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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년 전과 같은 날에 불탄 성전 — 요세푸스가 기록한 제2성전의 최후

역사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날짜에 두 번 반복되는 일은 드묻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첫 번째 성전이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바빌론에 불탄 그 날, 657년 뒤 두 번째 성전도 똑같이 불에 타 무너졌습니다. 요세푸스...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읽기 조회 1

역사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날짜에 두 번 반복되는 일은 드묻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첫 번째 성전이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바빌론에 불탄 그 날, 657년 뒤 두 번째 성전도 똑같이 불에 타 무너졌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이 날짜의 일치를 특별히 기록하며 "역사는 스스로를 반복한다, 그것도 같은 날에"라고 놀라워합니다(BJ 6.§250, §267-268).

그가 쓴 『유대전쟁사』(Bellum Judaicum) 6권은 AD 70년 여름, 예루살렘 포위전의 마지막 국면을 다룹니다. 안토니아 요새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고, 도시가 함락되기까지의 몇 주입니다. 요세푸스는 이 모든 걸 로마 진영에서 직접 지켜본 목격자였습니다. 그래서 6권은 슬픔과 죄책감과 경외가 뒤섞인, 그의 책에서 가장 무거운 장(章)이 됩니다.

안토니아가 무너지고, 성전이 전장이 되다

7월 중순, 안토니아 요새가 함락됐습니다. 로마군은 요새를 완전히 허물어 성전 북벽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성전 자체가 전장이 된 것입니다. 티투스는 공격과 협상을 번갈아 시도했습니다. 그는 요세푸스를 다시 성벽 앞으로 보내 히브리어로 외치게 합니다 —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너희의 편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서 로마로 건너가지 않았다 — 하나님 자신이 먼저 건너가셨다"(BJ 6.§93-110).

하지만 요한 기스칼라와 시몬 바르 기오라는 이 연설을 듣고 오히려 저항을 강화했습니다. 포기하려던 자들은 열심당에게 발각돼 도시 안에서 처형됐습니다. 항복의 길은 안에서부터 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호소는 5권에 이어 또 한 번 돌과 침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기근의 극한, 한 어머니의 이야기

기근의 참상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 가운데 한 여인의 이야기를 "여러 세대의 귀에 전해져야 할 일"로 기록합니다(BJ 6.§201-213). 페레아 출신의 부유한 여인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피난 와 있었는데, 열심당이 그녀의 재산과 식량을 모두 약탈해 갔습니다. 굶주림에 절망한 마리아는 결국 젖먹이 아들에게 손을 댔습니다 —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어머니가 자식을 잡아먹은 사건이었습니다.

냄새를 맡고 들이닥친 열심당원들이 음식을 요구하자, 마리아는 남은 것을 꺼내 보이며 "먹어라, 나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악한 열심당원들조차 물러났습니다. 이 이야기가 로마 진영에 전해지자 티투스는 "이런 일을 일으킨 태양이 부끄러워 비치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이 도시를 지상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맹세했다고 요세푸스는 적습니다. 끔찍한 일화지만, 이는 약 650년 전 예언자들이 포위된 예루살렘을 두고 경고했던 저주의 말들과도 소름 끼치게 겹칩니다(레위기 26:29, 신명기 28:53, 예레미야애가 4:10).

무명의 병사가 던진 횃불

요세푸스에 따르면 티투스는 진정으로 성전을 보존하려 했습니다(BJ 6.§236-243). AD 70년 아브월 8일, 그는 참모 회의를 소집해 성전의 운명을 논의합니다. 일부 장군은 "저항의 근거지가 되니 파괴하라"고 했고, 다른 이는 "건물이 아니라 점거자들이 죄이니 점령만 하자"고 했습니다. 티투스 자신은 "전쟁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하는 것이다. 이 신전은 로마 제국의 장식이 될 것이다"라며 보존을 명령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합니다. (다만 후대 타키투스는 Hist. 5.13에서 오히려 티투스가 파괴를 명했다고 기록해, 두 사료가 정면으로 엇갈립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도 학계 논쟁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전투의 혼란 속에서 한 무명의 로마 병사가 — 요세푸스는 "신적 충동에 사로잡힌 듯이"라고 표현합니다(BJ 6.§252) — 동료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성전 북쪽 방의 작은 황금 창문에 횃불을 던져 넣었습니다. 불길은 성소 내부의 마른 나무와 휘장과 기름에 붙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티투스가 진화를 명하며 직접 뛰어들어 군단 깃발로 병사들을 제지했지만, 함성과 불의 굉음 속에서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BJ 6.§254-266). 한 사람의 충동, 한 자루의 횃불. 거대한 성전의 운명이 그렇게 한순간에 결정됐습니다.

땅과 하늘에 가득한 함성

성전이 타올랐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장면을 통렬하게 기록합니다 — "멀리서 보면 성전 산 전체가 불타는 것 같았고… 성전 계단에서 울려퍼진 함성은 예루살렘 전 지역에서 들렸고, 페레아 산까지 메아리쳤다. 정녕 그 날 하나님의 집이 멸망한 것을 듣는 귀는 땅과 하늘에 가득했다"(BJ 6.§271-275).

로마 군단병들은 자신들의 군기(아퀼라)를 성전 동쪽 문 맞은편에 세우고, 그 앞에서 제물을 바치며 티투스를 '임페라토르'로 환호했습니다(BJ 6.§316). 유대인의 하나님의 집에서 이방의 깃발 앞에 이방의 제사가 드려진 겁니다. 성전의 금이 불에 녹아 돌 틈으로 흘러들자, 병사들은 그 금을 캐내려고 성전의 돌을 하나하나 뒤집어 엎었습니다. "돌 위에 돌이 남지 않으리라"던 예언이, 신앙이 아니라 우연한 탐욕에 의해 문자 그대로 이뤄진 순간이었습니다.

두 지도자의 최후와 110만의 죽음

성전이 무너진 뒤에도 도시는 한 달 더 버텼습니다. 요한 기스칼라는 상부 도시에서 며칠 저항하다 지하 터널로 도주를 시도했으나, 굶주림에 지쳐 항복했습니다. 티투스는 그에게 종신 투옥을 선고했습니다(BJ 6.§433-434). 시몬 바르 기오라는 헤롯 궁에서 9월 초까지 마지막까지 버텼습니다. 로마군이 남은 성벽을 돌파하자, 그는 흰 튜닉과 보라색 망토를 입고 성전 터의 지하 통로에 숨어 있다가 —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듯 — 극적으로 땅에서 솟아올라 로마 병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곧 체포돼 훗날 로마 개선식에서 처형될 운명을 맞습니다(BJ 7.§26-36).

요세푸스는 포위전 동안 약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합니다(BJ 6.§420-421). 유월절 때문에 도시에 모여든 순례자가 많아 사상자가 폭증한 것입니다. 그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다른 도시라면 자랑할 만했을 성벽과 탑들 가운데, 오직 세 개의 헤롯 탑만이 티투스의 명령으로 남았습니다 — 로마가 얼마나 강한 도시를 무너뜨렸는지 후세가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BJ 7.§1-3). 나머지는 완전히 파괴됐고, 성전은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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