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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죽이고 아내를 처형한 왕 — 그런데 왜 역사는 헤롯을 '대왕'이라 부를까

헤롯 대왕은 신약에서는 폭군으로, 로마 세계에서는 거대한 건축과 정치 수완의 왕으로 기억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따라 권력, 공포, 업적이 함께 얽힌 인물을 읽습니다.

2026년 5월 30일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읽기 조회 2

헤롯 대왕은 신약성경을 펼치면 아주 어두운 인물로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하라 명한 그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그를 '대왕'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는 요세푸스의 서술 속에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1권은 그 답과 함께, 헤롯이라는 인물의 끔찍한 두 얼굴을 모두 보여줍니다 — 고대 세계 최고의 건축가이자,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차례로 죽인 의심에 찬 폭군. 그 모순으로 가득한 한 생애를 따라가 봅니다.

왕국을 잃고 왕관을 얻다

안티파테르가 독살당했습니다. 이두매인 말리쿠스가 헤롯의 아버지를 연회에서 독으로 죽인 것입니다. 카시우스의 허가를 받아 헤롯이 말리쿠스를 처형했습니다(BJ 1.§226-227). 그러나 더 큰 위기가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파르티아 제국이 유대를 침공했습니다. 파르티아 왕자 파코루스와 장군 바르자파르네스가 마지막 하스몬 왕자 안티고누스와 손잡고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 파르티아인은 헤롯의 형 파사엘과 늙은 힐카누스 2세를 유인해 체포했습니다. 파사엘은 포로가 된 것을 알자 벽에 머리를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적에게 고문당하기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BJ 1.§271). 힐카누스는 귀가 잘려 다시는 대제사장직에 오를 수 없게 됐습니다(BJ 1.§270). 『유대고대사』에서는 안티고누스가 직접 이빨로 힐카누스의 귀를 물어뜯었다고 기록하는데(AJ 14.§366), 『유대전쟁사』에서는 "귀가 잘렸다"고만 서술해 두 저작 사이에 디테일 차이가 있습니다.

헤롯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을 난공불락의 마사다 요새에 맡기고 — 어머니, 여동생 살로메, 약혼녀 마리암네와 그 가족을 — 사막을 가로질러 탈출했습니다. 나바테아에서 거절당하고, 이집트를 거쳐 겨울 바다를 건너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로마 원로원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나란히 헤롯을 지지했고, 원로원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선언했습니다(BJ 1.§282-285). 왕국을 잃은 자가 왕관을 쓴 것입니다 — 아직 그 왕국을 되찾기도 전입니다. 요세푸스는 헤롯이 원로원을 나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서서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BJ 1.§285).

마지막 하스몬 왕의 최후

3년의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헤롯은 마사다의 가족을 구출하고, 갈릴리에서 시작해 남하하며 거점을 장악했습니다. 기원전 37년, 로마 장군 소시우스의 군대와 합류해 예루살렘을 5개월간 포위한 끝에 함락시켰습니다(BJ 1.§343-352). 안티고누스가 끌려가 참수되었습니다. 마지막 하스몬 왕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이두매 출신 헤롯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위대한 건축가

헤롯은 위대한 건축가였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카이사레아 항구를 세웠는데, 요세푸스는 이 항구가 아테네의 피레우스에 필적한다고 묘사합니다(BJ 1.§408-414). 사마리아를 세바스테로 재건하고, 마사다에 난공불락의 궁전을 쌓았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보수해 고대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건축물로 만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성전 지붕의 황금이 눈을 멀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전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한 만큼 의심한 왕

헤롯은 하스몬 공주 마리암네 1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한 만큼 의심했습니다. 안토니우스에게 소환될 때마다 비밀 명령을 남겼습니다 — 자신이 죽으면 마리암네를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느니 (이 비밀 명령의 상세한 기술은 AJ 15.§65-87에 있고, BJ에서는 1.§441-443에서 간략히 언급됩니다). 누이 살로메가 끊임없이 모함을 더했습니다. 결국 헤롯은 마리암네를 반역 혐의로 처형했습니다(BJ 1.§443).

『유대고대사』에서 요세푸스는 마리암네의 최후를 더 상세히 기록합니다 — 죽음 앞에서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왕족의 고귀함이 마지막 순간까지 드러났다고 기록합니다(AJ 15.§232-236). 처형 직후 헤롯은 미칠 듯한 후회에 빠져 궁전을 헤매며 마리암네의 이름을 불렀고, 하인들에게 그녀를 불러오라고 명했습니다 — 마치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AJ 15.§240-241).

아들들마저 — "헤롯의 돼지가 낫다"

마리암네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도 아버지의 의심 속에 교살당했습니다. 이복형 안티파테르 3세가 이들을 끊임없이 모함했습니다. 베이루트에서 재판이 열렸고, 두 왕자는 세바스테에서 교살당했습니다(BJ 1.§551).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낫겠다." 그리스어로 아들(huios)과 돼지(hus)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나온 언어유희였고, 유대인은 돼지를 먹지 않으니 돼지는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안티파테르 3세도 결국 아버지를 독살하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했습니다.

기원전 4년, 헤롯의 병은 극심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상세한 증상을 기록합니다 — 온몸의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내장의 궤양, 발의 부종, 복부의 농양(BJ 1.§656). 병중에도 유대 학자들이 성전 정문 위의 황금 독수리(로마의 상징)를 밧줄로 끌어내려 도끼로 부수자, 헤롯은 관련자를 산 채로 화형에 처했습니다(BJ 1.§655).

유언장을 여러 차례 고친 끝에, 헤롯은 왕국을 세 아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안티파테르 처형 5일 후, 헤롯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BJ 1.§665). 독립을 위해 싸운 맛타티아스의 봉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의심과 살육으로 가문을 파멸시킨 한 왕의 죽음으로 1권의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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