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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의 회담장에 깃발이 오르자 — 신의를 믿은 장군이 신의의 덫에 걸린 밤

전투에서 이긴 군대가 정작 갈 곳을 잃는 일이 있어요. 쿠낙사의 들판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만 명의 그리스 용병은 자기 날개에서 페르시아군을 깨끗이 격퇴했지만,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한복판까지 끌고 온 사람 — 형의 왕좌를 노리던 소(小)키루스 — 가 그 무모한 돌격에서 죽었거든요. 고용주가 사라지자 원정의 명분이 통째로 증발...

2026년 5월 30일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읽기 조회 1

전투에서 이긴 군대가 정작 갈 곳을 잃는 일이 있어요. 쿠낙사의 들판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만 명의 그리스 용병은 자기 날개에서 페르시아군을 깨끗이 격퇴했지만,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한복판까지 끌고 온 사람 — 형의 왕좌를 노리던 소(小)키루스 — 가 그 무모한 돌격에서 죽었거든요. 고용주가 사라지자 원정의 명분이 통째로 증발했어요.

『아나바시스』 2권은 그 텅 빈 승리 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권은 한 가지 잔인한 아이러니로 끝나요 — 평생 신의를 무기처럼 다뤄 온 장군이, 바로 그 신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적의 함정에 걸려 가장 먼저 쓰러진다는 것. 크세노폰(Xenophon)이 직접 종군하며 지켜본 이야기입니다.

이긴 자들이 갈 곳을 잃다

쿠낙사에서 승리한 그리스군은 패배를 모르는 자들이었어요. 그러나 키루스가 죽자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승전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사신을 보내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고 요구했어요. 그리스 장군들은 코웃음을 쳤죠. 수석 지휘관 클레아르코스가 사신에게 답했습니다. "친구가 되려거든 무기를 가진 우리가 더 쓸모 있을 것이오. 싸워야 한다면, 더더욱 무기가 필요하겠지." 이긴 자의 자존이었어요.

하지만 자존만으로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에서 수백 파라상 떨어진 적지 한가운데에, 식량도 길잡이도 없이 고립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리스군은 키루스의 페르시아인 부관 아리아이오스에게 차라리 왕위에 오르라고, 함께 싸우자고 제안해 봤어요(An. 2.1). 그러나 그는 거절했습니다. 페르시아 귀족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죠. 잠시 서약을 나누는가 싶더니, 아리아이오스는 곧 왕의 편으로 기울어 떠나갔어요(An. 2.2). 마지막 동맹마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거예요.

그때 한 사람이 부드러운 손을 내밀었습니다. 사트라프 티사페르네스 — 소아시아를 다스리던 페르시아 총독이었어요. 1권에서 소키루스를 형에게 밀고했던 바로 그 인물이죠.

우호라는 이름의 미끼

티사페르네스는 왕을 대리해 협상에 나섰어요. 식량을 공급하고, 호위를 붙여 안전하게 바다까지 돌려보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휴전이 맺어졌죠(An. 2.3). 그러나 협정은 처음부터 살얼음 위를 걷는 듯했어요. 두 진영은 같은 길을 가면서도 서로를 흘끔거리며 거리를 뒀습니다(An. 2.4).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의 천막 불빛이 너무 가까워지면 경계했고, 페르시아군은 무장을 풀지 않는 그리스군을 미더워하지 않았어요. 호위라는 말은 점점 감시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병사들 사이에 의심이 자라났어요. 저 사트라프의 친절이 진짜냐는 것이었죠. 어떤 이는 페르시아인의 맹세를 어떻게 믿느냐고 했고, 어떤 이는 그렇다고 적지 한복판에서 싸움을 자초할 셈이냐고 맞받았습니다. 불신은 군대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었어요.

티사페르네스가 그 틈을 정확히 노렸습니다. 그가 클레아르코스에게 전갈을 보냈어요. 서로의 의심이 두 진영 모두를 망치고 있으니, 장군들이 직접 만나 누가 이 불화의 씨를 뿌렸는지 가려내고 깨끗이 풀자는 것이었죠. 우호의 회담이라 했어요.

클레아르코스는 망설였습니다. 그는 평생 신의를 무기처럼 다뤄 온 사람이었거든요. 규율은 가혹했고, 부하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따랐죠. 바로 그 신의에 대한 믿음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맹세를 나눈 사이라면 배신하지 않으리라 — 그는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가늠했어요. 다른 장군들이 만류했으나, 클레아르코스는 의심을 누르고 회담을 받아들였습니다(An. 2.5). 그는 다섯 명의 장군을 데려가기로 했어요. 자신과 보이오티아의 프록세노스, 테살리아의 메논, 그리고 아르카디아의 아게이아스와 아카이아의 소크라테스. 부대장 스무 명 남짓과 시중을 들 병사들도 함께였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을 눈여겨봐 둘게요. 프록세노스는 명예를 아는 공정한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한 젊은 아테네인을 이 원정으로 이끈 것도 그였어요 — 크세노폰이라는, 아직은 이름 없는 청년이었죠. 그날 막사로 향하는 장군들의 행렬을, 크세노폰은 진영 안에서 지켜봤을 거예요. 훗날 이 군대를 일으켜 세우게 될 그 사람은, 이 순간만은 그저 한 명의 목격자였습니다.

신호 하나에 무너진 신의

막사의 휘장이 걷혔어요. 티사페르네스는 더없이 정중했습니다. 자리가 마련되고, 우의를 다지는 말들이 오갔죠. 클레아르코스의 어깨에서 긴장이 풀렸어요. 의심은 기우였던 듯했습니다. 페르시아인도 맹세를 지키는 법이다 —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그때 막사 위로 깃발 하나가 올랐습니다. 신호였어요. 휘장 밖에 도열해 있던 페르시아 병사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칼날이 번뜩였죠. 다섯 장군은 그 자리에서 결박됐어요. 막사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그리스 수행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 사람씩 베여 나갔습니다. 손을 쓸 틈이 없었어요(An. 2.5).

그 막사 안에서 정확히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사실 아무도 온전히 전하지 못해요. 회담에 들어간 자들이 거의 모두 죽었기 때문이죠. 부상을 입고 간신히 빠져나온 한둘이 진영으로 기어 들어와 참사를 알렸을 뿐, 나머지는 정황으로 짜 맞춘 것입니다. 다만 그 골격 — 우호를 미끼로 한 유인, 신호에 따른 일제 체포, 그리고 처형 — 만큼은 다른 사가들도 똑같이 전해요(Diod. 14.26).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결박된 장군들은 왕에게 보내졌고, 한 사람씩 목이 잘렸어요. 전하는 이야기로는, 모후 파리사티스가 클레아르코스에게 호의를 품어 살리려 했으나 왕비의 압력에 처형이 강행됐다고 합니다(Plut. Artax. 18). 궁정의 안쪽에서 무슨 셈이 오갔는지는 멀리 떨어진 그리스 진영이 알 길이 없었어요. 그들이 아는 것은 단 하나, 아침에 떠난 다섯 장군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한쪽은 환히, 한쪽은 어둡게 — 장군들의 부음

소식이 진영에 닿았을 때, 만 명의 군대는 얼어붙었어요. 머리를 잃은 몸이었습니다. 적지 한복판, 집까지는 천 마일, 길잡이도 보급도 없는데 명령을 내릴 사람조차 사라졌거든요. 그날 밤 많은 병사가 잠들지 못했고, 먹지도 못했어요. 어떤 이는 고향을, 부모와 처자를 떠올렸고 —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여겼습니다. 절망이 천막 사이를 안개처럼 흘렀어요.

크세노폰은 죽은 다섯 장군 각각에게 부음을 바쳤습니다(An. 2.6). 그런데 그 부음은 단순한 추도가 아니에요. 그것은 한 사람의 눈으로 내린 인물 평가였고, 그 눈에는 그 자신의 호오(好惡)가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클레아르코스를 그는 가장 길게, 가장 따뜻하게 그렸어요. 전쟁을 사랑한 사람, 위기에서 빛나는 통솔자, 부하를 두렵게 만들 줄 아는 엄격한 지휘관. 가혹함까지 적어 균형을 잡았으나, 결국 그는 덕의 모범이었죠. 스파르타의 규율을 흠모한 크세노폰다운 초상이었어요. 프록세노스는 그 중간 어디쯤에 놓였습니다. 명예롭고 공정했으나, 부하를 두렵게 하지는 못해 통솔에는 모자랐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메논. 크세노폰의 붓끝은 여기서 가장 날카로워져요. 탐욕스럽고, 거짓을 일삼으며, 우정도 맹세도 이득 앞에서는 헌신짝처럼 버린 자 — 그렇게 그려졌습니다. 다른 장군들이 단칼에 참수된 것과 달리, 메논만은 즉시 죽지 못하고 욕된 고초 끝에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어요. 마치 악덕에는 그에 걸맞은 최후가 따른다는 듯이 말이죠.

여기서 잠시 멈춰 둘 만합니다. 이 신랄한 메논 상이 과연 메논 그 자신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를 미워한 한 사람의 마음이 그린 그림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메논의 마지막이 정말 그토록 비참했는지조차 다른 사료는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클레아르코스를 덕의 정점에 세우려면 그 반대 극에 누군가를 세워야 했고, 원정 내내 쌓인 사사로운 반목도 있었을 거예요. 같은 손이 한쪽은 환히, 다른 한쪽은 어둡게 칠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 일입니다. (아카이아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그 철학자가 아니에요 — 동명이인이죠. 그와 아게이아스 두 소장군에게는 흠잡을 데 없다는 짧은 호평이 돌아갔습니다.)

회담장의 배신이 남긴 페르시아기 세계사의 무게

이 배신은 또 하나의 큰 결과를 낳았어요. 페르시아는 그리스 중장보병을 정면으로 이길 수 없자 — 쿠낙사에서 이미 그 무력함이 드러났죠 — 칼이 아니라 모략으로 그들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 모략조차 만인대를 끝장내지는 못했어요. 지도자를 모두 잃은 만 명은 사라지기는커녕, 스스로 새 지휘관을 뽑아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흑해 바닷가까지 살아 돌아갑니다. 머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군대 앞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한계는 더욱 또렷해졌어요. 이 살아 돌아간 행군의 기록이 훗날 그리스 세계에 "페르시아는 속이 비어 있다"는 확신을 심었고, 한 세기도 안 되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확신 위에서 제국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절망의 밤에, 한 무명의 아테네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어요. 친구 프록세노스를 회담장에서 잃은 그 청년 크세노폰입니다. 신의를 믿었던 자가 신의의 덫에 걸려 가장 먼저 쓰러졌다는 것 — 그것이 이 비극의 한복판에 박힌 아이러니였죠. 그러나 머리를 잃은 만 명이 다시 일어서서 산 너머로 향하는 이야기는, 다음 권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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