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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이 모두 죽은 밤, 구경꾼 한 사람이 일어섰다 — 만인대를 살린 크세노폰의 부상

기원전 401년의 어느 가을밤, 만 명의 그리스 용병이 적지 한복판에서 잠들지 못했어요. 그날 낮에 그들의 장군 다섯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거든요. 머리를 잃은 군대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절망에서 가장 먼저 일어선 사람이 장군도, 부대장도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친구의 권유로 따라나선 구경꾼에 가까운 종군자, 아테네 사람...

2026년 5월 30일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읽기 조회 1

기원전 401년의 어느 가을밤, 만 명의 그리스 용병이 적지 한복판에서 잠들지 못했어요. 그날 낮에 그들의 장군 다섯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거든요. 머리를 잃은 군대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절망에서 가장 먼저 일어선 사람이 장군도, 부대장도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친구의 권유로 따라나선 구경꾼에 가까운 종군자, 아테네 사람 크세노폰(Xenophon)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날 밤 일어선 이야기를 직접 책으로 적어 남겼어요 — 자기 자신을 "나"가 아니라 "크세노폰"이라는 제삼자로 부르면서요.

이 한 편은 한 무명의 종군자가 어떻게 만인대의 지도자로 떠올랐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우리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를 함께 따라가 봅니다.

머리를 잃은 만 명

만인대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닥쳤어요. 다섯 장군이 화해의 회담에 갔다가 사트라프 티사페르네스(Tissaphernes)의 덫에 걸려 한꺼번에 살해당했고, 부대장들마저 함께 사라졌습니다(An. 3.1). 만 명의 그리스인이 단번에 지휘부를 통째로 잃은 거예요.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바다까지는 산맥과 강과 적의 기병이 가로막았고, 집까지는 수천 리였어요. 그날 밤 막사에는 불도 잘 피우지 못했고, 보초조차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도 내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 절망한 군대 안에,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한 아테네인이 있었습니다. 칼은 찼지만 그 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해 줄 사람이 이제 없었어요. 그를 데려온 친구 프록세노스도 회담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다섯 중 하나였거든요.

번개 꿈과 부끄러움

크세노폰도 그 밤 잠깐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어요. 천둥이 울리고 제우스의 번개가 아버지의 집에 떨어져, 불길이 집 전체를 환히 휘감는 꿈이었습니다(An. 3.1).

꿈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는 누워서 그것을 헤아렸어요. 제우스 왕의 불이 자기 집에 내렸으니 큰 표지가 아닌가 — 그렇게 보면 길조였습니다. 그러나 집이 통째로 타들어 가는 것은 빠져나갈 길 없는 재앙이 아닌가 — 그렇게 보면 흉조였어요. 길흉이 한 꿈 안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신은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가 꿈에서 길어 올린 것은 답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렇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일어나 앉았어요(An. 3.1). 길조든 흉조든, 가만히 누워 좋은 표지가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에게 신이 무엇을 베풀겠느냐고. 죽음이 다가오는데 어느 장군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겠느냐고. 우리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여기서 끝난다고요.

여기서 잠깐 짚어 둘 게 있어요. 이 꿈은 헤로도토스식의 "사건을 결정하는 신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이 승패를 정해 주는 게 아니라, 모호한 전조를 받고도 즉시 행동하는 크세노폰의 결단이 사건을 만든다는 구도예요. 동시에 "권력을 탐한 게 아니라 신의 표지를 받아 마땅히 일어섰다"는 자기 정당화의 틀이기도 하죠. 그가 자신을 어떻게 그리고 싶어 했는지가 이 한 장면에 다 담겨 있습니다.

거수로 세운 새 지휘부

크세노폰은 곧장 움직였어요. 죽은 프록세노스 휘하의 부대장들을 한밤에 한 사람씩 깨워 불러 모았습니다. "적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작정해야 합니다." 주저앉으면 죽고, 일어서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고요(An. 3.1). 항복해 왕의 자비를 빌자는 자가 나오자, 장군들을 속여 죽인 자들의 자비를 어찌 믿느냐고 매섭게 받아쳤어요. 그날 밤 첫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 항복하지 않는다, 싸우며 돌아간다.

동이 트자 전군이 무장한 채 한자리에 모였어요. 크세노폰은 가장 좋은 갑옷을 갖춰 입고 나섰습니다 — 죽더라도 가장 훌륭한 차림으로 죽겠다는 뜻이었죠. 그는 페르시아의 배신을 규탄했어요. 맹세를 걸고 신들을 증인 삼아 약속해 놓고 그것을 짓밟은 자들은 신을 적으로 돌린 것이니, 신의 가호는 우리에게 있다고요. 조상들이 마라톤과 살라미스에서 수만 페르시아 대군을 꺾었다는 것도, 우리는 자유인이고 저들은 왕 한 사람의 노예라는 것도 짚었습니다(An. 3.2).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남겨 두었다가 꺼냈어요. "저들이 끝내 빼앗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 우리 손에 쥔 무기와, 그것을 쥔 우리의 용기입니다(An. 3.2)." 집회는 그를, 그리고 다른 이들을 새 장군으로 뽑았습니다. 거수로, 함성으로요(An. 3.2). 권위의 근거가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 어제까지 장군은 고용주가 임명하는 자리였으나, 이제는 동료 병사들이 손을 들어 세우는 자리가 됐습니다. 스파르타 사람 케이리소포스(Cheirisophos)가 선두를, 크세노폰은 가장 위험한 후위를 맡기로 했어요.

멀리 쏠 손과 빨리 달릴 발

후퇴가 시작되자 페르시아인은 곧바로 진가를 드러냈어요. 티사페르네스의 기병이 멀찍이서 따라붙었고, 궁수와 투석병이 사거리 밖에서 화살과 돌을 퍼부었습니다. 그리스 중장보병은 무력했어요 — 근접하면 천하무적이지만, 멀리서 쏘는 적은 잡을 수가 없었죠. 쫓아가면 가벼운 적병이 달아나고, 멈춰 서면 다시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무거운 방패가 도리어 짐이 됐어요. 미트라다테스(Mithradates)라는 페르시아 지휘관은 우호적인 사절인 척 다가왔다가 가까워지자 들이치는 또 한 번의 기만까지 보탰습니다(An. 3.3).

그 밤, 새 장군들이 머리를 맞댔어요. 문제는 분명했습니다 — 우리에게는 멀리 쏘는 손과 빨리 달리는 발이 없다. 해법도 거기서 나왔죠. 먼저 방진(方陣)을 짰어요. 사방을 보병으로 두르고 짐과 부상자를 그 안에 가두는, 어느 방향에서 적이 와도 등을 보이지 않는 살아 있는 성벽이었습니다(An. 3.3). 멀리 쏠 손도 만들었어요 — 군중 속 로도스 사람들의 납 탄환은 페르시아 투석병의 돌멩이보다 두 배나 멀리 날아갔거든요. 그들을 따로 모아 슬링거 부대를 급조했습니다(An. 3.3). 빨리 달릴 발로는 기마에 익숙한 자들을 추려 보잘것없으나마 기병 오십 기를 꾸렸어요.

이튿날 미트라다테스가 같은 수법으로 다시 덤볐을 때, 그를 맞은 것은 어제의 무력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로도스의 탄환이 그의 투석병을 사거리 밖에서 무너뜨렸고, 급조한 기병이 측면을 찔렀어요. 그는 손해를 보고 물러났습니다(An. 3.4). 자생한 지휘부가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거둔 승리였고, 그 작은 승리가 어제 거수로 세운 지휘부의 권위를 비로소 진짜로 만들었어요. 이 전술 묘사는 크세노폰의 실용적 시선이 가장 빛나는 대목이자, 고대 군사사의 귀중한 1차 증언이기도 합니다.

산으로 길을 꺾다

티사페르네스의 추격은 끈질겼지만 방진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그리스군은 마을을 약탈해 보급하며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평지가 계속되는 한 페르시아 기병의 우위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장군들은 마지막 수를 택했습니다 — 적의 가장 강한 무기를 산이 대신 꺾어 주도록, 기병이 쓸모없어지는 험준한 카르두코이 산지로 길을 꺾기로 한 거예요(An. 3.5). 그 산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만 명은 그렇게 다시 발을 뗐어요. 머리를 잃은 몸이 새 머리를 길러 내고, 적의 추격을 등에 진 채 산을 향해 걸었습니다. 적의 강점을 무력화하는 지형으로 후퇴를 끌고 가는 이 결정이, 다음 권의 산악 후퇴와 마침내 "바다다!"의 순간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됩니다.

"나" 대신 "크세노폰"이라 적은 사람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미묘한 거리가 숨어 있어요. 크세노폰은 자기 자신을 "나"라 부르지 않고 "크세노폰"이라는 제삼자로 적었습니다. 마치 곁에서 지켜본 누군가의 객관적 증언처럼요. 그러나 지켜본 자와 일어선 자는 같은 사람이에요. 그 문법의 거리 안에서, 절망한 만 명 가운데 가장 먼저 깨어난 자, 위기마다 옳은 해법을 내놓은 자, 권력을 탐하지 않고 마지못해 의무를 떠맡은 자라는 한 인물이 조용히 빚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권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해요. 후퇴의 사건 골격 — 새 지휘부 선출, 방진 대형, 투석병과 기병의 급조, 카르두코이 산지 진입 — 은 직접 겪은 자의 목격담이라 신뢰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 늘 크세노폰 한 사람이 옳은 답을 들고 서 있다는 구도는, 그가 자신을 3인칭 영웅으로 그린 자전적 자기 정당화로 보정해 읽는 편이 안전해요. 실제로 후대의 다른 기록은 그 후퇴를 여러 장군이 함께 이끈 일로 짧게 적었을 뿐,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그리지 않았거든요. "그가 했다"가 아니라 "그가 자신을 그렇게 그렸다"로 한 겹 내려 읽는 거죠.

그럼에도 이 밤이 세계사에서 갖는 무게는 분명합니다. 고용주가 임명하던 지휘권이 동료 병사들의 거수로 옮겨 간 순간, 만인대는 단순한 용병 무리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 공동체로 바뀌었어요. 머리를 잃은 군대가 스스로 새 머리를 길러 낸 거예요. 그리고 그 전환을 가장 먼저, 가장 또렷하게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바로 그 밤 홀로 일어섰다고 적은 한 아테네인이었습니다. 절망한 만 명 가운데 켜진 단 하나의 횃불 — 그 빛이 진짜로 그 혼자만의 것이었는지는, 깨어 있던 그 자신만이 적어 남겼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군대가 카르두코이의 화살과 아르메니아의 혹한을 뚫고, 마침내 한 봉우리 위에서 바다를 보게 됩니다. → 바다다! — 산을 넘은 만인대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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