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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모니아 계단 — 비텔리우스의 마지막 행렬

서기 69년 12월 20일, 54세의 비텔리우스가 팔라티노 궁전 뒤편 개 사육장에 숨어 있다 발각되어 포룸을 가로질러 끌려갔어요. 네 황제의 해가 이 장면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갈바 암살 쿠데타(1월), 오토의 고결한 자살(4월)에 이어, 비텔리우스의 최후는 수에토니우스 12권 전체에서 가장 굴욕적인 황제의 죽음으...

2026년 5월 30일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읽기 조회 1

서기 69년 12월 20일, 54세의 비텔리우스가 팔라티노 궁전 뒤편 개 사육장에 숨어 있다 발각되어 포룸을 가로질러 끌려갔어요. 네 황제의 해가 이 장면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갈바 암살 쿠데타(1월), 오토의 고결한 자살(4월)에 이어, 비텔리우스의 최후는 수에토니우스 12권 전체에서 가장 굴욕적인 황제의 죽음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수에토니우스 (비텔리우스전 15-17)와 타키투스 (역사 3.68-86), 카시우스 디오 (65.20-22)가 각자의 목소리로 이 하루를 전합니다.

퇴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D 69년 12월 18일, 비텔리우스는 이미 사실상 황제가 아니었어요. 플라비우스 군단이 이탈리아를 종단하고 있었고, 그 전날인 12월 19일에는 그가 임명한 친위대가 베스파시아누스의 형 플라비우스 사비누스를 캐피톨 신전에서 살해하고 신전 자체에 불을 질렀어요. 500년 로마 역사에서 가장 성스러운 건물 중 하나였던 유피테르 신전이 그날 전소되었습니다.

수에토니우스는 이 순간 비텔리우스가 공식 퇴위를 시도했다고 기록해요 (Suet. Vit. 15). 포룸 한복판에서 허리띠를 풀어 단검을 내려놓으며 "공공의 안전을 위해 제위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했지만, 친위대와 군중이 — 어떤 이들은 진심으로, 어떤 이들은 혼란 속에 — 그를 놓아주지 않았어요. 퇴위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그는 다시 궁전에 유폐되었습니다.

개 사육장

12월 20일 오후, 플라비우스 군단이 포르타 플라미니아를 통해 로마에 진입했어요. 몇 시간 만에 팔라티노 언덕은 플라비우스 측의 것이 되었고, 비텔리우스는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수에토니우스는 그 은신처의 세부를 전해요 — 궁전 뒤편의 문지기실, 그리고 그 뒤 개 사육장 (cella canina, Suet. Vit. 16). 한때 제국의 정점에 앉았던 54세의 황제가 개들 사이에 매트리스로 문을 막은 채 숨어 있었습니다.

플라비우스 병사들이 궁전을 수색하며 이 방에 도달했을 때, 한 병사가 문지기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읽었어요. 문지기가 너무 열심히 길을 가로막았다는 것. 병사가 매트리스를 걷어 내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비텔리우스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어요. 병사가 물었습니다 — "비텔리우스인가?" 그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포룸을 가로질러

병사들이 그의 손을 등 뒤로 묶었어요. 튜닉의 일부가 찢어졌고 목에 밧줄이 걸렸습니다. 팔라티노 계단 아래부터 포룸으로 향하는 길에 이미 군중이 모여 있었어요. 그 군중이 5년 전만 해도 그에게 환호했던 바로 그 군중이었습니다.

이제 같은 장소에서 쓰레기·배설물·돌이 날아들었어요 (Suet. Vit. 17.1; Dio 65.21). 수에토니우스는 특히 한 세부를 보존합니다 — 누군가 썩은 채소를 집어 던졌고, 누군가 오물이 담긴 물그릇을 부었으며, 또 누군가 길 위의 배설물을 그의 얼굴에 문질렀다고요. 54년의 세월이 한 시간 안에 완전히 반전되었어요.

포룸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 병사들이 잠시 그의 턱 밑에 단검 끝을 대어 세웠어요 — 머리를 위로 들어 얼굴을 군중에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Suet. Vit. 17.2). 그가 고개를 숙이면 단검이 찔러 들어갔어요. 그 상태로 포룸을 가로질러 게모니아 계단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너희의 황제였다"

수많은 조롱 속에서 비텔리우스가 고개를 들어 한 문장을 던졌어요 —

"그럼에도 나는 너희의 황제였다." (et tamen ego imperator vester fui, Suet. Vit. 17.2)

디오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기록합니다 (Dio 65.21). 조롱과 배설물 사이의 한 문장 — 수에토니우스의 본 권 전체를 관통하는 폭식·방탕·잔혹에 관한 16개의 장을 지나, 마지막 3개 장에서 비텔리우스는 처음으로 황제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단검이 목에 닿았고, 병사 하나가 이마를 때렸으며, 마지막 일격이 가슴을 관통했어요. 54세, 재위 8개월 22일.

로마사의 의미 — 세 부음의 완결

타키투스는 비텔리우스의 부음을 갈바·오토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갈바에게는 반어법 ("통치만 하지 않았더라면"), 오토에게는 균형의 분할 ("두 행위가 동등한 무게")을 사용했다면 — 비텔리우스에게는 극도로 짧은 문장이 기다리고 있어요 (Tac. Hist. 3.86) —

"그의 나태는 황제의 명성을, 그의 비겁은 남자의 이름마저 잃게 했다." (inertia sua famam imperatoriam, ignavia nomen viri perdidit)

두 단어 — 나태(inertia)와 비겁(ignavia) — 로 한 황제의 생애가 정리됩니다. 그리고 타키투스가 덧붙이는 한 마디: "그의 죽음을 아무도 애도하지 않았다." 갈바의 죽음에는 "모두가 원했고 누구도 방어하지 않았다"는 대조 구조가 있었고, 오토의 죽음에는 집단 동반 자살이 있었지만, 비텔리우스의 죽음에는 — 어떤 수사학도 작동하지 않는 침묵이 있었어요. 타키투스의 가장 강력한 경멸 형식은 산문의 기교를 전혀 동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신은 기병대에 의해 갈고리에 걸려 티베르 강으로 끌어 던져졌어요 (Suet. Vit. 17.2). 통상적인 원로원의 사후 매장 예우도 받지 못한 채였습니다. 다음 날 원로원이 소집되어 베스파시아누스를 공식 황제로 인준했어요.

AD 69년 '네 황제의 해'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갈바의 포석 위 첫 피 (1월 15일)부터 비텔리우스의 티베르 강 마지막 장면 (12월 20일)까지 — 한 해 11개월의 흐름이었어요.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듬해 여름 로마에 입성하고, 그의 아들 티투스는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을 공략하게 됩니다 — '네 황제의 해'의 권력 이동이 유대아 전쟁의 결말과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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