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다음 날 아침, 정작 키루스(Cyrus)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전리품이 아니었어요. 들판에 어지럽게 서 있는, 주인 잃은 말들이었습니다.
메디아·페르시아 연합이 아시리아군을 정면으로 깨뜨린 첫 대승이었어요(Cyr. 4.1). 사람들은 벌써 승리에 취해 노획물을 셈하고 있었죠. 그런데 키루스는 다른 걸 보고 있었습니다. 무너진 적을 그대로 두면 다시 일어선다는 것, 그러니 지금 쫓아야 한다는 것. 문제는 단 하나였어요 — 페르시아인에게는 적을 따라잡을 다리가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말이 없었어요.
이 글은 한 권 안에서 동시에 열린 세 갈래의 이야기예요. 보병의 나라가 말 위에 오른 날, 외삼촌의 마음에 시기가 싹튼 순간, 그리고 복수를 맡기러 한 노인이 찾아온 저녁입니다. 이 세 갈래는 먼 훗날 바빌론이 무너지는 밤까지 이어집니다.
두 발로는 적의 먼지만 봤다
페르시아는 본디 보병의 나라였어요. 창과 방패를 든 사내들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싸웠고,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일은 메디아인이나 아시리아인의 몫이었습니다. 적이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면, 걸어서 쫓는 페르시아인은 그 먼지만 바라볼 뿐이었죠. 도망치는 자를 잡지 못하는 승리가 무슨 승리냐고, 키루스는 오래전부터 이 약점을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동등자들과 병사들을 불러 모아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말에 오른다고. 페르시아인이 말과 한 몸이 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말과 사람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어디든 적보다 먼저 가 있을 것이라고요(Cyr. 4.3).
처음에는 웃는 사람도 있었어요. 평생 두 발로 걸어온 사내들이었으니까요. 말 등은 높고 낯설었고, 떨어지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키루스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노획한 아시리아 말들이 병사들에게 분배되었고, 사내들은 안장 위에서 균형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처음 며칠은 우스꽝스러웠죠. 며칠이 더 지나자, 들판을 가로지르는 말발굽 소리가 달라졌어요.
한 사람의 통찰인가, 한 시대의 전환인가
여기서 잠깐 사실과 이야기를 갈라 둘게요. 크세노폰(Xenophon)은 이 거대한 변화를 키루스 한 사람의 통찰로 그립니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보병의 나라에서 기병을 거느린 나라로 바뀐 것은, 한 사람의 발명이라기보다 한 시대가 치른 거대한 전환이었어요.
기병이 훗날 페르시아 제국군의 핵심이 된다는 것 — 그 군사적 전환 자체는 역사가 기억하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전환의 얼굴로 키루스 한 사람을 세우고, 단 한 번의 연설로 압축한 것은 말을 사랑한 한 그리스인 저자의 붓이었죠. 흥미롭게도 크세노폰 자신이 기병 전문가여서, 『기마술』과 『기병대장』이라는 책까지 따로 남긴 사람이에요. 그 애정이 이 대목에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날 이후 페르시아인은 더 이상 적의 먼지만 바라보지 않았어요. 기병이 생기자 추격의 그물이 넓어졌고, 아시리아에 짓눌려 있던 히르카니아인들이 예속을 벗어던지고 무리째 귀순해 추격에 합류했습니다(Cyr. 4.2).
떠오르는 해 위로 번지는 그림자
키루스에게 사람이 모일수록, 한 사람의 마음에는 차가운 것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명목상 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Cyaxares)였습니다. 키루스의 외삼촌이자, 왕좌에 앉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첫 대승 이후, 메디아 병사들마저 외삼촌의 명령이 아니라 조카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어요(Cyr. 4.1).
직위는 키악사레스에게 있었고, 사람들의 발길은 키루스에게로 향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모인 군대가 자기를 보지 않고 다른 이를 본다는 것 — 그 사실이 왕의 마음 한구석에 작고 차가운 것을 남겼어요(Cyr. 4.5). 키루스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죠. 그는 외삼촌에게 사절을 보내고 서신을 띄워, 모든 일이 왕의 권위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거듭 밝혔습니다. 겸손한 조카의 몸짓이었어요.
그러나 한번 마음에 자리 잡은 시기는 서신 몇 통으로 쉬이 풀리지 않습니다. 키악사레스의 질투는 이 권에서 겨우 싹을 틔웠을 뿐이에요. 그 싹은 다음 권에서 정면 갈등으로 자라났다가, 8권에 가서야 혼인과 화해로 봉합됩니다. 지금은 아직,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했어요.
복수를 맡기러 온 노인
추격이 적의 영토 깊숙이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키루스의 진영을 찾아왔어요. 고브리아스(Gobryas)였습니다. 아시리아의 부유한 귀족으로, 견고한 요새와 너른 영지를 가진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를 움직인 것은 재물도 영지도 아니었어요. 한 아버지의 무너진 가슴이었습니다.
고브리아스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어요.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습니다. 새 왕이 아시리아의 왕좌에 오른 뒤 어느 사냥날, 젊은이는 누구보다 빛났고, 새 왕은 그 빛을 견디지 못했어요. 시기와 분노에 사로잡힌 왕은 고브리아스의 외아들을 죽였습니다(Cyr. 4.6). 사냥의 영광이 죽음으로 끝났죠. 늙은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텅 빈 집과, 식지 않는 한(恨)뿐이었어요.
고브리아스는 키루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은 늙었고 이을 자식이 없으며, 죄 없는 외아들이 다만 뛰어나다는 이유로 죽임당했다고. 그러니 복수를 원하며, 그 복수를 키루스께 맡기겠다고요. 자기 요새의 문을 열고, 영지와 사람과 남은 목숨을 모두 드릴 테니, 다만 그 왕이 죗값을 치르는 자리에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했어요(Cyr. 4.6).
키루스는 노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고브리아스를 손님으로, 동맹으로 맞았어요. 폭군에게 짓밟힌 의로운 자가 덕 있는 군주에게로 흘러든다 — 크세노폰이 이 작품에서 거듭 그리는 그림의 첫 장면이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의 무릎이 그 밤의 칼끝으로
말 위에 오른 페르시아, 시기를 품기 시작한 외삼촌, 복수를 맡기러 온 노귀족 — 이 한 권 안에서 세 갈래의 길이 동시에 열렸어요. 그중 하나는 제국의 군대를 바꾸었고, 둘은 사람의 마음을 따라 더 먼 권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특히 고브리아스의 복수는 이날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이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정복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난공불락의 바빌론이 마침내 무너지는 그 밤, 노인은 다시 한번 키루스의 곁에 서요. 왕궁으로 가는 길을 손수 안내하고, 그 밤 자기 손으로 원수의 죗값을 받아내는 사람이 — 바로 이 고브리아스입니다(Cyr. 7.5). 오늘 땅에 닿은 늙은 무릎이, 그 밤의 칼끝으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다만 역사의 저울 위에서는 한 가지를 분별해 둘게요. 정복당한 땅의 귀족 일부가 정복자에게 협력했으리라는 것은 능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러나 "외아들의 죽음, 그 한 가지를 위한 복수"라는 이 선명한 도식은, 다른 사료에 그 자취가 없는, 크세노폰이 빚어낸 문학의 결이에요. 의로운 자가 덕 있는 자에게로 모여든다는 그의 믿음이, 고브리아스라는 한 노인의 얼굴을 빌려 우리 앞에 선 것입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는 역사의 키루스보다 늘 한 뼘쯤 더 의롭고 더 절제된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들어야 합니다 — 보병의 나라가 기병을 얻은 그 시대의 진짜 전환과, 그 전환을 한 사람의 미덕으로 빚어낸 한 그리스인의 이상(理想)을요. 이 권은, 정복기와 교훈서가 같은 들판에서 동시에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바로 그 정복의 길 위에서 만나는 한 여인과, 절제라는 주제예요. → 5권 (판테아와 절제)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