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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왕좌를 두 걸음 앞에 두고 죽다 — 그리스 용병 1만 명을 페르시아 한복판에 버린 쿠낙사 전투

기원전 401년, 만 명이 넘는 그리스 용병이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행군했어요. 그들을 고용한 사람은 페르시아 왕의 친동생이었고, 진짜 목적은 형의 왕좌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목적을 병사들에게는 끝까지 숨겼죠. 흥미로운 건, 이 원정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그 군대 안에 있...

2026년 5월 30일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읽기 조회 1

기원전 401년, 만 명이 넘는 그리스 용병이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행군했어요. 그들을 고용한 사람은 페르시아 왕의 친동생이었고, 진짜 목적은 형의 왕좌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목적을 병사들에게는 끝까지 숨겼죠.

흥미로운 건, 이 원정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그 군대 안에 있었다는 점이에요. 크세노폰(Xenophon)이라는 아테네 청년이 직접 종군하며 본 것을 훗날 『아나바시스』(Anabasis)에 적었습니다. '아나바시스'는 '올라가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 바닷가에서 내륙 고원으로,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키루스는, 한 가지 오해를 먼저 풀어야 만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두 명의 키루스 — 헷갈리지 말 것

먼저 이름부터 정리할게요. 이 원정을 일으킨 사람의 이름은 키루스인데, 한 세기 반 전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그 키루스 대왕(=고레스)이 아니에요. 그래서 흔히 소(小)키루스(Cyrus the Younger)라고 부릅니다. 같은 이름을 쓸 뿐, 전혀 다른 인물이에요.

소키루스는 다리우스 2세의 둘째 아들이자, 당시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친동생이었어요. 형은 왕좌에 앉았고, 동생은 그 왕좌를 원했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서부의 사트라프, 곧 지방 총독이었죠. 부왕이 죽고 형이 즉위했을 때 소키루스는 형을 해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될 뻔했어요. 그를 밀고한 건 같은 지역의 또 다른 사트라프 티사페르네스였습니다(An. 1.1) — 왕에게 충성하며 키루스와 이오니아 도시들의 관할권을 다투던, 키루스의 천적이었죠.

키루스를 살린 건 어머니였어요. 모후 파리사티스는 둘째 아들을 노골적으로 편애했고, 그 권력으로 중재해 그를 사면시킨 뒤 다시 사트라프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를 구한 거예요. 그러나 키루스는 그 일을 용서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는 더 큰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속 도적을 잡는다는 거짓말

문제는 누구에게도 진짜 목적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형의 왕좌를 빼앗겠다고 공언하면 군대가 모이기도 전에 형의 귀에 들어갈 테니까요. 그래서 키루스는 거짓말을 골랐습니다. 자기 영지를 어지럽히는 피시디아 산악 부족을 토벌하겠다는 것이었죠(An. 1.2). 사트라프가 제 땅의 도적을 치겠다는데 누가 의심하겠어요. 그렇게 그리스 용병들은 산속의 도적 떼를 잡으러 가는 줄 알고 사르디스에 모였습니다.

군대는 동쪽으로 행군했어요. 그런데 피시디아의 산은 진작 지나쳤는데도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적을 잡으러 왔다면 벌써 도착했어야 했죠. 이 길은 점점 더 깊이, 페르시아의 심장부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리스인들은 그 행군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 아나바시스, '올라가는 길'.

타르소스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병사들이 멈춰 섰어요. 그들은 진군을 거부했습니다(An. 1.3). 누구를 상대로 싸우는지도 모르고 페르시아 왕의 영토 한복판으로 끌려가는 것을, 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예요. 도적을 잡으러 왔지, 페르시아 대왕과 싸우러 온 게 아니었으니까요.

이때 한 사람이 나섰어요. 클레아르코스였습니다.

눈물로 병사를 움직인 노장

클레아르코스는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어 사형까지 선고받은 망명자였어요. 돌아갈 곳이 없는 그는 키루스의 후원으로 용병을 모았고, 사실상 만인대 전체의 수석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강요할 권한이 없었어요. 그리스 용병은 폴리스 시민병의 후예였고, 명령이 아니라 동의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거든요(An. 1.3).

그래서 클레아르코스는 명령하지 않았어요. 그는 연기했습니다. 병사들 앞에 선 노장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죠. 한참 만에 입을 연 그는 자신도 괴롭다고, 그러나 키루스를 배신하느니 차라리 그대들과 함께 죽겠노라고 말했어요. 진군이 아니라 의리를 말했고, 강요가 아니라 슬픔을 보여 준 거예요. 노련한 연기였고, 그것이 통했습니다. 병사들은 결국 다시 창을 들었어요.

진짜 회유는 돈이었습니다. 키루스가 급여를 올려 주기로 하자(An. 1.4) 동요는 가라앉았어요. 이 거대한 무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이념도, 민족도, 충성도 아니었습니다. 급여였어요. 키루스가 돈을 주는 한 그들은 행군했죠. 이 단순한 사실이 훗날 거대한 비극의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그날의 병사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군대는 다시 올라갔어요. 소아시아를 지나 시리아로,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사막을 건너는 동안 병참과 물과 길에 관한 모든 것이 매일의 생사를 갈랐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 앞에 섰어요. 강은 깊었으나 그해의 수위는 낮았고, 병사들은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건넜습니다(An. 1.4). 강 건너편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적의 땅이었어요.

진군 중에 키루스 진영 안에서도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오론타스라는 페르시아 귀족이 몰래 왕에게 붙으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처형됐어요(An. 1.6). 키루스를 따르는 페르시아인들조차 그를 끝까지 믿지는 않았던 거예요. 이제 더는 위장할 것이 없었습니다. 키루스는 마침내 진실을 말했어요 — 우리는 형, 곧 페르시아 대왕과 싸우러 간다고. 그러나 병사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고, 보상은 컸으며, 페르시아 군대란 겁쟁이들이라는 소문을 그들은 믿고 싶어 했거든요(An. 1.7).

쿠낙사 — 이긴 날개, 죽은 주인

바빌론에서 멀지 않은 평원, 쿠낙사에서 형의 군대가 나타났어요. 지평선 끝에서 먼지가 피어올랐습니다(An. 1.8). 처음엔 흰 구름 같다가, 곧 검은 띠가 되고, 이윽고 대지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대군이었죠. 그 수는 키루스 군을 까마득히 압도했고, 청동과 철이 햇빛에 번뜩였으며, 낫을 단 전차들이 전열 앞에 늘어섰습니다.

키루스는 그리스군을 오른쪽 날개에 세웠어요. 강을 등진 자리였죠. 그는 클레아르코스에게 외쳤습니다 — 중앙을 쳐라, 형이 있는 한가운데를 노려라. 거기에 왕이 있고, 왕만 쓰러뜨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그러나 클레아르코스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강을 등진 안전한 진형을 포기하면 측면이 노출되어 적의 대군에 포위당하니까요. 노련한 스파르타인은 무모한 돌격 대신 자기 앞의 적을 쳤습니다.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군의 방진이 함성과 함께 전진했어요. 창끝이 가지런히 앞을 겨눈 채, 강철의 벽이 페르시아 좌익을 향해 밀려들었죠. 페르시아 병사들은 그 벽을 보고 무너졌습니다. 화살 한 번 제대로 맞붙기도 전에 왕의 좌익은 등을 돌려 달아났어요. 그리스군은 거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기 쪽 적을 쓸어버렸습니다. 이 날개에서는 완벽한 승리였어요.

그러나 전장의 중앙은 달랐습니다. 키루스는 형을 봤어요. 압도적인 호위에 둘러싸인 채, 멀지 않은 곳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있었죠. 그 순간 키루스의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졌습니다. 전략도, 신중함도, 클레아르코스의 충고도 사라졌어요. 남는 것은 단 하나의 욕망 — 형을 내 손으로. 그는 외쳤습니다. "왕이 보인다!" 그리고 호위 육백 기만을 거느린 채, 형의 중앙으로 곧장 돌진했어요. 던진 창이 마침내 형의 갑옷을 꿰뚫어 상처를 입혔고, 한순간 페르시아 제국의 운명이 두 형제 사이 몇 걸음 안에 걸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투창 하나가 키루스의 눈 아래로 날아들었어요. 그는 말에서 떨어졌고, 형의 왕좌를 두 걸음 앞에 둔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여기서부터의 일은 크세노폰도 직접 보지 못했어요. 그는 그리스군 날개에서 싸우고 있었고, 형제의 결투는 멀리 중앙에서 벌어졌거든요. 누구의 창이 키루스를 쓰러뜨렸는지, 형의 부상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사료마다 엇갈립니다. 왕 측에 있었다는 궁정 의사 크테시아스는 자신이 왕을 직접 치료했다며 다른 정황을 전하지만, 후대의 플루타르코스조차 그의 자기과시를 의심해요. 다만 한 가지만은 모든 증언이 일치합니다 — 키루스는 형을 직접 치려다, 그 손이 닿기 직전에 죽었다는 것.

이겼는데 갈 곳이 없다

그리스군이 추격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상한 광경을 봤어요. 자기들은 분명히 이겼습니다. 진형은 멀쩡했고 전사자도 거의 없었죠. 그런데 어디에서도 키루스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들은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급여를 주던 단 한 사람, 만인대를 하나로 묶고 있던 그 결절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이긴 것은 그들이었으나,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돌아갈 길도, 받을 급여도, 따를 주인도 없이, 만 명의 그리스인은 바빌론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적의 심장부 한가운데 홀로 남았습니다.

크세노폰은 뒤이어 키루스를 위한 긴 추도사를 써요(An. 1.9). 신의 있고, 너그럽고, 용감하며, 마땅히 왕이 되었어야 할 사람이라고. 키루스 진영에서 복무한 자의 헌사답게, 그것은 분명 미화된 초상입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한 가지만은 끝내 감추지 않았어요. 그가 사랑한 그 군주가, 다 이긴 싸움을 제 손으로 망친 무모함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죠. 가장 빛나는 순간에, 키루스는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쿠낙사가 보여 준 페르시아기 세계의 민낯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어요. 그리스 중장보병 만 명이 페르시아 대군의 한쪽 날개를 거의 무혈로 박살 냈다는 사실이죠. 페르시아 전쟁(마라톤·살라미스) 이후로도 페르시아는 여전히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여겨졌는데, 쿠낙사는 그 거대한 몸집의 빈틈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어요. 잘 훈련된 그리스 보병 방진 앞에서는 왕의 군대도 무너진다는 것 — 이 깨달음은 그리스인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리고 한 세기도 안 되어, 한 마케도니아 청년이 바로 이 교훈 위에서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무너뜨려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입니다. 쿠낙사에서 죽은 만인대의 행군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페르시아는 정복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 주었던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분명히 해 둘게요. 이 권의 주인공 소키루스는 키루스 대왕(고레스)이 아니에요.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입니다.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을 정복하고 유대인을 귀환시킨 정복자였지만, 소키루스는 형의 왕좌를 노리다 제 손으로 망친 야심가였죠. 다만 두 사람 모두, 페르시아라는 한 제국의 빛과 그늘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키루스를 잃은 만 명의 그리스인 앞에는, 아직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아테네 청년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가 일어서기까지는, 먼저 장군들이 적의 신의에 속아 모두 죽는 또 하나의 밤을 지나야 했습니다.


다음 편 →: 장군들의 배신 — 신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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