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39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단 하룻밤에 무너졌어요. 성벽이 부서져서가 아니라 — 강이 사라져서였습니다.
성벽 대신 강을 본 정복자
키루스는 바빌론의 성벽을 보지 않았어요. 그 성벽은 전차가 그 위를 달릴 만큼 두꺼웠고, 안에는 몇 해를 버틸 식량이 있었습니다. 성 위의 바빌로니아인들은 페르시아 군을 내려다보며 "와서 늙어 죽으라"는 듯 비웃었죠. 사다리도 충차도 소용없는 난공불락의 도시였어요.
그래서 키루스는 강을 봤습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유프라테스 — 바빌론의 젖줄이자, 그의 눈에는 열린 목구멍이었어요. 그는 기술자들을 불러 도시를 빙 두른 거대한 도랑을 파게 했습니다(Cyr. 7.5). 바빌로니아인들은 또 비웃었어요. 그러나 그 도랑은 방어용이 아니라 강을 삼킬 입이었습니다. 키루스가 유프라테스의 물길을 옛 호수와 늪지로 갈라 흘려보내자, 도시를 관통하던 강의 수위가 허리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정강이로 내려갔어요 — 마침내 사람이 걸어서 건널 만큼.
놀랍게도 헤로도토스도 같은 장면을 따로 기록했습니다 — 키루스가 강을 호수로 돌려 강바닥을 드러냈고, 그 마른 바닥으로 군대가 잠입했다고(Hdt 1.191). 서로를 알지 못한 두 그리스인의 붓이 같은 그림을 그린 거예요.
축제의 밤, 열린 강바닥
그날 밤 바빌론은 축제 중이었어요(Cyr. 7.5). 집집마다 등불이 켜지고 거리마다 노래가 흘렀습니다. 난공불락의 성벽 안에서 그들은 안전하다고 믿으며 술잔을 들었죠. 키루스는 그 불빛을 보며 말했어요 — "바로 지금이다. 저들은 취해 있다."
앞장선 건 두 사람, 고브리아스와 가다타스였습니다. 본래 이 땅의 귀족이었으나 바빌론 왕에게 등을 돌리고 키루스에게 온 자들이에요. 그들은 어느 골목이 왕궁으로 이어지는지 알았습니다. 크세노폰은 두 사람이 저마다 그 왕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고 전하는데 — 한 사람은 외아들을 잃었고 한 사람은 치욕을 당했다고 —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크세노폰이 빚어 넣은 교훈인지는 끝내 알 수 없어요. 의로운 군주에게 상처 입은 자들이 모여든다는 그의 이상화된 서사가 늘 깔려 있거든요.
군대는 마른 강바닥으로 내려섰습니다. 진흙이 군화를 빨아들이고, 머리 위로는 성벽이 검은 절벽처럼 솟았어요. 그러나 그들은 벽을 넘지 않았습니다 — 물이 흐르던 자리로 지났죠. 도시가 너무 커서, 한쪽 끝이 함락되는 순간에도 다른 쪽 끝에서는 아직 춤추고 있었어요(Hdt 1.191). 노랫소리가 비명으로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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