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아그립바 1세가 죽은 뒤, 유대는 다시 로마 총독의 직할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총독들은 하나같이 더 무능하거나 더 탐욕스러웠습니다. 그 사이 사회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편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입니다 — 친구와 원수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든 공포. 축제 군중 속에 단검을 숨긴 암살단 '시카리', 모세의 기적을 흉내 낸 거짓 예언자들, 그리고 자기 죄가 드러날까 봐 일부러 반란을 부추긴 마지막 총독. 유대가 어떻게 전쟁 직전까지 내몰렸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아버지의 반란이 자식에게 돌아오다
아그립바 1세가 죽은 뒤, 총독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총독의 질은 갈수록 악화됐습니다. 파두스와 티베리우스 알렉산더는 비교적 무난했습니다 — 후자는 유대인 출신이지만 신앙을 떠난 인물로, 갈릴리인 유다의 두 아들 야곱과 시몬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BJ 2.§220). 아버지의 반란 유산이 자식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쿠마누스 시기부터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유월절에 한 로마 병사가 성전 주랑 위에서 순례자들을 향해 모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BJ 2.§224). 분노한 군중이 돌을 던지고 병사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쿠마누스가 군대를 동원하자 군중이 패닉에 빠져 좁은 성전 출구로 밀려나가다 서로 짓밟혔고, 약 2만 명이 죽었습니다(BJ 2.§227 — 요세푸스는 3만이라 기록하나 학자들은 과장으로 봅니다). 유월절이 애도의 날로 변했습니다.
단검파, 시카리의 등장
펠릭스 시대에 시카리가 등장했습니다. '단검파'라는 뜻의 이 암살 집단은 축제 군중 속에 섞여 짧은 곡선 칼(시카)을 옷 속에 숨겼다가, 친로마 유대인을 찔러 죽이고 비명 소리 속에 사라졌습니다. 첫 희생자가 대제사장 요나단이었습니다 — 요세푸스에 따르면 펠릭스 총독 자신이 요나단의 간섭에 지쳐 시카리를 사주해 암살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BJ 2.§256).
이후 시카리의 암살은 매일의 일이 됐습니다. 요세푸스는 기록합니다. "이 공포는 전쟁보다 더 끔찍했다 — 친구와 원수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의심했다"(BJ 2.§256-257).
칼 대신 속임수로 — 거짓 예언자들
거짓 예언자들이 모세의 기적을 재현하겠다며 군중을 이끌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들은 "시카리보다 덜 악독하지 않았다 — 칼 대신 속임수로 백성을 파괴했다"(BJ 2.§258-260). '이집트인'이라 불리는 예언자가 3만 명을 올리브산에 모아 "내가 명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 선언했습니다(BJ 2.§261-263). 펠릭스가 군대를 보내 진압했으나, 이집트인 자신은 도주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인물은 사도행전 21:38에도 등장합니다. 바울이 체포될 때 로마 천부장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그 애굽인이 아니냐"고 묻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알비누스를 성인처럼 보이게 한 총독
페스투스 총독은 비교적 공정했으나 짧은 재임 중 사망했습니다. 이어 알비누스가 부임했는데, 그는 노골적으로 뇌물을 받았습니다 — "감옥에 들어간 강도라도 친척이 돈을 내면 풀려났다"(BJ 2.§273).
마지막 총독 플로루스는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웠습니다. 요세푸스는 "게시우스 플로루스는 알비누스를 성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비교합니다(BJ 2.§277). 알비누스가 은밀히 훔쳤다면, 플로루스는 공개적으로 약탈했습니다.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전 지방을 황폐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요세푸스는 "플로루스는 유대인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까 봐 오히려 반란을 유도했다"고 비난합니다(BJ 2.§283).
플로루스는 성전 보물 17탈란트를 약탈했고(BJ 2.§293), 항의하는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기사 계급의 유대인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BJ 2.§308), 이것은 로마법 자체를 위반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은 십자가형을 받지 않는 것이 공화정 이래의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돌만 날아온 아그립바 2세의 연설
이 학살 소식이 퍼지자 아그립바 2세와 누이 베르니케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아그립바 2세가 크세스토스의 집 지붕에 서서 긴 연설로 전쟁을 말리려 했습니다(BJ 2.§345-404). 요세푸스가 기록한 이 연설은 『유대전쟁사』에서 가장 긴 단일 연설로, 약 60절에 달합니다.
"로마에 맞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집트도, 마케도니아도, 갈리아도, 500개 도시를 가진 브리타니아도 로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 제국의 모든 속국을 하나씩 열거하며 저항의 무모함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돌뿐이었습니다. 아그립바와 베르니케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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