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00년, 흑해 연안의 그리스 용병 1만 명에게 누군가 최고의 자리를 내밀었어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이끄는 단독 총사령관이 되어 달라" — 아테네 사람 크세노폰(Xenophon)을 향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절했어요. 이유는 신에게 바친 희생제의 점괘가 불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점괘를 들여다본 유일한 증인이 크세노폰 자신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후대 독자들은 지금도 묻습니다. 점괘는 정말 불길했을까, 아니면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한 사람의 붓 끝에서 불길해진 걸까. 그리고 그가 자리를 사양하자, 군대는 곧 셋으로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한 사람의 군대가 아니었어요
바다를 보았을 때 그들은 울었습니다. 산을 넘고 눈 속에서 죽어가던 자들이 마침내 짠 내음을 맡고 끌어안았어요. 그러나 바다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죠. 집은 여전히 멀었고, 그들을 묶어 줄 고용주는 없었습니다. 소(小)키루스가 죽은 뒤로 만인대를 하나로 묶은 것은 급여가 아니라 오직 서로의 등을 맞댄 두려움이었어요. 그리고 두려움은, 안전이 가까워질수록 느슨해지는 법이었습니다.
흑해 남안에 머무는 동안, 파플라고니아의 통치자 코리라스(Corylas)가 사절을 보내왔어요. 적으로 돌리기에는 그 땅이 너무 넓었고, 통과와 보급이 절실했죠. 그리스군은 연회를 열었습니다. 잔이 돌고 피리가 울리는 사이, 무장한 병사들이 일어나 춤을 추었어요(An. 6.1). 트라케인이 방패를 들고 도약했고, 아이니아니아인과 마그네시아인이 칼을 휘두르며 회전했으며, 아르카디아 병사들이 완전 무장으로 박자에 맞춰 발을 굴렀습니다. 사절은 그 군무(軍舞)를 보며 미소 지었으나, 미소 뒤에서 헤아렸을 거예요 — 저것은 여흥이 아니라 군세의 과시라고. 칼을 든 자들이 박자에 맞춰 움직일 때, 그 박자 자체가 위협이었으니까요.
신 앞에 내려놓은 욕망
그 무렵, 흩어진 지휘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케이리소포스(Cheirisophus)는 함선을 구하러 떠나 자리를 비웠고, 여러 장군의 명령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병사들의 눈이 한 사람에게로 모였어요. 크세노폰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단독 총사령관직을 제안했죠(An. 6.1).
크세노폰은 훗날 그 순간을 적으며, 마음이 끌렸음을 숨기지 않았어요. 한 사람의 손에 만 명의 운명이 쥐어진다는 것 — 그 무게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는 끌렸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끌림을 신 앞에 내려놓았다고도 적었어요. 그는 희생제를 올렸고, 제관이 짐승을 갈랐으며, 김이 오르는 내장 위로 몸을 숙였습니다. 전조는 불길했어요(An. 6.1). 그는 다시 물었고, 신들은 다시 침묵으로 답했죠. 그는 제안을 사양했습니다. 표면의 이유는 둘이었어요. 하나는 신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테네 사람이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이 주도하는 군대의 단독 지휘를 맡는 것은 분별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장면을 읽는 사람은 망설이게 돼요. 그 전조는 정말 불길했을까요, 아니면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한 사람의 붓 끝에서 불길해진 걸까요. 그 내장을 들여다본 증인은 크세노폰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는 끌림을 솔직히 적음으로써 오히려 사양의 미덕을 더 빛나게 했어요 — 욕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욕망을 신 앞에서 내려놓은 사람으로 자신을 그린 거죠. 그것이 진정한 경건이었는지, 정교한 자기변호였는지는 끝내 가를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단독직을 맡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에요.
셋으로 갈라지고, 다시 하나로
단일한 지휘가 세워지지 않자, 군대는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아르카디아와 아카이아 병사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수가 곧 정당성이라 여긴 그들은 독자 행동을 결의했어요(An. 6.2). 만인대는 사실상 셋으로 쪼개졌습니다 — 아르카디아·아카이아 다수파, 케이리소포스 휘하, 그리고 크세노폰 휘하. 같은 바다를 보고 함께 운 자들이, 이제 서로 다른 길로 흩어진 거예요.
그들이 왜 갈라섰는지, 다수파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에 없어요. 우리는 크세노폰의 펜을 통해서만 그 분열을 봅니다. 그의 서술에서 분열의 책임은 다수파의 자만에 있었죠. 그러나 고용주가 사라진 적지의 후퇴에서, 분열은 한 무리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동의에 기댄 공동체에 처음부터 깃들어 있던 위험이었어요. 단일한 지휘를 세우려던 두 번의 시도가 잇따라 무너진 자리에서, 균열은 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만은 곧 대가를 치렀어요. 독자 행동에 나선 아르카디아 부대의 일부가 트라키아 부족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언덕 위에 갇힌 채 화살에 쓰러져 가는 병사들(An. 6.3). 소식이 닿자 크세노폰은 휘하를 이끌고 달려갔어요. 봉화가 오르고, 흩어졌던 부대들이 위기의 자각 속에서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포위된 자들이 구출되었고, 셋으로 갈라졌던 군대는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어요(An. 6.4).
재통합은 명령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만인대에게 합치라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그들을 다시 묶은 것은 공동의 위기였고, 그 위기를 수습한 크세노폰의 중재였어요. 분열을 낳은 바로 그 정치 — 설득과 동의의 문화 — 가 재통합의 수단이기도 했죠. 그의 서술에서 흩어진 군대를 다시 세운 결절점은 언제나 자신이었습니다. 분열의 책임은 남에게, 회복의 공은 자신에게 — 그 인과의 기울기 위에서, "권력을 사양했으되 결국 군은 나 없이는 안 되었다"는 이중의 메시지가 완성되어 갔어요.
죽음의 손을 거쳐 온 권력
군대가 다시 하나가 되자, 케이리소포스가 단독 지휘를 맡았어요. 스파르타의 정규 장군, 산을 넘는 내내 선봉을 도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크세노폰과 함께 만인대를 떠받친 두 기둥 중 하나였죠. 그러나 그의 지휘는 오래 가지 못했어요. 통솔이 흔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약을 먹은 뒤 열병에 시달렸습니다(An. 6.4). 그리고 죽었어요.
음모도, 배신도, 화살도 아니었습니다. 산맥과 카르두코이의 화살과 아르메니아의 혹한을 모두 견뎌 낸 사람이, 바다를 본 뒤에 열병으로 스러진 거예요. 크세노폰은 그의 죽음을 담담히 적었습니다. 폄하하지 않았고, 슬픔을 과장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그 담담한 몇 줄 뒤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바뀌었습니다. 만인대를 떠받치던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자, 지휘는 자연히 한 축으로 — 크세노폰 한 사람에게로 — 기울었어요. 그는 그 자리를 빼앗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다른 기둥이 무너졌을 뿐이죠. 권력은 그의 손이 아니라 죽음의 손을 거쳐 그에게 왔어요. 직접 차지하지 않고도 홀로 남는 것 — 그것이 회고록이 그려 낸 그의 자리였습니다.
만 명이 하나로 버틴다는 일 — 동의로 묶인 군대의 정치
만 명이 하나로 버티는 일은 이토록 어려웠어요. 셋으로 갈라졌다 다시 합치고, 동료 하나를 흙에 묻고서야, 군대는 보스포로스를 향해 다시 발을 옮겼습니다.
이 6권이 세계사에서 던지는 질문은 묵직해요 — 강제력 없이, 오직 동의만으로 무장 집단을 묶을 수 있는가. 만인대에는 왕도, 국가도, 급여를 주는 고용주도 없었습니다. 지휘관은 투표로 뽑히고 설득으로 움직였죠. 그것은 놀랍도록 민주적이었지만, 동시에 놀랍도록 부서지기 쉬웠어요. 다수파가 "수가 곧 정당성"이라며 떨어져 나가는 순간, 군대는 셋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을 다시 묶은 것도 명령이 아니라 공동의 위기와 중재였습니다. 분열을 낳은 바로 그 정치가 재통합의 도구이기도 했던 거예요. 동의에 기댄 권력은 늘 이 양날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권은 권력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모이는지도 보여 줘요. 크세노폰은 단독직을 사양했지만, 케이리소포스가 죽자 자연히 홀로 남았습니다. 빼앗지 않고도 차지하는 것 — 회고록은 그 미묘한 자리를 정교하게 그려 냈죠. 그가 정말 권력을 원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졌는지는 여전히 열린 물음으로 남습니다.
보스포로스 너머에는 비잔티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비잔티움에는 스파르타의 해군 제독 아낙시비오스(Anaxibius)가 있었습니다(An. 6.6). 도해와 급여와 다음 복무처를 둘러싼 협상이 기다리고 있었죠 — 만인대가 더 이상 자유로운 용병이 아니라, 스파르타라는 거대한 질서의 톱니로 빨려 들어가는 문턱이었어요. 바다를 건너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약속과 배신이 뒤섞인 또 하나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 편 — 세우테스와 스파르타의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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