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시작되기도 전, 한 여인이 자기 손으로 남편의 갑옷을 입히고 있었어요. 그것도 자신이 가진 패물을 전부 녹여 지은 황금 갑옷을요.
패물을 녹여 지은 황금 갑옷
새벽이 채 밝기도 전이었어요. 판테아(Panthea)는 자신이 가진 패물을 모두 녹여 황금 갑옷을 미리 지어 두었습니다. 가슴받이도, 투구의 깃도, 팔을 감싸는 비늘 하나하나도 전부 황금이었어요. 그녀는 그것을 남편 아브라다타스(Abradatas)에게 한 겹씩 입혔습니다.
그는 본래 수사(Susa)의 왕이었지만, 이제는 키루스(=고레스)의 동맹이 되어 가장 위험한 자리인 낫전차 부대를 스스로 자청한 참이었어요(Cyr. 7.1). 까닭은 단순했습니다. 자신이 멀리 떠나 있던 사이 아내가 포로로 잡혔는데, 키루스가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끝까지 지켜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 절제(節制)에 사내는 목숨으로 답하기로 한 겁니다.
판테아는 갑옷의 마지막 끈을 조이며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뜨거운 물방울이 그만 그의 손등 위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아브라다타스가 그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지켜본 그 눈으로 오늘도 자신을 보내 달라고, 부끄럽지 않은 사내로 돌아오겠다고 말하려다 끝내 말을 맺지 못했어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신들께 맹세컨대, 자신은 그가 비겁한 모습으로 사는 것보다 용맹한 모습으로 죽는 편을 더 자랑스러워하겠노라고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깊은 배웅이었어요(Cyr. 7.1).
전차에 오른 아브라다타스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멀어지는 황금빛 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서지 않은 전차
팀브라라(Thymbrara)의 들판은 넓었고, 크로이수스(Croesus)가 이끄는 대연합군은 그 들판을 메우고도 남았어요. 키루스는 수적 열세를 낙타 부대로 메웠습니다. 리디아 기병이 자랑하던 말들이 낙타 냄새에 놀라 뒷걸음치며 무너지기 시작했죠(Cyr. 7.1).
그 혼란의 한복판으로, 황금 갑옷의 사내가 낫전차를 몰고 돌진했어요. 바퀴 축에 달린 낫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습니다. 그의 표적은 적진에서 가장 단단한 방패의 벽, 이집트 정예 보병이었어요.
함께 출발한 동료 전차들 가운데 몇몇은 적의 밀집 대형 앞에서 말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다타스는 돌리지 않았어요. 그는 곧장 이집트군의 방패 벽을 들이받았습니다. 낫이 첫 줄을 찢었고, 두 번째 줄을, 세 번째 줄을 갈랐어요. 그러나 밀집한 보병의 두께는 전차 한 대가 뚫기에는 너무 깊었습니다. 전차가 뒤집혔고, 그는 적병들 한가운데로 떨어졌어요. 그곳에서 그는 끝까지 싸우다 쓰러졌습니다(Cyr. 7.1).
전투는 키루스의 승리로 끝났어요. 사르디스가 함락되고 크로이수스가 사로잡혔지만, 키루스는 그 패장을 죽이지 않고 후하게 대접해 조언자로 삼았습니다(Cyr. 7.2). 그러나 승전의 함성이 잦아든 들판 어딘가에서는, 한 여인이 황금빛 시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어요.
강가에서 거둔 남편
판테아는 강가에서 남편을 찾아냈어요.
그녀는 시종들에게 그의 시신을 거두게 했습니다. 적병의 손에 상한 그 몸을, 그녀는 자기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끌어안았어요. 키루스가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왔을 때, 그가 본 것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남편의 손을 제 옷자락으로 감싸 쥐고 있는 한 여인이었습니다(Cyr. 7.3).
키루스는 말에서 내렸지만, 그 광경 앞에서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어요. 그는 다만 이 사람은 가장 용감하게 죽었으며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끝까지 보살피겠노라 약속했어요. 판테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습니다. 그 눈에는 원망도 절망도 아닌, 이미 모든 것을 정한 사람의 고요함이 있었어요. 그녀는 그저 자신을 위해 키루스가 베푼 절제와 후의에 감사한다고만 했습니다. 키루스는 차마 그 곁을 떠나기 싫었지만, 그녀가 홀로 애도할 시간을 청했기에 물러났어요(Cyr. 7.3).
이제 천막에는 판테아와, 그녀가 오래 거느린 환관 셋만이 남았습니다.
다섯 사람의 무덤
그녀는 시종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든 막지 말라 일렀어요. 그러고는 남편의 몸 곁에 누웠습니다. 그의 가슴 위에 자기 머리를 두고, 손이 천천히 그의 허리춤으로 내려가 거기 채워진 단검의 자루를 쥐었어요. 더 망설일 것이 없었습니다. 환관들이 그 손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녀는 마지막 힘으로 머리를 남편의 가슴에 묻었습니다(Cyr. 7.3). 뒤에 남은 세 환관은 서로를 바라보았어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살아서 이 천막을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주인의 발치에서 차례로 자기 칼 위에 엎드렸어요(Cyr. 7.3).
키루스가 다시 천막에 돌아왔을 때, 그는 다섯 구의 주검 앞에 섰습니다. 전해지기로, 그 자리에서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해요. 정복의 길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아 온 그였지만, 이 죽음 앞에서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부부와 세 환관을 위해 높은 봉분과 기념비를 세우게 하고, 그 위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게 했어요(Cyr. 7.3). 절제로 한 여인의 정절을 지킨 군주가, 그 절제가 불러낸 충절의 끝에서 다섯 사람을 땅에 묻은 거예요.
무대 위의 진실 — 이 비극은 사실일까
그는 절제(sōphrosynē)와 충절이라는 한 가르침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프게 보여 주려고, 이 비극을 손수 빚어 키루스라는 이상 군주의 거울로 세웠습니다. 키루스가 포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에 아브라다타스의 충성이 따라왔고, 그 충성이 다시 판테아의 정절을 불러냈다는 거예요. 한 사람의 절제가 어디까지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일종의 도덕 우화인 셈이죠.
그러므로 이 무덤 위에 새겨진 것은 역사가 아니라, 절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을 향한 한 작가의 헌사예요. 무대 위의 진실이 때로 사실보다 더 오래 사람의 마음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키루스라는 인물을 "이상적인 군주"로 기억하게 된 데에는, 실제로 그가 무엇을 했는가만큼이나 크세노폰이 그를 어떻게 그렸는가가 크게 작용했어요. 이 다섯 사람의 무덤은, 한 정복자를 전설로 바꾼 문학의 힘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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