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한 젊은 지휘관이 자기 군대의 셈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적은 자기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보통의 장수라면 더 많은 병사를 끌어모으려 했겠죠. 그런데 이 젊은이는 다른 답을 골랐어요 — 수가 모자라면 질을 끌어올리면 된다고요.
불리한 셈을 다르게 본 사람
키루스는 페르시아 원군을 이끌고 외삼촌 키악사레스의 진영에 막 도착한 참이었어요(Cyr. 2.1). 두 사람은 함께 연합 병력을 점검했습니다 — 메디아의 분견대와 페르시아의 보병이 한 들판에 늘어섰죠. 그런데 정찰병들의 보고가 달갑지 않았어요. 아시리아 왕과 그 연합, 멀리 리디아의 크로이수스까지 이어지는 적의 무리는 그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키악사레스의 얼굴이 굳었어요. 수를 헤아릴수록 셈은 불리해졌죠.
키루스는 그 셈을 다른 쪽에서 봤어요. 페르시아의 평민들은 오랫동안 멀리서 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투창을 던지고 화살을 날린 뒤, 적이 다가오면 물러났어요. 근접전은 귀족의 몫이었고, 두꺼운 갑옷과 방패와 칼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의 것이었죠. 태생이 무기를 정했고, 무기가 자리를 정했어요. 그것이 페르시아였습니다. 키루스는 그 질서를 손에 들고 다시 봤고, 그리고 바꾸기로 했어요.
"이제 너희도 동등자다"
그날, 평민 보병들은 한 사람씩 호명되어 앞으로 나갔어요. 시종들이 그들에게 투구를 씌우고, 가슴에 흉갑을 둘러 주고, 손에 묵직한 방패와 근접용 칼을 쥐여 주었습니다(Cyr. 2.1). 멀리서 던지던 자가 이제 적의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버티는 자가 된 거예요. 한 늙은 보병이 처음 들어 보는 방패의 무게에 비틀거리자, 옆줄에서 누군가 웃었어요 — "이제 도망칠 수 없겠군. 이 쇳덩이를 메고는 한 발짝도 못 빼겠어." 웃음이 줄을 타고 번졌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 밑에는 다른 것이 깔려 있었어요. 귀족만 입던 갑옷이 자기 몸에 둘러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둔하게나마 모두가 느끼고 있었거든요.
키루스가 그들 앞에 서서 말했어요. "이제 너희도 동등자다." 동등자 — 호모티모이(homotimoi), 동등한 명예를 가진 자. 그 말이 들판을 건너갔습니다. 단지 무기를 바꿔 주겠다는 말이 아니었어요. 명예를 나누는 자리에 너희를 들이겠다는 말이었죠.
그러나 키루스는 그것이 거저 주어지는 명예가 아님을 분명히 했어요. "무기는 받았으나, 동등자의 자리는 받은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 묻지 않겠다. 나는 너희가 무엇을 하는지 보겠다(Cyr. 2.1). 더 잘 싸우는 자, 더 많이 견디는 자, 더 크게 기여하는 자 — 그가 더 좋은 몫을 받는다. 출신이 아니라 공로다." 공로가 신분을 대신한다 — 페르시아의 들판에서 그 말은 거의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어요.
더 일한 몸이 더 먹는다
말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키루스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 밥이었어요. 막사에서 식사가 차려질 때, 키루스는 음식을 똑같이 나누지 않았어요. 그날 훈련에서 가장 많이 땀 흘린 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자, 동료를 가장 많이 도운 자에게 더 큰 몫을 돌렸습니다(Cyr. 2.2).
처음에는 불평이 나올 법도 했죠. 그러나 키루스는 그 불평을 미리 잘라 두었어요. 어느 저녁, 그가 둘러앉은 병사들에게 물었습니다. "몸을 단련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종일 누워 쉬었고, 한 사람은 종일 무거운 것을 들고 달렸다. 저녁에 둘에게 똑같은 음식을 똑같이 준다면 — 그것이 공정한가?" 병사들이 잠시 머뭇거리자, 누군가 답했어요 — "땀 흘린 자가 더 먹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다음 날도 들 수 있을 테니까요." "바로 그것이다." 키루스가 말했어요. "더 일한 몸이 더 먹는다. 더 싸운 자가 더 받는다. 그것이 너희 몸이 이미 아는 정의다(Cyr. 2.2). 나는 다만 그 정의를 우리 막사의 법으로 삼을 뿐이다."
식탁의 우화는 단순했으나 모두의 가슴에 박혔어요. 그날 이후 더 큰 고깃덩이는 더 잘 싸운 자의 접시 위에 놓였고, 누구도 그것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기 대신, 다음 날 더 무거운 짐을 지겠다는 마음이 자랐어요. 어느 평민 출신 병사는 능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며 동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Cyr. 2.2), 막사에는 그를 둘러싼 농담이 끊이지 않았죠. 한 늙은 병사가 수염을 쓸며 조용히 덧붙였어요 — "내가 젊었을 적엔, 아무리 잘 싸워도 좋은 가문에서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늘 뒷줄이었지. 이제야 내 두 손이 셈에 들어가는구나." 막사가 잠시 잠잠해졌습니다. 그 한마디에, 웃던 자들의 눈빛이 깊어졌어요.
마음이 수를 이긴다
낮에는 훈련이 이어졌어요. 키루스는 무기 다루는 법과 대형을 짜는 법을 가르쳤고, 장교들과 둘러앉아 전술을 토론했습니다(Cyr. 2.3). 모의 경연을 열어 더 잘 해낸 조에 상을 내렸고, 뒤처진 조에는 부끄러움을 안겼어요. 상벌은 한결같았습니다 — 태생이 아니라 해낸 일에 따랐죠. 들판 한편에서는 키악사레스의 메디아 병력이 그 광경을 지켜봤어요. 명목상 연합의 상관은 키악사레스였으나(Cyr. 2.1), 군대를 빚어 가는 손은 키루스의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은 없었어요. 키루스는 외삼촌을 깍듯이 예우했고, 그러면서도 실질적인 지도력은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흘렀죠.
며칠 뒤, 다시 적의 규모가 화제에 올랐어요. 한 장교가 근심스레 말했습니다 — "저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많습니다." 키루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흔들리지 않았어요. "수가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사람을 이긴다(Cyr. 2.1). 억지로 끌려 나온 만 명과, 제 발로 싸우기를 택한 천 명 중 어느 쪽이 강한가? 보상이 정의로우면 사람은 스스로 강해진다." 장교는 답하지 못했어요. 답은 이미 그의 안에 있었거든요.
그렇게 평민과 귀족의 줄이 하나로 섞였습니다. 어제까지 나뉘어 있던 자들이 같은 막사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상을 다투며, 비로소 하나의 군대가 되었어요. 이제 남은 건 수의 부족을 메우는 일이었습니다. 키루스와 키악사레스는 적의 동향을 정찰하고, 인근의 세력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였어요(Cyr. 2.4). 능력주의로 군대의 질을 끌어올리고, 동맹으로 군대의 양을 보강한 거예요. 적의 핵심인 크로이수스의 리디아는 아직 멀리 있었고, 그와의 진짜 대결은 훗날의 일이었죠. 페르시아의 평민들은 더 이상 멀리서 화살이나 날리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슴에 흉갑을 두르고, 손에 명예를 쥔 동등자들이었어요.
키루스의 군대인가, 크세노폰의 꿈인가
들판 위로 해가 기울었어요. 키루스는 자신이 빚어낸 군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으로 묶인 무리가 아니라, 정의로 묶인 형제들이었어요. 채찍으로 끌어낸 복종은 채찍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지만, 정의로 얻은 충성은 사람의 안에 뿌리를 내린다 — 크세노폰이 키루스의 입을 빌려 거듭 말하려 한 게 바로 이것입니다.
다만 후세의 독자는 한 가지를 기억해 둘 만해요. 여기서 사실과 교훈을 갈라 읽어야 하거든요. 이 능력주의 군대는 역사 속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실제 군제가 아니에요. 헤로도토스가 전한 페르시아 정예는 정원 만 명의 "불사부대"였고(Hdt 7.83), 실제 페르시아군은 민족별 분견대와 궁기병을 중심으로 짜였습니다 — 출신이 아닌 공로로 동등자를 뽑는 입법은 그 어느 페르시아 사료에도 없어요. "동등자"(호모티모이)라는 말의 울림이 스파르타의 "동등자"(homoioi)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에요. 스파르타에서 시간을 보낸 크세노폰은, 출생으로 닫혀 있던 스파르타의 동등자 자리를 페르시아라는 무대 위에서 공로로 활짝 열어 보인 거예요. 그러니 이 들판의 군대는 키루스가 만든 군대라기보다, 크세노폰이 꿈꾼 이상적인 군대 — 정의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한 철학자의 믿음이 고대 페르시아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선 것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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