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 가장 컸던 그날, 키루스(=고레스)는 자신이 곧 작아지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정점에서 찾아온 꿈
키루스는 페르시아의 옛 도성에 돌아와 있었어요. 바빌론의 황금 궁도, 메디아의 비단도, 사르디스의 보고도 이제 모두 그의 것이었습니다. 동쪽 인더스의 강변에서 서쪽 에게해의 도시들까지, 사람의 말로 헤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땅이 그의 이름 아래 숨을 쉬었어요.
그런데 그 정점의 어느 밤, 꿈 하나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위엄 있는 한 형상이 다가와 일렀어요 — 채비를 하라, 너는 곧 신들에게로 갈 것이다(Cyr. 8.7). 키루스는 잠에서 깨어 가만히 누워 있었어요.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리할 것이 있었어요.
그는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 더 오래 살게 해달라는 간청이 아니라,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준 데 대한 감사의 제사였어요. 그러고 나서 두 아들을 불렀습니다. 장남 캄비세스 — 이미 곁에 와 있던 후계자였어요. 그리고 차남 타나옥사레스 — 멀리 분봉의 땅에서 급히 달려온 작은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벗들과 페르시아의 원로들도 침상 곁으로 불러 모았어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었고, 그 말은 혼자 듣게 둘 것이 아니었거든요(Cyr. 8.7).
영혼에 관한 마지막 강의
침상에 누운 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목소리는 약했지만 또렷했습니다. 자신이 죽는 것을 두고 슬퍼하지 말라고, 자신은 짧지 않은 생을 살았고 손대는 일마다 신들의 도움을 받았다고요. 어린 날에는 어린 날의 좋은 것을, 젊은 날에는 젊은 날의 좋은 것을, 장년에는 장년의 좋은 것을 누렸으며, 자기 힘이 해마다 자라는 것을 보았을 뿐 한 번도 젊음이 늙음 앞에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았다고 했어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으냐고요.
그러고는 영혼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인간의 영혼이 몸 안에 머무는 동안에만 살아 있다가 몸을 떠나면 사라지는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요. 영혼은 가장 약한 살덩이 안에 깃들어 있는 동안에도 그 살덩이를 움직이고 다스리는데, 그런 영혼이 어찌 몸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는 그 순간에만 지각을 잃겠느냐는 거예요. 오히려 그 순간 영혼은 가장 순수해지고, 그래서 가장 또렷이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Cyr. 8.7).
원로들은 숨을 죽였어요. 그것은 정복자의 말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사색해 온 한 현자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니 만일 자기 생각이 옳다면 너희는 나를 공경하여 함부로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라고, 내 영혼이 너희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설령 생각이 틀려 영혼이 몸과 함께 스러진다 해도, 그렇다면 영원하고 모든 것을 보는 신들을 두려워하라고요. 어느 쪽이든 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형제여, 붙어 있으라 — 제국을 나누며
이제 말은 형제에게로 향했어요. 그것이 이 임종의 핵심이었습니다. 키루스는 캄비세스를 바라보고는 두 아들을 번갈아 보았어요. 캄비세스에게는 왕위를, 신들이 주시고 자신이 넘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타나옥사레스에게는 메디아와 아르메니아와 카두시아의 땅을 준다고요. 형보다 작은 자리이지만 근심도 그만큼 작은 자리라고 했어요(Cyr. 8.7).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힘이 실렸습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은 재물도 영토도 아니라 형제의 화합이라고요. 형제란 남남보다 강한 법인데, 짐승조차 한배에서 난 것끼리는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더냐고요. 그런데 사람이, 더구나 형제가 서로를 시기하여 칼을 겨눈다면 그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어요. 캄비세스는 동생을 보호하고, 타나옥사레스는 형을 공경하라고요. 너희가 서로 붙어 있으면 그 누구도 너희를 무너뜨리지 못하지만, 갈라서면 가장 작은 적조차 너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침상 곁에 있던 늙은 벗 하나가 고개를 숙였어요. 키악사레스 — 일찍이 외삼촌이자 메디아의 왕으로서, 젊은 날의 키루스에게 공을 빼앗겼다 여겨 한때 깊이 서운해했던 사람이에요. 그 오랜 갈등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습니다. 키루스가 바빌론의 궁을 그에게 바치고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아 메디아와 페르시아를 한 핏줄로 묶었을 때, 둘 사이의 응어리는 화합으로 녹았거든요(Cyr. 8.5).
마지막으로 키루스는 자기 몸의 처리를 일렀어요. 자신이 죽거든 몸을 금이나 은에 넣지 말고 어서 흙에게 돌려보내라고요. 사람의 몸이 만물을 기르는 흙과 다시 섞이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자신은 평생 사람을 사랑하였으니 이제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 기쁘다고 했습니다(Cyr. 8.7).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두 아들의 손을 차례로 잡고,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어요. 정복자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고요했습니다.
잘린 머리와 가죽부대 — 헤로도토스의 키루스
그런데 —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그리스인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요.
같은 키루스의 최후를, 헤로도토스는 침상이 아니라 전장에서 끝맺습니다. 그에 따르면 키루스는 노년에도 칼을 거두지 않았어요. 카스피해 동쪽의 광활한 초원, 그곳을 다스리던 마사게타이의 여왕 토미리스(Tomyris)를 향해 그는 마지막 원정을 떠났습니다. 여왕은 경고했었어요 — 피에 굶주린 자여, 물러가라. 키루스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초원에서 벌어진, 헤로도토스가 "아시아에서 본 가장 격렬한 싸움"이라 부른 전투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는 전사했어요. 아들을 그에게 잃은 토미리스는 키루스의 머리를 피로 가득 찬 가죽부대에 담그며 말했다고 합니다 — 네가 피를 원했으니, 이제 배불리 마셔라(Hdt 1.214).
평화로운 임종과 잘린 머리. 두 그리스인은 같은 사람의 죽음을 정반대로 그렸어요. 어느 쪽이 사실일까요. 크세노폰 홀로 평화로운 침상을 말하고, 헤로도토스와 더불어 크테시아스도, 디오도로스도 — 외부의 여러 사료가 한결같이 전사 또는 전상사로 수렴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이들은 헤로도토스의 전사설을 사실에 더 가깝다고 봐요. 크세노폰의 고요한 임종은, 평생 절제와 경건을 가르친 이상 군주에게 어울리는 마무리를 입혀 주려는 그의 붓이 빚어낸 것 —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 한 교사가 그려 보인 완성된 일생의 그림에 가깝습니다. 본디 영혼 불멸의 그 긴 연설조차, 키루스의 입을 빌린 소크라테스 제자 크세노폰 자신의 사상이었어요. 어느 한쪽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림과 사실의 거리는 기억해 둘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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