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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으로 떠나 사트라프 앞에서 끝나다 — 그리스 용병의 마지막 거래

만 명이 출발했고, 그보다 적은 수가 살아 돌아왔어요. 페르시아 깊은 곳 쿠낙사에서 고용주를 잃고, 산을 넘고 눈밭을 건너 흑해까지 후퇴한 그리스 용병들이 마침내 비잔티움의 성문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휴식이 아니었어요. 이 7권은 『아나바시스』의 마지막 권이에요. 갈 곳도 급여도 없는 표류 용병...

2026년 5월 30일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읽기 조회 1

만 명이 출발했고, 그보다 적은 수가 살아 돌아왔어요. 페르시아 깊은 곳 쿠낙사에서 고용주를 잃고, 산을 넘고 눈밭을 건너 흑해까지 후퇴한 그리스 용병들이 마침내 비잔티움의 성문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휴식이 아니었어요.

이 7권은 『아나바시스』의 마지막 권이에요. 갈 곳도 급여도 없는 표류 용병이 된 만인대가, 새 고용주를 찾아 트라키아와 스파르타 사이를 떠돌다 마침내 해체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흥미로운 건 그 끝이에요 — 만 명이 그린 거대한 원이, 마지막 점에서 처음 점과 정확히 만나거든요. 그들이 1권에서 싸우려 했던 바로 그 적, 페르시아의 사트라프 앞에 다시 서면서 이야기가 닫힙니다.

비잔티움을 불태울 뻔한 밤

비잔티움에 주둔한 스파르타 제독 아낙시비오스(Anaxibius)는 처음에는 아시아로 건너오라며 급여와 수송을 약속했어요(An. 7.1). 병사들은 그 말을 믿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약속은 사라졌어요. 급여도, 배도 없었습니다. 아낙시비오스는 이제 굶주린 무리를 성벽 밖으로 내쫓으려 했죠.

분노가 군중을 휩쓸었어요. 무장한 병사 수천 명이 비잔티움의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누군가 외쳤어요 — "이 도시는 우리 것이다. 빼앗으면 된다." 약탈은 한 발짝 앞에 있었습니다. 헬라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하나가 그날 밤 잿더미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때 크세노폰(Xenophon)이 병사들 한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단상에 올라 목소리를 높였어요. 도시를 약탈하면 우리는 헬라스 전체의 적이 되고, 스파르타가 우리를 추격할 것이며, 한 번의 약탈로 우리가 쌓아 온 모든 명예가 사라진다고요. 약탈로는 굶주림을 하루도 면하지 못하지만, 질서를 지키면 새 고용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병사들은 흩어졌고, 도시는 불타지 않았어요.

적어도 크세노폰의 회고는 그렇게 전합니다(An. 7.1). 그 자신이 유일한 진정의 힘이었는지, 굶주린 무리가 본래 약탈을 끝까지 밀어붙일 형편이 못 되었는지, 그것을 가려 줄 다른 증언은 없어요. 다만 이 권에서부터 크세노폰은 한 가지를 거듭합니다 — 위기마다 자신을 절제와 질서의 사람으로 그리는 일이죠.

트라키아 왕의 연회와 끊긴 급여

갈 곳 없는 만 명에게 한 사람이 손을 내밀었어요. 트라키아 오드뤼사이의 왕족 세우테스(Seuthes)였습니다. 그는 조상에게서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 했고, 그러기 위해 군대가 필요했죠(An. 7.2).

세우테스는 크세노폰을 연회로 불렀어요. 트라키아식 잔치였습니다 — 화톳불이 천막을 밝히고, 손님들이 차례로 일어나 왕에게 선물을 바쳤죠. 세우테스는 크세노폰에게 약속했어요. 복무의 대가로 병사들에게는 급여를, 크세노폰 개인에게는 영지와 성채, 그리고 자신의 딸까지 주겠노라고(An. 7.2). 그것은 단순한 고용 계약이 아니라, 서술자 자신을 거래의 이해당사자로 끌어들이는 약속이었습니다.

계약은 맺어졌고, 만인대는 다시 창을 들었어요. 이번 적은 페르시아의 대군이 아니라 트라키아 산악의 부족들이었습니다. 한겨울이었죠(An. 7.3). 그들은 밤에 움직였어요. 눈 덮인 고원을 가로질러 어둠 속에서 마을로 들이닥쳤습니다. 트라키아의 추위는 페르시아의 산맥만큼이나 매서웠어요. 보초들이 코와 귀가 얼어붙은 채 새벽을 맞았죠. 그러나 세우테스의 왕국은 마을 하나하나가 무너질 때마다 조금씩 되살아났습니다(An. 7.4). 처음 얼마간 세우테스는 약속을 지켰어요. 전리품이 분배되었고 군량이 도착했죠.

그리고 급여가 끊겼습니다. 왕국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세우테스의 손은 닫혔어요. 약속한 급여는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일하는 자가 있었어요 — 세우테스의 재무관 헤라클레이데스(Heraclides)였습니다. 그는 지급을 미루는 한편, 그리스 병사들과 크세노폰 사이를 이간했어요(An. 7.5).

피고가 직접 쓴 청렴 — 그러나 증언은 없다

굶주린 군대에 소문은 불길처럼 번졌어요. 크세노폰이 세우테스에게서 영지와 선물을 약속받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 병사들은 수군거렸어요 — 그가 우리 급여를 가로채고 세우테스에게서 뇌물을 받은 것은 아닌가. 우리를 트라키아의 눈밭으로 끌고 와 부려 먹은 대가로 제 영지를 챙긴 것은 아닌가(An. 7.6). 집회가 열렸고, 한때 그들이 비잔티움에서 따르던 그 지도자를 향해 이제 병사들은 분노의 손가락을 겨누었습니다.

크세노폰은 일어섰어요. 그리고 길게, 아주 길게 변호했습니다(An. 7.6). 자신은 세우테스에게서 단 한 푼의 급여도, 한 뙈기의 영지도 사적으로 취하지 않았으며, 받기로 한 몫조차 병사들에게 돌렸노라고. 약속을 어긴 것은 세우테스이지 자신이 아니며, 자신이야말로 그 약속을 받아 내려 왕과 싸우고 있노라고요.

회고록의 펜은 여기서 가장 분주합니다. 크세노폰은 병사들의 의심을 숨기지 않아요 — 오히려 그것을 또렷이 적은 뒤, 한 줄 한 줄 반박해 나갑니다. 의심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그 솜씨가 도리어 독자를 그의 편으로 끌어당기죠. 세우테스의 인색함과 헤라클레이데스의 농간이 짙게 칠해질수록, 그 대비 속에서 크세노폰의 결백은 더 환하게 빛납니다.

그러나 이 청렴을 확인해 줄 바깥의 증언은 어디에도 없어요. 후대의 통사가들은 만인대가 트라키아에서 복무했다는 사건의 뼈대만 전할 뿐, 크세노폰 개인이 정말 한 푼도 챙기지 않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쟁의 한복판에 선 이해당사자였고, 자신을 청렴하게 그렸어요. 그가 청렴했다는 것과 자신을 청렴하게 그렸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사트라프에서 사트라프로 — 거대한 원이 닫히다

크세노폰은 세우테스를 끝까지 압박했어요(An. 7.7). 왕은 마침내 약속의 일부를 내놓았습니다. 전부는 아니었죠. 급여로 묶인 용병과 인색한 군주 사이의 거래란 본디 그런 것이었어요 — 약속이 끊기는 순간 충성도 끊깁니다.

이제 만인대가 갈 곳은 한 군데 남았어요.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사트라프들과 싸우려 소아시아로 장군 티브론(Thibron)을 보낸 참이었습니다. 크세노폰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티브론에게 합류했죠(An. 7.8). 비잔티움에서 등을 돌렸던 스파르타가, 이번에는 그들을 받아들였어요. 아낙시비오스 한 사람의 변심은 비판받았으나, 스파르타라는 우산 자체는 만인대의 자연스러운 종착지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맞설 적의 이름이 마침내 불렸어요 — 티사페르네스(Tissaphernes)와 파르나바조스(Pharnabazus). 페르시아 왕의 사트라프들이었습니다. 티사페르네스, 그 이름은 이 긴 여정의 시작에 있었어요. 1권에서 그는 소(小)키루스를 형에게 밀고했고, 2권에서는 그리스 장군들을 회담으로 꾀어내 한자리에서 죽인 배신의 장본인이었거든요. 만 명이 페르시아로 올라간 것은 본래 페르시아의 사트라프와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An. 1). 그리고 이제, 흑해와 트라키아를 돌아 다시 페르시아의 사트라프 앞에 섭니다. 원정은 사트라프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어, 사트라프와의 싸움으로 닫혀요. 만 명이 그린 거대한 원이 마지막 점에서 처음 점과 만난 거죠.

용병 군대가 남긴 것 — 귀환의 대가와 다음 전쟁

크세노폰의 회고는 여기서 멈춥니다. 만인대를 티브론에게 넘기는 것으로 『아나바시스』는 끝나요. 그러나 그 병사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스파르타가 사트라프들을 상대로 벌인 소아시아 전쟁의 핵심 전력으로, 같은 저자의 후속 저작(Hell. 3.1)에서 다시 행군하거든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닫힌 문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로 건너가는 다리였습니다.

이 7권이 세계사에서 의미심장한 건, 용병 군대의 운명을 끝까지 보여 주기 때문이에요. 만인대는 한 시대를 상징합니다 — 폴리스의 시민군이 아니라, 돈을 받고 누구의 전쟁에든 끼어드는 직업 군인의 시대 말이죠. 그들에게는 지킬 조국도, 돌아갈 자리도 분명치 않았어요. 후원자가 약속을 어기면 다른 후원자를 찾았고, 결국 거대한 패권(스파르타)의 톱니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자유로운 용병이라는 말은 멋있지만, 그 자유의 끝은 늘 누군가의 우산 아래였던 거예요. 귀환의 대가는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인대가 그린 수미상관의 원은 한 가지를 일깨워요 —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까지 그리스 중장보병이 걸어 들어갔다가 멀쩡히 걸어 나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경험은 곧 "페르시아는 생각보다 무르다"는 자각으로 이어졌고, 한 세대 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에 길을 닦았다고도 평가받죠. 만 명으로 떠나 더 적은 수로, 그러나 끝까지 대오를 유지한 채 — 용병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전쟁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머지않아 동방을 향한 더 큰 행군의 이정표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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