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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가가 죽고 있는가 — 네로의 마지막 새벽

서기 68년 6월 8일 밤, 30세의 네로(Nero)가 팔라틴 궁전을 떠났어요. 며칠 전 원로원은 그를 "공공의 적"(hostis publicus)으로 선포했고, 스페인 총독 갈바(Galba)를 새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측근들은 대부분 이미 사라진 뒤였어요. 새벽 한 시, 해방노예 파온(Phaon)이 도착해 자기 별장으로...

2026년 5월 30일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읽기 조회 2

서기 68년 6월 8일 밤, 30세의 네로(Nero)가 팔라틴 궁전을 떠났어요. 며칠 전 원로원은 그를 "공공의 적"(hostis publicus)으로 선포했고, 스페인 총독 갈바(Galba)를 새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측근들은 대부분 이미 사라진 뒤였어요. 새벽 한 시, 해방노예 파온(Phaon)이 도착해 자기 별장으로 피신을 제안했고 — 일행 네 명이 망토를 뒤집어쓴 채 궁전 뒷문을 나섰습니다.

비아 노멘타나의 새벽

일행은 넷이었어요 — 파온(별장 주인·재정 비서), 에파프로디투스(Epaphroditus, 황제 서기·문서 담당), 스포루스(Sporus, 거세된 황제의 총신), 네오피투스(Neophytus, 또 다른 해방노예). 로마 동쪽 비아 노멘타나(Via Nomentana) 4마일 지점 별장을 향해 말을 달렸어요.

길가의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한 병사가 그들에게 경례를 했는데 — 네로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기병대 장교로 착각한 것이었어요(Suet. Ner. 48.1). 지나가는 시민이 "네로 추적대인가?" 외쳤어요. 그 새벽의 비아 노멘타나는 이미 네로의 것이 아니었고 — 황제 자신이 자기 제국의 외부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별장 가까이에 도착해 말발굽 소리를 숨기기 위해 도보로 걸었어요. 덤불과 갈대밭을 지나야 했고, 네로는 맨발로 가시 덤불을 밟았습니다(Suet. Ner. 48.3). 담을 직접 넘을 수 없어 일꾼들이 쓰던 하수 배출구 작은 구멍을 찾아 기어 들어갔어요. 한때 개선식에서 금마차를 탔던 황제가 하수구를 기어서 별장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네로의 정제수로다"

별장 안에서 낡은 담요 위에 누운 네로는 배고픔과 갈증을 호소했어요. 빵을 청했으나 너무 거칠어 먹지 못했고, 식수가 없자 마당 연못에서 손으로 물을 퍼 올려 마셨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서 그가 한 마디 던졌어요 — "haec est Neronis decocta"(이것이 네로의 정제수로다, Suet. Ner. 48.3).

그는 평소 궁전에서 얼음으로 차게 식힌 뒤 걸러낸 물을 마셨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불렀었어요. 마당 연못의 흙탕물을 그 이름으로 부른 것이 — 그 새벽의 유일한 농담이자 자기 인식의 마지막 연출이었습니다. 상황의 역설을 극화하는 능력이 죽음 앞에서도 작동하고 있었어요.

이어서 그는 별장 측근들에게 자기 무덤을 팔 구덩이를 준비하라 지시했어요(Suet. Ner. 49.1). 대리석 조각을 가져와 자신의 치수를 재게 했고, 화장 준비를 생전에 스스로 감독했습니다.

"어떤 예술가가 죽고 있는가"

구덩이 앞에 앉아 한숨을 내쉬던 네로가 자신에게 말하듯 반복했어요 — "qualis artifex pereo"(어떤 예술가가 죽고 있는가, Suet. Ner. 49.1). 카시우스 디오의 그리스어 판본은 "οἷος τεχνίτης ἀπόλλυμαι"(Dio 63.29)로 전합니다. 두 판본 모두 artifex(예술가·장인)에 무게를 두어요.

그의 자기 규정이 princeps(원수)도, Augustus(존엄자)도 아니라 — 예술가였다는 것입니다. 재위 13년 7개월 동안 그가 했던 그리스 순회 17개월(AD 66-68), 판헬레닉 4대 경기에서 받은 1,808개 화관(Suet. Ner. 24.2), 오레스테스·오이디푸스·카나케 역할 연기, 키타라 연주와 자작 서사시 — 이 모든 것이 한 단어에 접혀 있었어요. 황제는 부차적이었고 예술가가 본질이었다는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 이 문장 자체가 완벽한 극장적 연기였다는 점이에요. 네로는 자기 죽음의 관객 앞에서 자기 자신의 마지막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의 오레스테스를 연기했던 경험이 — 이제 자기 자신을 향한 칼 앞에서 재현됐어요.

마지막 장면 — "이것이 충성인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어요. 원로원 사절이 체포 명령을 들고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네로는 단검을 들었지만 손이 떨려 찌르지 못했어요. 수에토니우스가 명시합니다 — "서기 에파프로디투스를 통해, 그가 보조로 삼은 자에게, 찔렸다"("per Epaphroditum a libellis, quem adiutorem habuit, confoditur", Suet. Ner. 49.3). 황제 스스로가 아니라 조력을 받은 것이었어요.

기병 사절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한 병사가 달려들어 지혈을 시도했어요. 네로는 마지막 숨결에 그를 보며 물었습니다 — "sero"(너무 늦었다) / "haec est fides?"(이것이 충성인가, Suet. Ner. 49.4). 그 이중 문장이 최후였어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혈통이 그 새벽에 끊어졌습니다. 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칼리굴라—글라우디오—네로. 다섯 세대, 97년. 그 중 네 명이 비정상적 죽음이었어요. 수에토니우스의 첫 여섯 권이 모두 단일 혈통의 연쇄 비극으로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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