말아 보관함에 넣을 때, 헤로도토스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의 다음 권 서두에서는 한 페르시아 왕이 이집트로 들어와, 앞 편에서 만난 그 성스러운 아피스 황소를 칼로 찌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예요. 하지만 그 장면이 그토록 무겁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 긴 인간 왕들의 목록이 먼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세상 끝까지 정복했다는 한 전설의 왕과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돈 배의 이야기는 다음 편 세소스트리스의 세계와 네코스의 운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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